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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수레가 되지 말자

865호 · 2016-09-24

나는 모 영화배우의 ‘빠순이’다. 정확히 말하면, 팬 카페의 운영자이다. 벌써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름 ‘빠순이질’을 열심히 해왔다. 그렇게 10년을 하다 보니 그 배우와 나는 ‘같이 늙어가는 처지’, 그리고 친구도 동지도 아닌 의리로 뭉치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내가 ‘빠순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 배우와 자주 연락을 주고받고, 때때로 만나 식사를 하는 것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굳이 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SNS에 ‘인증샷’을 올릴 만큼 자랑스러운 일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아는 몇몇 사람들은 나와 생각이 좀 다른 것 같다. 얼마 전, 시사회에 찾아온 한 여자가 있었다. 자신은 그 배우의 동생이며, ‘우리 오빠’를 잘 부탁한다고 나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혹시나 싶어 배우에게 확인해보니, 대략 팔촌 이상의 아주 먼 친척으로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유명 배우의 ‘팬질’을 하다보면 종종 있는 일이라 서로 웃으며 넘어갔지만, 그 여자의 SNS를 볼 때면 짜증이 난다. ‘우리 오빠’ 운운하며 사람들에게 자신이 마치 그 배우인 냥 으스대는 모습이 썩 보기에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한 친구는 무슨 배우, 무슨 감독들이 있는 행사만 찾아다니며, 인증샷을 찍고 전국을 돌아다닌다. 정작 자신이 해야 할 공부는 접어둔 채, 한두 번 만난 유명인들과 절친인 양 행세하는 그녀의 모습은 솔직히 한심스럽다.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말이 있다. 여우가 호랑이의 위엄을 빌려 세도를 부리는 모습을 이르는 말이다. 자신의 뒤에 호랑이를 세운 채, 호랑이에게 엎드리는 동물들이 자신에게 엎드리는 줄 알고 으스대는 모습은 자신의 실력과 캐리어가 아닌 내가 아는 사람의 유명세를 등에 업고 으스대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요란하다는 것이다. 인증샷을 올리고, 실시간 댓글을 달고, 어쩌다 한번 만나 나눈 이야기를 그 사람의 전체 인생인 것처럼 부풀려서 이야기한다. 정말 말 그대로 ‘빈 수레가 요란하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평판은 대개의 경우 좋지 못하지만, 자신들은 모르고 있다. 그들을 향한 부러움의 시선과 댓글들이 결국 한심함의 다른 표현인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도 호가호위하는 많은 사람들을 본다. 자신의 자리에서 주어진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화려한 조명 언저리를 맴돌며 유명인의 노력을 발판 삼아 으스대려는 숱한 사람들이 있다.

나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묵묵히 지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 끝에 영광의 자리가 있기에 우리는 참고 인내하는 것이다. 그들을 보며 오늘도 나를 돌아본다. 주님 앞에 더 낮아지고 더 겸손해지고 싶다. 오로지 하나님의 후광에 힘입어 영광 돌릴 그 날을 기대하며 호가호위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새삼 되새겨 본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눅21:19).

전훈지

ppj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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