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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3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내 인생은 내가 만드는 작품이다(잠4:23~27)

873호 · 2016-11-19

제가 어떤 사람에게 “이봐, 암은 몸에 발생하지? 그런데 말야, 그 암을 그냥 방치하면 결국 암이 몸을 잡아먹고 만다네. 암 때문에 육체가 죽고 만다는 거야. 녹은 쇠에 슬지? 그런데 녹을 그대로 두면 그 녹이 기계를 못 쓰게 만들고 만다는 거야. 녹 때문에 몇 백만 원, 혹은 수억 하는 기계를 버릴 수 있다는 거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제 말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무슨 말씀인지 잘….” 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제 말 뜻을 아십니까? 내 안에 생각이란 것이 있는데, 그 생각에 의해 내 인생이 좌우된다는 말입니다. 내 생각이 부정적이고, 악을 도모하고 있는데 그것을 그대로 두면 결국 내 인생을 망친다는 것입니다. 암이 나를 죽이고, 녹이 기계를 망가트리듯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는 말씀을 잘 생각해야 합니다. 내 생각이 내 인생을 명작으로 만드느냐, 졸작으로 만드느냐, 높이 평가 받느냐, 폐기처분 되느냐를 좌우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내가 만드는 작품입니다. 그런데 그 시발점이 바로 생각에 있다는 겁니다. 내 생각대로 내 인생이 만들어진다는 겁니다. 생각을 자동차에 대입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자동차는 운전수가 조작하는 방향대로 움직입니다. 우측으로 틀면 우측으로 가고, 좌측으로 틀면 좌측으로 갑니다. 직진하면 앞으로, 후진하면 뒤로 갑니다. 우리 인생이라는 자동차도 우리의 생각대로 앞으로도 가고, 뒤로도 가고, 우측으로도, 좌측으로도 갑니다. 성공으로도 가고, 실패로도 가고, 행복으로도 가고, 불행으로도 간다는 겁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그곳으로 데려다주는 것이 바로 생각입니다. 내 생각이 포기해야겠다고 하면 포기하는 거고, 할 수 없다 하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축복받을 것이다, 나는 잘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하면, 내 생각대로 인생이 그리 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내 인생의 핸들이기 때문이고, 그 운전대는 당신의 마음이 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우리 속에는 선과 악이라는 두 마리의 짐승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이기는지 압니까? 내가 먹이를 많이 주는 쪽이 이깁니다. 내가 선하게 살겠다고, 선을 추구하겠다고 생각하면, 즉 선에게 먹이를 주면 선이 이기는 것이고, 남의 등이나 치고 살아야겠다, 멋대로 살겠다 하고 죄악에 먹이를 주면 악이 이겨 악인이 되고, 결국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생각이 중요합니다. 동생을 죽여 최초의 살인자가 된 가인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창4:7). 죄가 네게서 나오니 죄를 다스리라는 말입니다. 누구 탓할 게 아니라 네 탓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하신 그 말씀을 오늘날 우리에게도 “내 생각을 다스리라. 죄의 근원이 거기서 나온다” 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자기의 생각을 다스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적이 누구일까요? 바로 자신입니다. 자신과 싸워 이기는 자가 최고의 승리자입니다. 대사도 바울조차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7:24)고 한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죽하면 성경도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잠25:28)고 말씀하셨겠습니까?

여러분, 죄를, 악을 이겨야 합니다. 부정의 생각도, 허망한 생각도 버려야 삽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인생이 명작이 될 수 없습니다. 간혹 죄를 물마시듯 하는데 잘 살고 잘 나가는 사람이 있지요? 그러나 그는 지금 미끄러져 가고 있는 겁니다. 죄의 대가는 반드시 있고, 죄의 결과는 분명히 사망입니다(롬6:23). 예수님이 일흔 번에 일곱 번도 용서하신다는 그 말씀만 잡고 개가 토한 것을 도로 먹고, 돼지가 씻겨놔도 다시 우리에 눕는 것처럼, 죄를 마구 짓는 사람이 있습니다. 회개하면 죄 사함은 받겠지요. 그러나 대가는 치러야 합니다. 뿌린 씨는 거둬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에는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마음이 합했다는 다윗마저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고

(삼하12:10~11),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내느라 죽을 고생을 한 모세도 므리바에서 반석을 두 번 내리치더니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죄목으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신32:51~52). 저요? 제가 목회 초기에 교만하고 정직하지 못하자 하나님은 교회를 깨뜨리셨고, 제 사지를 마비시켜 버렸습니다. 더 이상 죄짓지 말라는 경고였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 저는 큰 자가 되기 전에 깨끗한 자가 되리라 마음먹고 지금까지 왔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피 뿌리기까지 죄와 싸우십시오. 성경은 얼마나 죄와 싸워야 하는지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5:29~30)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인생에 암적 요소가 있거든, 내 인생을 녹슬게 하는 것이 있거든 가차 없이 잘라내라는 것입니다.

죄악은 뿌리째 뽑아야 합니다. ‘나무는 뿌리까지 뽑아야 자라지 않고, 흐르는 물은 물길의 원천을 찾아 메워야 다시는 흐르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잔디에 있는 잡초를 뿌리째 뽑아야지, 아니면 질긴 생명력으로 다시 잡초가 무성해진다는 말입니다. 민수기 31장에 보면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철저히 멸절시키지 못함으로써 훗날 다시 세력을 규합한 미디안 족속에 의해 엄청난 시련을 당하지 않습니까(삿6~8장)? 이스라엘 역사만 그런 게 아닙니다. 당신 인생의 죄악을 송두리째 뽑아내지 않으면 당신 삶도 이렇게 됩니다. 궤짝 안에 사과 하나가 썩으면 전체 사과가 썩지 않습니까?

그럼 어떻게 죄와 싸워 이길까요? 어떻게 내 생각을 좋고 선한 것으로 채울 수 있을까요? 어느 날, 무디는 컵을 들고 교인들에게 어떻게 컵 속의 공기를 조금도 남기지 않고 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공기 펌프로 빼면 됩니다.” 라고 말하자, 무디는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컵이 깨집니다.”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후, 무디는 미소를 지으며 주전자를 들고 컵에 물을 가득 부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됩니다. 자 보세요. 컵에 물을 가득 채우면 공기는 조금도 남아 있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무디는 다시 말했습니다. “우리 삶 속에서 죄를 빼내려고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죄 가운데 우리는 노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컵에 물을 가득 따르면 공기가 빠져나가듯이, 우리 삶 속에 죄를 빼내려면 우리 영혼에 성령을 가득 채우면 됩니다. 오로지 성령으로 충만히 채워짐으로 죄를 제거하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성령으로 충만하면 죄를 이길 수 있고, 죄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성령이 소멸하여 내 영이 비게 되면, 악한 영이 자리를 차지하고 우리를 죄의 길로 이끌게 됩니다. 그러므로 늘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그러면 내 인생이 명작이 되어 남에게도 추앙을 받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도 당당하게 내밀 수 있는 멋진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

사후약방문 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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