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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리시는 사랑, 꿰매시는 사랑

892호 · 2017-04-01
나도 건강할 수 있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의 죄로 인하여 여자에게는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였고, 아담에게는 종신토록 수고하여 소산을 먹으리라는 말씀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땅에는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도록 하는 저주까지 받게 되었다. 이중 삼중으로 더 힘들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엉겅퀴는 소계(小薊), 대계(大薊)라고 하고 서양에서는 밀크시슬로 많이 알려져 있다. 엉겅퀴는 국화과에 속하는 다년생 본초로 유럽에서도 2천 년 전부터 건강을 위해 섭취하였던 식물이었고, 동의보감에서도 항가새로 기록하고 있으며, 대계(大薊)란 말은 가시가 크다는 의미이다. 엉겅퀴는 간 해독, 풍열을 해독하고, 어혈을 치료한다.

가시덤불은 종류가 많은데, 그 중에 율초로 알려져 있는 것이 유명하다. 동의보감에서는 땀구멍에서 피가 나는 경우, 나병, 대장/방광암 및 불면증, 정신분열증에도 사용된다.

저주로 받았던 엉겅퀴와 가시덤불은 하와에게는 어혈을 치료하고, 해독제로써 출산 후의 염증을 치료해주는 약초였던 것이다. 이는 저주 속에서도 하나님이 치유의 방법을 주신 것으로 해석이 된다.

또한 열왕기하 20장 7절에 “이사야가 가로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종처에 놓으니 나으니라” 라는 말씀이 있는데, 여기에 나온 무화과는 어떠한 역할을 할까?

무화과는 항암약물에도 들어가는데, 위장을 튼튼하게 하고 해독효과 및 염증을 해소시키며, 소화불량, 장염, 변비, 이질들에도 사용이 되고 있다.

또 에스겔 47장 12절에는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는 말씀이 있고, 요한계시록에도 약 재료가 되는 잎사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우리가 아는 아스피린도 버드나무 껍질에 주원료가 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대자연속의 약초들은 창세기부터 사람들의 죄로 인하여 생기는 질병을 치유할 수 있도록 예비해주신 선물로써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약초들도 나에게 맞는지 아닌지를 정확히 잘 알고 사용할 때는 약초가 되나, 반대되는 약초를 남이 좋다고 나도 좋겠지 하고 사용하게 된다면 약초가 아닌 독초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공부를 하여 사용해야 나에게 맞는 약초를 사용할 수 있다.

Dr. 설재현

kseolmed@hanmail.net

오늘의 메시지

생각을 바꾸면 기적이 일어난다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젊은 시절 친구와 사냥을 갔을 때의 일이다.

친구가 늪에 빠져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비스마르크는 달려가서 친구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며 말했다. “자네를 건지려다가는 나까지 빠져죽겠네. 그렇다고 그냥두면 자네의 고통이 심할 것 같으니 고통을 덜어주겠네!” 비스마르크는 방아쇠를 당기려고 하였다. 친구는 몹시 분노하며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쓴 결과 늪에서 나오게 되었다. 그때 비스마르크는 말했다. “내 총은 자네의 머리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자네의 생각이었네.”

인생을 살다보면 도저히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문제가 생길 때가 있다. 이럴 때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곧 풀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시험관이 문제를 낼 때는 답을 알고 문제를 낸다. 즉 문제는 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고전10:13).

근래 허리 수술로 몸이 불편해 교회에 나오시지 못하는 권사님을 심방했다. 교회에 나오시라 했더니 혹시나 넘어질까 봐 겁나서 4월쯤에나 나가려고 하신단다. 그래서 왜 넘어지실 것을 생각하시느냐, 교회 나가면 안 넘어지고 하나님이 건강케 하실 것을 생각하고 금주부터 당장 나오시라 권면하며 귀신 쫓고 기도해드렸다. 목사의 권면과 기도에 아멘으로 순종하신 권사님이 3주째 교회에 나오고 계신다. 처음에는 부축 받아 겨우 오시더니 이제는 건강하게 혼자서 걸어 나오신다.

생각의 결과는 이렇듯 엄청난 것이다. 생각을 바꾸면 하나님의 창조 능력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김상욱 목사

ksw9669@hanmail.net

세상을 보는 창

Never give up!

