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885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우리 공동체에서 누가 주인공일까?

885호 · 2017-02-11
평신도 묵상노트

이집트 대왕의 최측근 보디발은 변방 히브리 출신의 노예 요셉이 자신 덕분에 호위호식하며 잘 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은 하나님께서 요셉을 생각하셔서 보디발이 하는 일들이 잘 풀리도록 하신 것이었다. 아람의 실세 나아만 장군은 자신이 히브리 출신의 오고 갈 데 없는 소녀에게 좋은 일자리를 줘, 안정된 삶을 살게 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중에 그 소녀가 준 정보 덕분에 그의 평생의 숙제였고 극심한 고통이었던 문둥병을 고쳐 새 삶을 얻었다.

간호사인 나는 홀로 살고 계신 저소득층 어르신을 방문하여 건강을 관리하는 일을 한 적이 있었다. 고혈압, 당뇨, 관절염 등의 경미한 건강문제를 가지고 계시는 분들이 주를 이루었기에, 내가 그분들에게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간절히 나를 기다렸고, 열렬히 내 방문을 환영했다. 그 때는 내가 그분들의 삶에 크게 도움을 주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십년이 넘은 지금 생각해보니 오히려 그 분들이 내게 해주신 것이 훨씬 많았다. 그분들에게서 70~80년 세월을 들으며 인생을 배웠고, 딸처럼 사랑을 받아서 내 마음이 늘 풍성했고, 나라에서 주는 월급까지도 받았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 기준으로 지극히 작은 자가 바로 당신이라고 하신다. 이것은 참으로 세상이 보았을 때 말도 안 되는 역설과 아이러니다. 작은 자가 하나님이라니!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세상은 생산력을 증대시킬 수 있는 젊은이가 최고이며, 건강하고 똑똑한 강자만 지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어린이, 노약자가 주인공이고 하나님이라고 한다. 그런데 교회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여, 그들이 오는지 가는지도 모르는 푸대접을 하고 있다. 그런 교회에 어찌 하나님이 복을 주실 수 있을까?

지금은 교회보다 세상이 한 발작 앞서 나가고 있다. 정치권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 차원에서 많은 정책을 제시하며 시행하고 있으며, 평범한 시민들 사이에서도 약자를 위한 봉사와 섬김을 하는 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기독교처럼 자본주의와 결탁하여 오용되기 쉬운 종교도 없다고 한다. 하기야 우리 마음이 강자 중심의 이 세상 가치관으로 가득 차 있다면, 성경 어느 말씀인들 제대로 해석되고 악용되지 않을 수 있을까. 약자가 하나님이라는 토대 위에 세워진 교회는 단순히 약자를 배려하는 차원이 아닌, 약자 중심적인 삶의 양식을 보여줄 수 있어야한다. 약자를 하나님처럼 귀히 대하고, 상대적으로 소외된 그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여주고, 가장 좋은 자리를 배정해주는 틀이 정착되어야하는 것이다. 성경은 그런 교회 때문에 이 세상이 복 받는다고 한다.

박소향

bp650624@naver.com

겨자씨만한 믿음

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

나는 중고등학생 때 아버지가 싫었었다. 매사에 열정이 없고 게을러 보이는 것이 싫었었다. 그러나 커가면서 나 역시 무엇 하나 열정적으로 해본 것이 없는 것을 느낀다. 삶의 의욕도 없고 뜻도 없는 것이 내가 싫어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었다. 결혼을 하고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야 느끼는 것은 아버지는 나보다 훨씬 더 현명하시다는 것과 나를 아주 많이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어렸을 때 이것을 깨달았더라면 아버지께 힘이 되어드렸을 텐데… 라고 뒤늦은 후회가 있다.

묵자는 군자불경어수이경어인(君子不鏡於水而鏡於人)이라고 하였다. 군자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타인을 거울삼는다는 말이다. 물에 자신을 비추어 본다면 자신의 외모가 보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게 자신을 비추어 본다면 스스로의 인격을 볼 수가 있다. 거울에 대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남을 가리키는 것인가? 아니면 나를 가리키는 것인가?

예수님께서는 남을 비판하지 말고 비판하기 전에 자기 자신부터 보라고 말씀하셨다(눅6:37, 마7:1~3). 남을 비판하기에 앞서 남의 허물은 곧 나의 허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사랑으로 품어주어야 한다. 군자라면 타인을 거울삼아야 하겠지만 타인이라는 거울에 얼마간의 흠이 있어 내 흠을 가려줄지 어떻게 아는가?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라는 완전무결하고 흠 없는 영적 거울 앞에 스스로의 부끄럽고 죄 많은 모습을 비추어 보아야 한다. 어쩔 수 없는 자신의 못난 모습을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상대방의 죄를 보면서 나의 죄를 떠올릴 수 있다면, 죄에 가려진 타인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가 보일 것이다.

김성일

cre8tor@naver.com

신앙논객

믿음의 프런티어(Frontier)가 되라

이탈리아의 모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1492년에 신대륙을 발견합니다. 그를 개척자로 볼 것인지 침략자로 볼 것인지에 대한 역사적인 견해는 분분하지만, 그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는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주었는데, 반면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당신이 한 일은 그냥 배를 띄우고 서쪽으로 계속 나가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라고 폄하했습니다. 그 때 콜럼버스는 자신이 한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대답하고는, 대뜸 계란 하나를 테이블 위에 똑바로 세워보자고 제안합니다. 타원형으로 생긴 계란을 테이블에 바로 세우지 못한 사람들이 이내 포기하자, 콜럼버스는 계란의 한 쪽 부분을 톡톡 쳐서 그 깨진 부분으로 테이블 위에 계란을 세웠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는 누구나 세울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따졌고, 콜럼버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제가 이렇게 할 때까지는 아무도 이렇게 하겠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일을 한 것입니다.”

이런 정신을 가진 자들을 우리는 개척자, 즉 프런티어(Frontier)라고 합니다. 세상이 변화되는 것도,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것도 이러한 정신을 가진 자들을 통해 가능합니다. 성경의 대표적인 프런티어인 여호수아와 갈렙은 주변의 상황과 환경 때문에 두려움에 떨었던 열 명의 정탐꾼과는 달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의 고백을 했고, 결국 그 두 사람만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생면부지로 잘 알지도 못하는 이 나라에 건너와 온갖 핍박과 어려움 속에서도 복음을 전했던 선교사들이 있었기에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라고 찬송하는 나라가 될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할 수 없다’ 말할 때 ‘할 수 있다’ 믿음으로 고백하는 사람, 죽음과 위협이 두려워 아무도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의와 진리와 복음을 외치지 않을 때 믿음으로 그 일을 하는 사람, 죄악을 밥 먹듯이 하는 이 악한 세대 가운데서도 절제와 인내로 믿음의 순전함을 굳게 지키는 사람, 그런 믿음의 프런티어(Frontier)가 됩시다.

신혁주 전도사

blessedmic@naver.com

885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Text 주일설교
성도들의 간증
지혜의 말씀
귀를 기울이세요
Cartoon
붕우칼럼
객원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