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을 넓혀라
얼마 전, 말레이시아의 국제학교를 견학할 기회가 있었다. 나는 국제학교 학생들을 보고 나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세계 각지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한단다. 세계를 염두에 두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친구들 복 받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또한 나 스스로는 어땠나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우리나라가 나의 세계였으며, 내가 활동하고 꿈을 펼쳐갈 공간이라고 생각했었다. 우물 밖에 바다가 있고 더 많은 기회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아마 대다수 학생들의 생각은 (우리나라의) 좋은 대학을 가야하니 (우리나라) 학생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힘든 경쟁을 뚫고 대학에 오니 목표가 없어져버려 부표 없는 배처럼 먹고 마시고 노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도 그랬다.
이제는 왜 그랬는지 알 것 같다. 목표를 작게 잡아서 목표를 이루고 나니 목표의식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세계를 가슴에 품고 살았다면 목표를 낮게 잡을 이유가 없다. 글로벌 무대에는 핸디캡이 없기 때문이다. 골프를 칠 때 아는 사람끼리 친다면 잘 치는 사람에게 핸디캡을 주지만 세계무대에서의 경쟁은 잘한다고 핸디캡을 주지 않는다. 살면서 더 큰 것을 품고 산다면 더욱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을 만나기 전의 나는 스스로밖에 알지 못하는 내가 곧 세계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생각의 지평을 확장시키기 원하신다. 목사님은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 꿈을 꾸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니 무한하신 하나님과 동행하여 삶의 지평을 넓히도록 노력하자.
김성일
cre8tor@naver.com
언행일치(言行一致)
인도의 정신적, 정치적 지도자로 추앙받는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에 대한 일화입니다.
단 것을 매우 좋아하는 자녀를 둔 한 여인이 간디에게 어린 자녀를 데리고 와서 가르침을 부탁하였습니다. “간디 선생님, 제 자식이 단것을 너무 좋아해서 이가 다 썩었습니다. 단 것을 먹지 않도록 따끔하게 말씀 좀 해주세요.” 간디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녀에게 아이를 데리고 일주일 뒤에 다시 오라고 하였습니다.
일주일 후에 여인이 아이를 데리고 오자 간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단 것은 몸에 해로우니까 많이 먹지 않도록 해라.” 그게 다였습니다. 여인은 의아해서 간디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이렇게 간단한 말씀이라면 지난번에 왔을 때 말씀해주셔도 되지 않았나요?” 그러자 간디가 대답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그러나 그 때는 나도 단 것을 즐기고 있었거든.”
그 사람의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일치할 때 우리는 ‘믿을 만하다.’, ‘신뢰가 간다.’는 수식어를 붙입니다.
신학교 때 설교학 시간에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설교자는 단에서 하는 설교가 50%, 단에서 내려와서 삶으로 보여주는 설교가 50%다.” 정말 그렇습니다. 기도하고 받은 감동에 따라 말씀을 선포하고 믿음의 권면을 하지만 정작 내가 그 말씀대로, 권면한 대로 실천하고 삶으로 보여주는 것은 정말 쉽지 않더군요. 총회장 목사님께서 종종 설교 시간에 “너는 그렇게 사냐고? 나는 그렇게 살아요!”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그냥 나오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을 목회하면서 점점 실감하게 됩니다.
내가 먼저 실천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말이라면, 차라리 아예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요, 초대교회의 사도였던 베드로는 영혼들을 맡은 교회의 장로들에게 권면합니다.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벧전5:3).
아이에게 던지는 충고의 말 한 마디라도 자신이 먼저 실천함으로 본이 되려 했던 간디처럼, 우리도 믿음 안에서 스스로 말과 행동을 일치시켜 서로에게 본이 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됩시다.
신혁주 전도사
blessedmic@naver.com
네 이웃을 돌아보라
1930년 어느 날, 상점에서 빵 한 덩어리를 훔치고 절도혐의로 기소된 노인이 재판을 받게 되었다.
판사가 물었다.
“전에도 빵을 훔친 적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처음 훔쳤습니다.”
“왜 훔쳤습니까?”
“예, 저는 선량한 시민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습니다. 사흘을 굶었습니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 저도 모르게 빵 한 덩어리를 훔쳤습니다.”
판사는 잠시 후에 판결을 내렸다.
“아무리 사정이 딱하다 해도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은 잘못입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고 예외가 없습니다. 그래서 법대로 당신을 판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에게 1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노인의 사정이 너무도 딱한지라 판사가 용서해줄 것으로 알았던 방청석에서는 인간적으로 너무 한다고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판사는 논고를 계속했다.
“이 노인이 빵을 훔친 것은 오로지 이 노인의 책임만은 아닙니다. 이 노인이 살기 위해 빵을 훔쳐야만 할 정도로 어려운 상황임에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방치한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도 10달러의 벌금형을 내리겠습니다. 동시에 이 법정에 앉아 있는 여러분도 50센트의 벌금형에 동참해주실 것을 권고합니다.”
그가 먼저 자기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어 모자에 담자 방청석 모두가 지갑을 열었다. 모두 57달러 50센트였다. 판사는 그 돈을 노인에게 주었고, 노인은 돈을 받아서 10달러를 벌금으로 내고, 남은 47달러 50센트를 손에 쥐고 감격의 눈물을 글썽거리며 법정을 떠났다.
이 명판결로 유명해진 피오렐로 라과디아 판사는 그 후 1933년부터 1945년까지 12년 동안 뉴욕 시장을 세 번씩이나 역임할 정도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 하려니와 못본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잠28:27)는 말씀이 생각나는 이야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