이 땅의 재앙을 우리가 막자(렘6:8~26)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전10:11).
이스라엘 백성들의 발자취는 우리의 거울입니다. 거울을 보고도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듬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에 활약했던 선지자입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를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하며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임박했으니 회개하라고 촉구합니다. 예레미야는 잔인한 바벨론이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가 될 것임을 선포하건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샘이 그 물을 솟쳐냄 같이’ 계속 악을 행하며 선지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소귀에 경 읽는 격이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진노하사 마치 포도 따는 자가 하나도 남기지 않고 포도를 다 훑어가듯 이스라엘 백성들을 싹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십니다. 그래도 그들은 듣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들의 귀가 할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렘6:10). 모세가 출애굽하기 전, 유월절에 집의 문설주마다 어린양의 피를 다 바르라고 했습니다. 그 피를 보고 재앙이 피하여 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한 자는 ‘설마 그러겠어?’ 라며 무시했습니다. 그런 자는 재앙이 그 집을 삼켜버렸습니다. 장독뚜껑을 닫아놓으면 아무리 비가 내려도 장독에 비가 받아지지 않습니다. 귀 할례를 받지 않은 자가 이와 같은 경우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여러분, 성경을 잘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외침을 받았을 때는 그들이 힘이 미약했을 때가 아닙니다. 무기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들이 죄악이 관영하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했을 때였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은 주변 국가를 회초리로 사용하사 그들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타락했고, 부패했습니다. 둘러보면 모텔이 그렇게 많을 수가 없습니다. 동성연애 하는 자들이 너무 떳떳한 세상입니다. 악이 관영하여 무섭습니다. 정치인들은 사심을 채우기에 급급하고, 심지어 목회자들마저 믿지 않는 자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예배의 거룩함은 상실됐고, 교회마저 세속화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걸 회개해야 합니다. 지금 회개하지 않으면, 지금 하나님 앞에 나와 자복하지 않으면 바벨론을 들어 이스라엘을 치신 하나님이 이 나라도 예외로 두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레미야의 경고의 음성처럼 심각하게 들어야 합니다.
나중이 아니라 지금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10월 2일 서울시청광장에 모이는 겁니다. 모여 이 나라를 대신해서 회개하려 합니다. 열 명의 의인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지 않겠다고 하셨던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엘리야 한 사람의 기도로도 닫혔던 하늘 문을 여셨던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북한의 핵이 문제가 아니라 타락한 이 나라가 문제요, 나팔을 불어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 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회개만이 살 길입니다. 회개할 시간이 남아 있을 때 회개합시다. 맞고 깨닫는 것보다 맞기 전에 깨닫는 것이 지혜가 아니겠습니까? 기도만이 살 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변개함이 없는 하나님도 마음을 돌이키십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는 요나의 외침을 들은 니느웨 사람들은 왕을 비롯해 심지어 짐승까지 금식을 하며 회개했더니 하나님이 마음을 돌이키사 재앙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장식을 모아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을 신이라고 섬깁니다. 이에 진노하신 하나님이 이들을 진멸시키려고 하셨습니다. 그 때 모세가 납작 엎드려 뜻을 돌이켜 달라고, 맹렬한 노를 거두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에 하나님이 마음을 돌이키사 화를 거두셨습니다(출32).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아합 왕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악독한 왕인데도 하나님은 ‘너에게 재앙이 임할 것’이라는 엘리야의 경고를 듣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며 회개한 아합에게서 뜻을 돌이키신 적이 있습니다(왕상21:29).
여러분, 가장 위대한 사람은 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그 위대한 자의 반열에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기도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돌이키게 합시다. 우리의 기도로 이 나라를 살립시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생존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있습니다.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삼상17:47).
사사기 4장과 5장에 보면 가나안 왕 야빈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때 드보라가 “전쟁이 성문에 미쳤으나 이스라엘 사만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고”(삿5:8)라고 노래합니다. 대적들이 이스라엘을 공략하려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서 이스라엘에겐 적을 방어하거나 공격할 무기가 변변치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철 병거를 지닌 하솔 군을 격멸시켰는데,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이적과 권능을 베풀어 이스라엘을 도우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무기로 이겼다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전쟁은 오직 하나님께 달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전쟁의 승리가 아닙니다.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평화통일을 이루는 것이 우리의 소원입니다. 포탄 하나 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통일을 이뤄야 합니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위력의 몇 십배 센 수소폭탄이 이 땅에 떨어지면 다 죽습니다. 그 때 승리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미리 막아야 합니다. 회개하고 기도하여 미리 전쟁을 막아야 합니다. 블레셋이 침공하려고 할 때 사무엘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이라 하고는 거기서 금식하며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이 이 기도소리를 들으시고 우뢰를 발하사 블레셋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매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폐하여 도망했다고 했습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을 이루시고 크고 비밀된 길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렘33:3). 산헤립으로부터 수치와 모욕을 당한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 기도할 때 궁내대신 엘리아김과 서기관 셉나와 제사장 중 어른들도 굵은 베를 입고 기도의 자리에 동참했습니다. 이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은 위기로부터 나라를 건졌으며, 히스기야를 모욕하던 산헤립은 비참한 종말을 고한 일이 이사야서 37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요 요새요 방패가 되십니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시91:9~11). 그 하나님이 일하게 하는 것은 기도입니다. 회개기도입니다. 그 일을 우리가 합시다. 내일입니다. 10월 2일 오후 3시, 서울시청광장에 우리 함께 모여 국가와 민족의 평화를 위해 기도합시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이 나라를 사랑하는 자라면 다 참석해야 합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이 나라를 위경에서 건지시고, 우리의 소원하는 바를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주의 힘으로 나를 변호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이소서”(시54:1~2). 할렐루야!
경고를 무시하면
경고도 너를 무시한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