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프리카 속담에 ‘한 어린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다. 이는 세상 속에서 온전히 있기 위해서는 남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남을 대접하고 배려하고 섬기는 것은 결국 나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눅6:32)는 황금률에서처럼 자기 자신을 대접하는 것은 남에게 대접함으로도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배려하고 섬기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백인백색, 지구상에는 70억의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 수만큼의 개성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모든 사람을 같은 방식으로 배려하고 섬긴다면, 그것은 누군가에게는 불쾌함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
그래서 배려의 기본은 관심과 애정이다. 그 사람에게 관심과 애정이 있다면 어떤 형식으로 배려가 이루어져야 하는지, 어떻게 하는 것이 대접하는 것인지 알 수 있게 된다. 내 뜻대로 상대를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배려하게 된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자아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자기 뜻대로, 자기 의지대로 하나님을 섬기려 하는 자들이 있다. 자기 의지대로 기도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되기를 원한다’고 하신 예수님처럼 되어야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러니 자신의 의지와 뜻은 제치고 하나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이 나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으려 노력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잘 섬기는 것이 아닐까.
김성일
cre8tor@naver.com
굳은살과 티눈
우리의 발은 하루도 편한 날이 없다. 발을 괴롭히는 여러 가지 중 하나가 굳은살이다. 굳은살은 죽은 피부가 쌓여 피부가 두껍게 된 것을 말하며, 압박이나 마찰이 같은 부위에 계속 가해지면 굳은살이 생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굳은살로 인해 처음 발바닥에 통증이 왔을 때 그냥 지나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굳은살은 더 확대되고 더 단단해져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의 통증을 가져온다. 굳은살은 주위 살에 비해 매우 딱딱하므로 이 굳은살이 주위 조직을 눌러주는 상태가 되어 마치 신발 속에 작은 돌을 넣고 걷는 것과 비슷한 상태가 된다. 굳은살을 없애는 방법은 먼저 마찰이나 압력이 피부에 가해지지 않도록 한다. 발에 맞는 편안한 신발을 신거나 압력이 쉽게 분산될 수 있게 제작된 신발을 신는 것이 좋고 장시간 걷거나 뛰는 운동을 피하는 것이 좋다. 압력이 심한 부위에 쿠션패드를 부착해서 특정부위에 압력이 가해지는 것을 줄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뼈의 돌출에 의해 발생한 경우는 수술적인 치료를 고려해볼 수 있다. 이미 생긴 굳은살은 압력이나 마찰이 제거되면 자연적으로 좋아지는 경향이 있다. 굳은살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각질연화 및 용해제를 사용할 수 있는데 부분적으로 각질을 용해시켜주는 살리실산연고나 젖산로션 등이 있다.
티눈은 굳은살과 마찬가지로 마찰과 압력 같은 기계적 자극으로 생기는데 국소부위에 힘이 집중되면 티눈이 생기고 1cm 이상의 비교적 넓은 부위에 힘이 작용하면 굳은살이 생긴다. 티눈은 발가락 사이와 신발이 닿는 엄지나 새끼발가락 위에 잘 생긴다. 흔한 원인으로는 잘못된 걸음걸이나 발가락이 변형되어 있거나 어느 특정 부위가 신발에 지속적으로 눌릴 때, 조이는 양말이나 스타킹, 신발 안의 봉합선이 발가락과 반복적으로 마찰될 경우, 오랫동안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 발생하게 된다. 티눈을 칼로 잘라내는 것은 위험하며 집에서 할 수 있는 치료는 뜨거운 물에 발을 푹 담가 티눈을 불린 다음 눈썹 가위로 살짝 잘라낼 수 있다.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고전12:23).
Dr. 조희경
pearl9230@naver.com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하나님이 가르쳐 준 한 가지~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요)~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버리고 우리 서로 사랑해 ♬”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서 자주 듣고 따라 불렀던 찬양 가사의 일부입니다. 가사 안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의 모습이 구구절절 녹아있는 명곡이지요. 한편으로는 우리 안에 얼마나 많은 미움과 다툼, 내 이웃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있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마태복음 20장은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한 비유로 포도원에 품꾼을 들여보내 일을 시키는 집 주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새벽 일찍부터 한 데나리온을 얻기 위해 일한 사람들이 제 십일 시, 지금 시간으로 오후 5시에 와서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으니까 집 주인을 원망합니다. 한 시간 일한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으니까 꼬박 하루 종일 일한 자기들은 더 받을 줄 알았던 거죠. 그랬더니 집 주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않았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마20:13~15)
요한복음 21장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제자들 앞에 나타나신 뒤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수제자 베드로가 다시 세 번 예수님께 사랑을 고백하며 죽기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받았는데, 그런 그의 눈에 예수님이 사랑하는 다른 한 제자가 눈에 밟힙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요21:22).
우리도 때론 새벽부터 일한 사람들처럼, 또 베드로처럼 나를 부르신 하나님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주목합니다. 늦게 된 자가 나보다 먼저 되면 미워하고, 나보다 더 사랑받고 복 받는 것 같은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그런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네가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신혁주 전도사
blessedmic@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