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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1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해 아래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다(눅12:1~5)

871호 · 2016-11-05

제가 70평생 가까이 살면서 깨달은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해 아래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절대 밝혀지지 않을 것 같은 일들도 언젠가는 다 밝혀집디다. 무슨 일이든 진위여부는 가려집디다.

본시 하나님은 숨길 것이 없는 아름다운 에덴동산을 창조하여 첫 사람인 아담에게 넘겨주셨습니다. 아담이 죄를 알기 전에는 벌거벗은 채로 부끄러워하지 않고 잘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선악과를 먹은 후 죄에 빠지자 먼저 한 것이 숨는 것이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부르시는 음성에 숨었습니다.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창3:8).

여러분, 숨기는 것은 죄의 속성입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해 아래 드러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빛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밝은 빛 아래서는 티끌조차도 다 보이지 않습디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그들은 누가 봐도 거룩한 자들이었습니다. 적어도 모든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는 들키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23:27) 라고 하셨습니다. 외식과 가식으로 가장된 그들의 실체를 예수님은 밝히신 것입니다. 그리고 겉으로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한 그들을 호되게 야단치셨습니다.

다윗은 완전범죄를 꿈꾸었습니다. 그것이 가능할 줄 알았습니다. 또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사건의 전모는 이렇습니다. 목욕하던 밧세바, 곧 자신의 신복인 우리아의 처에 반하여 그를 취하고 그가 잉태하자 다윗은 근심했습니다. 고민하던 그는 전쟁터에 있던 우리아를 불러 그의 아내와 동침케 하려 했으나 충직한 우리아는 전쟁 중에 안일을 꾀할 수 없다하여 이를 거부합니다. 난감해진 다윗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장을 세워 그를 전사하게 합니다. 누가 보아도 완전한 각본이었습니다. 그의 아내도, 전쟁터의 군인들도 눈치 채지 못한 완전범죄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다윗의 죄는 천하에 드러나고 맙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보내어 다윗의 죄를 꾸짖습니다. 다윗은 나단의 비유에 자신의 죄를 깨닫고 침상을 적시는 회개를 합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죄는 사함을 받으나 대가는 치러야 하는 법, 이 악행으로 다윗은 아들을 잃는 아픔을 겪어야 했고, 그의 아들 압살롬과 자신의 첩이 백주에 동침하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이것이 교훈이 되어 이 후 다윗의 삶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진실된 것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영원히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대 속일 수 없습니다. 사람의 눈은 피할 수 있어도 하나님의 눈만큼은 절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면전에서(코람데오)’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눈 한 번 깜빡거리지 않으시는 하나님, 주무시도 않으시는 하나님,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하나님, 우리가 숨 쉬는 것조차 파악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하고, 그 분 면전에서 사는 삶을 산다면 우리의 삶은 온전한 삶, 적어도 온전하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요셉이 그랬습니다. 요셉이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가정에 들어가 신임을 받게 됩니다. 보디발은 요셉에게 그의 아내를 제외한 모든 것을 위임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보디발의 아내가 아무도 없는 틈을 기해 요셉을 유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요셉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39:9). 요셉은 이 일로 누명을 뒤집어쓰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하나님은 그런 그를 최고의 자리에 앉히시며 만인 앞에서 그를 신원해주셨습니다.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잠15:3).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진실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행5:1~2). 분명히 ‘감추매’라고 했습니다. 아까 말씀 드렸죠? 숨기는 것은 죄의 습성이라고요. 그러나 성령에 충만한 베드로는 이 사실을 단번에 알아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자신의 소유를 팔아 드리고도 저주를 받아 내외가 한 장소에서 죽는 비극을 초래합니다. 성경은 죽은 사유에 대해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행5:4)

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앞에 무엇을 숨기겠습니까?

목회를 32년 하다 보니 별의별 일이 다 있습니다. 몇 해 전의 일입니다. 한 성도가 담당 전도사에게 십일조를 낸 모양입니다. 그런데 연말에 연말정산을 부탁했는데 이게 기록이 되지 않은 겁니다. 그게 제 귀에 들렸습니다. 그래서 행정전도사를 불러 확인을 하니 본부로는 안 들어왔다는 겁니다. 저는 이 설교를 단에서 했습니다. 누구라고 호명하지 않고 대들보를 쳤습니다. 그랬더니 그 전도사는 오지 않고 다른 전도사가 와서는 ‘잘못했다. 개인적으로 쓴 것은 아니고 기도처 운영자금으로 썼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하는 겁니다. 저는 그에게 “다시는 그러지 마라.” 하고는 보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사람은 안 오는 겁니다. 한참 후에야 그가 나타났습니다. 저는 그에게 “안 드러날 줄 알았느냐? 세상에 숨길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진실되라.”고 훈계했습니다. 자신에게 인사하지 않는 모르드개가 괘씸해서 그 김에 이스라엘 민족을 멸절시키려했던 하만의 궤계도 다 드러났지 않습니까?

여러분, 지옥도 천국도 곧 다 드러납니다. 하물며 인간의 행위 정도겠습니까? 그러니 생각하고 말해야 하고 행동하는 것에도 심사숙고하세요. 죄 짓지 마세요. 올무에 걸리지 않도록 일거수일투족에 주의하세요. 마귀는 여러분을 책잡으려고 우는 사자처럼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요즘 미국 대선주자들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옵니다. 그들이 정말 오래 전에 했던 말과 행동이 다 드러나 그것이 중요한 시점에 그들의 뒷덜미를 잡고 있지 않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하시니라”(눅8:17~18). 골방에서 말한 것이 집 위에 전파되는 세상을 살고 있으니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나쁜 것만 드러나는 것이 아닙니다. 은밀히 선을 행한 것도 다 드러납니다. 가끔 아무도 몰래 선행한 사람이 드러나 신문의 사회면을 훈훈하게 장식하는 것을 우리는 봅니다. 이에 대해서도 성경은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좇나니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딤전5:24~25).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전4:5).

올해 슬로건이 ‘나에게 정직하고 남에게 진실하자’입니다. 정직하고 진실되면 누구 앞에서든 어디에서든, 무슨 일에든 떳떳하고 당당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

정직하고 진실하면

떳떳하고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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