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중국집에 가면 항상 갈등이 생긴다. ‘짜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짜장면을 먹으러 갔다가도 막상 옆 테이블에서 전해지는 얼큰한 짬뽕 냄새에 취하면 절로 회가 동한다. 치킨을 시킬 때도 갈등은 계속된다. ‘양념치킨을 먹을까, 아니 그래도 후라이드가 낫겠지?’
메뉴판을 앞에 두고 선택장애를 겪는 것은 비단 필자만은 아닌 것 같다. 이를 위해 요식업주들이 대동단결하여 위대한(?) 작품을 내놓았으니 그것이 바로 ‘반반 메뉴’다! ‘짬짜면,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섞어 만두(고기&김치)에 육해공 피자까지….’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그야말로 대박이다. 선택할 때 이것저것 눈치 보지 않아서 좋고,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으니 이 어찌 즐겁지 않으리오!
그러나 인생이 선택의 연속이라 하지만 선택할 수 없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바로 영생의 문제다.
얼마 전, 요양보호사로 일하시는 성도님께서 주일 대근 문제로 상담을 요청해왔다. ‘주일을 지키려고 다른 분에게 대근을 요청하려면 적지 않은 수당을 포기해야 하는데 달리 방법이 없겠느냐’는 것이다. 그 성도님의 가정 형편을 생각한다면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크리스천에게 있어 주일성수는 결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필수다. 타협의 대상도 아니다.
‘호흡해야 하나, 먹어야 하나, 마셔야 하나, 잠을 자야 하나?’ 이러한 문제로 선택장애를 겪는 자는 하나도 없다. 선택(選擇)이 아닌 당위(當爲)의 문제인 까닭이다. 그러나 마귀는 끊임없이 당위의 문제를 선택의 문제로 끌어내리려 한다.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은 영생의 문제마저도 ‘갈까 안 갈까, 할까 하지 말까’ 선택할 수 있다고 꼬드긴다. ‘나중에 또 기회가 있을 거’라며 눈을 가리고 더 편안하고 달콤한 길을 제시한다. 착각하지 말자. 영적인 일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다. 속지 말자. 신앙생활에 중간 지대는 없다. 오직 한 길, 좁은 길 뿐이다.
‘성리대전’을 보면 ‘부끄러움이 없으면 못할 짓이 없다(無恥則無所不爲)’고 했다. 심판을 고려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데 어찌 부끄러움인들 있겠는가! 시편 16편 8절에서 다윗은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라고 고백한다. 늘 하나님을 의식하고 그 말씀을 따르는 것이 정도요 우리 영혼이 사는 길인 것이다.
생각 없이 물건을 들다 허리 나가고, 어설프게 샅바 끈을 잡으면 되치기 당하기 십상이다. 이참에 믿음의 허리띠를 단단히 동여매자.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리라(수24:15)!’고 했던 여호수아의 고백처럼, 환경 때문에 질질 끌려 다니지 말고 당당히 믿음을 선포하자! 그리고 그 결과를 기대하자!
신현명 목사
yeddo1@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