어떤 책을 읽다가 우연히 카피라이터(Copywriter)들이 하는 작업에 대해서 흥미롭게 읽어본 적이 있었다. 그들은 효과적이며 매력적인 광고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며 방대한 양의 자료를 수집한다. 이러한 노력과 땀의 결과로 한편의 광고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런 광고 제작자들의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TV나 영화의 중간이나 시작하기 전에 나오는 광고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광고가 나오면 짜증을 내거나 채널을 돌려버리곤 한다. 즉 광고를 만드는 사람의 노력과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자세가 천지 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광고를 좋아하지 않고 오히려 짜증을 내는데도 불구하고 그 광고의 효과는 대단하다는 사실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중간에 나오는 광고를 보면서 짜증을 부리지만, 결국은 그 광고에 나오는 물품을 사게 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광고의 효과가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여기서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고, 또한 포기하지 말라고 말씀한다. 이 말은 곧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거나 포기 한다는 의미이다. 왜 낙심하고 포기하는가? 그것은 우리들의 숨은 노력과 희생을 보지 못하고, 마치 TV 광고를 보는 사람들이 광고를 냉대하는 것처럼 우리를 냉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밤새 소리 없이 지속적으로 내리는 눈이 쌓이듯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우리들의 노력과 수고는 때가 되면 놀라운 열매와 결과로 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일들과 사역이 광고의 일과는 다르지만, 그들의 광고를 냉대하는 사람들이 이 광고에 의해서 물품을 구입하듯이 우리의 선행에 의해서 세계는 바뀌게 되기 때문이다.

윈스턴 처칠의 유명한 연설문처럼, ‘Nev-er give up, Never give up, Never give up.’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포기 하지 말라!

이정금 전도사

jungkm@nate.com

참된 깨달음

솔개의 장수비결!

시골에서는 병아리를 채가는 걸로 유명하며, 한국 전래동화, 우화에도 많이 등장하는 솔개는 가장 장수하는 조류로 최고 약 70년의 수명을 누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솔개가 40년을 살게 되면 부리는 길게 자라서 가슴에 닿고, 발톱은 노화하여 사냥감을 낚아채기에 효과적이지 못하며, 깃털은 짙고 두껍게 자라서 하늘을 마음껏 날기에 무거워지는데, 이 때쯤이면 솔개는 중대한 선택을 한다고 합니다. 하나는 그대로 죽을 날을 기다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약 6개월에 걸쳐 매우 고통스러운 변화의 과정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두 번째를 선택한 솔개는 먼저 산 정상으로 높이 올라가 그 곳에 둥지를 틀고 고통스러운 수행을 시작하는데, 먼저 부리로 바위를 쪼아 부리를 깨서 빠지게 합니다. 그러면 서서히 새로운 부리가 돋아나는데, 이제 새로 돋은 부리로 제 구실을 못하는 발톱을 하나하나 뽑아내는 과정을 거친다고 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돋아난 발톱으로 날개의 깃털을 죄다 뽑아냅니다. 이렇게 반년이 지나면 새 깃털이 돋아나게 되고, 솔개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갖춘 채 30년의 수명을 더 누리게 된다고 합니다.

‘솔개의 환골탈태’, 뼈가 바뀌고 태를 벗는다는 뜻으로,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하여 전혀 딴 사람처럼 된다는 것인데, 한낱 날짐승도 자기성장과 변신을 위해 낡은 고정관념을 깨고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게 놀랍기만 합니다.

지난 달 교역자 회의를 통해 이시대 목사님은 매너리즘(mannerism), 곧 비전이 없는 현상유지 상태나 자세에 빠지지 말라는 경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실 적극적인 열정으로 시작된 일들이 습관적으로 반복되다보면 어느덧 편하고 익숙해지면서 지지부진하게 되는 걸 부정할 순 없거든요.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았는데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진 않습니다. 가장 강력한 라이벌인 자기 자신을 극복해야만 가능한 일이라면, 우리 모두 새로운 30년을 위해 나라도, 개인도, ‘환골탈태

(換骨奪胎)’, 필요하지 않을까요?

김정옥 전도사

jcc01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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