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하는 재미로 살아보자(롬1:13~16)
“2017년은 전도하는 재미로 살아봅시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성도님들의 얼굴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이 갑니다. ‘죽기 살기로 해도 어려운 게 전도인데 전도하는 재미로 살아보자니요….’ 라는 표정일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 왜 전도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전도가 잘 되는지 알게 되면 전도하는 재미가 생길 테니 얼굴 푸세요. 성적이 자꾸 오르면 공부할 맛이 나서 애들이 자꾸 공부하게 되듯, 전도의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면 전도의 재미가 생기고 분명히 전도에 열을 내실 겁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에 보내는 편지 첫 부분입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1:14~15)고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이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무슨 빚을 지었을까요? 아직 만난 적도, 얽힌 적도 없는 사람들인데 말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사도적 직분에 대한 사명의식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죄악 중에서 부르시어 구원하실 뿐 아니라 사도로 택하심에 감사했습니다. 그의 고백처럼 ‘나의 나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아는 지라, 그는 늘 하나님께 빚진 마음이었습니다. 갚을 길 없는 한량없는 은혜라 여겼습니다. 부모님의 은혜도 다 갚을 수 없는데 누구인들 하나님의 은혜를 갚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조금이나마 은혜를 갚으려고 봉사하고, 물질을 드리면 더 좋은 것으로 넘치게 주시니 늘 빚진 자가 될 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죽어도 하나님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으니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서 받은바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능한 모든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여러분, 전도가 안 됩니까? 전도가 힘듭니까? 사도 바울처럼 빚진 자의 마음을 가지면 전도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만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습니까? 아닙니다. 동일하게 우리도 너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구령의 열정을 보십시오. 상상 이상입니다. 신약성경을 둘로 압축하자면, 하나는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셨다는 것이요, 두 번째는 사도 바울의 구령의 열정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다 돌로 맞습니다. 얼마나 많이 맞았던지 사람들은 그가 죽은 줄 알고 성 밖에 내다버립니다. 그런데 바울은 살아있었고, 다시 일어나 다음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를 향하여 선교여행을 계속합니다. 온몸이 터져 피투성이가 되었을 텐데 일어나 다시 전도를 하러 떠난 것입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는 그의 말은 절대 공언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는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인을 치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보증하셨습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끝이냐?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마땅히 할 일이 있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권능, 곧 권세와 능력이 왔으니 그것으로 나가 주님의 증인이 되는 일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고린도전서 12장의 은사와 갈라디아서 5장의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데, 이것을 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바로 주님의 증인이 되라,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라, 땅 끝까지 가서 영혼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세상을 향한 궁극적인 목적은 영혼구원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중 단연 으뜸도 영혼을 구원함에 있고(막1:38), 예수님이 12제자를 삼으신 이유도 먼저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기 위해서요, 다음은 전도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막3:14). 교회의 사명 역시 영혼구원에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노아의 때와 같이 패역한 이 시대를 참고 계시는 줄 압니까? 이방인의 숫자가 찰 때까지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롬11:25). 아직 구원받을 백성은 세상에 많습니다. 그런데 나가 외치는 자가 없이 어찌 그들이 복된 소식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듣게 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 영혼을 구원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하나님의 자녀라 인침을 받은 우리가, 죄인인 우리를 건지사 영생을 얻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빚진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여러분, 전도가 잘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무작정 나가니까 잘 안 되는 겁니다. 중대한 일에 앞서 반드시 준비가 필요한 법,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전도 용사들의 간증을 들어보세요. 하나 같이 다들 기도로 중무장하고 나갔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타당한 것이,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요6:65)는 말씀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전도할 영혼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고, 전도의 문이 열릴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골4:3). 또한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조선을 대표하는 의학자인 허준이 명의가 될 수 있었던 근본 바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환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었습니다. 그의 스승에게서 의술을 배우기 전에 환자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배웠기에 그가 당대 최고의 명의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으면 전도의 달인이 될 것입니다. 또한 전도는 마귀와의 영적 전쟁이므로 마귀와 악령과 귀신을 몰아내고 승리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며, 핍박과 환난 중에도 좌절하지 않게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조목조목 기도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기도했으면 즉시 나가야 합니다. 전도는 절대 뒤로 미루면 안 됩니다. 요한복음 4장에 있는 비유처럼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잠시 주저하는 사이에 어떤 영혼이 지옥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25장에 주인에게 칭찬받은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들처럼 즉시 나가 일해야 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처럼 핑계나 대고 있으면 어두운 곳으로 내쫓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식장에 가서도, 장례식장에서도, 목욕탕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많이 뿌리면 많이 거둔다’는 법칙을 알아야 합니다. 예전에 우리 어머니는 논이나 밭에만 씨를 뿌린 것이 아니라 논두렁 밭두렁에도 촘촘히 콩을 심었습니다. 당연히 다른 집보다 많이 거두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전도도 그렇습니다. 많이 뿌리다보면 많이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때를 얻든지 못 얻는지 복음의 씨를 뿌려야 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영안의 눈도 떠야 하지만 구령의 눈도 떠야 합니다. 건져야 할 영혼이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혹시 애꾸눈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아예 영적 소경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경륜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내가 하지 않는다고 하나님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촛대를 옮기셔서 다른 누군가를 통해서라도 당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다른 누군가를 들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부림절을 맞게 하셨을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는 누굴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해 하는 것입니다. 내 사후의 때를 위해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전도합시다.
이제 전도하는 재미로 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할 수 있습니다. 하면 됩니다. 해봅시다! 할렐루야!
결코 차선은 없다
오직 최선을 다하자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