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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0호 목차 › 성경에서 배운다

나방 or 나비

870호 · 2016-10-29

나방과 나비는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확연히 다른 생존방식을 가지고 있다. 나방은 천적인 새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주변사물과 비슷한 어둡고 칙칙한 색으로 자신을 바꾸었다. 하지만 워낙 눈이 좋은 새들에게 곧잘 눈에 뜨이고 빈번히 잡아먹히기에 개체 수를 열심히 늘리는 방법을 택했다.

반면 나비는 오히려 화려한 색으로 자신을 드러내 새들이 자신을 잘 찾아내도록 하되 독을 품고 있어 심한 배탈이 나게 한다. 그래서 첫 나비 한 마리가 희생하여 새들에게 잡아먹히면, 그 고통을 기억한 새들이 다시는 다른 나비들을 잡아먹는 일이 없기에 새들 앞에서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도 나방 혹은 나비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혹여 손가락질 받거나 사탄의 먹이가 될까 두려워 세상과 똑같은 모습으로 자신을 바꾸어 숨고 몸을 사리는 그리스도인이 있는 반면,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첫 희생의 제물이 되어 주심을 믿어 나비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당당히 밝히고 ‘잡아먹을 테면 먹어보라!’고 화려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그리스도인이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방과 나비가 그러했듯이 자신을 숨기기에 급급한 나방 그리스도인은 새, 즉 사탄에게 늘 잡아먹힐까 두려움에 떨지만 나비 그리스도인은 오히려 사탄 앞에서도 당당하고 되레 겁을 주는 존재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는 라오디게아교회에 대한 책망이 담겨있다. 차든지 덥든지 확실치 않고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그들을 하나님은 토하여 내치신다고 경고하신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적당히 세상 속에 몸을 숨기며 지탄받을 만한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는 모른 척하고 싶은 그들에게 사실은 무지하고 가난하고 헐벗었다고 말씀하신다.

모두들 무섭다고 떠는 골리앗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었던 다윗, 노예로 끌려간 곳에서 기도를 금지해도 하루 세 번 보란 듯이 창을 열고 기도했던 다니엘, 1대 450으로 바알 선지자들과 기도 맞장도 불사한 엘리야, 자신을 죽이겠다고 돌을 들고 있는 자들 앞에서도 해같이 빛난 얼굴로 복음을 전한 스데반, 사형선고를 받을 법정에 서는 순간도 복음을 전할 기회가 될 것이라 믿고 설레었을 사도 바울, 무엇보다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이 결국 사탄으로부터 당신의 자녀들을 구원할 생각에 벅찼을 예수 그리스도의 발걸음은 세상 속에 숨을 줄 모르고 화려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 하나님의 나비들이었다.

우리는 자문해봐야 한다. ‘나는 나방인가, 나비인가?’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비 같은 성도가 되어 세상을 아름답게 날아오르고, 사탄이 무서워 피하는 성도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해본다.

하인명

renmi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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