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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6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하나님은 우리가 잘 살기를 원하신다(고후8:9~12)

856호 · 2016-07-22

저는 우리 성도들이 가난한 것이 정말 싫습니다. 돈이 없어서 울고불고 하는 성도들을 보면 가슴이 찢어집니다. 저도 그럴진대 우리 하나님 아버지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뿐 아니라 가난에서도 구원하시려고 당신의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신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무너져 내리고 답답하겠느냐는 말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8:9). 예수 그리스도는 분명히 우리의 죄만 대속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난까지도 대속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가난해야 할 까닭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당신은 가난합니까? 깊이 생각해봐야할 문제가 아닙니까?

고린도후서 9장 6절,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는 말씀은 진리입니다. 밭에 씨를 많이 뿌리면 많이 거두는 것이 이치요, 머리에 들어간 것이 많으면 나오는 것도 많은 것이 또 하나의 이치이며, 하나님께 많이 심으면 30배, 60배, 100배로 나는 것도 변개할 수 없는 이치입니다. 많이 기도하면 능력이 커지고, 많이 저축할수록 목돈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많이 심었다=열심히, 부지런히’로, 반대로 ‘적게 심었다=게으르고 나태하다’로 정리하면 왜 당신이 가난한지 답이 나옵니다. 성경은 이를 증명합니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잠10:4),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잠12:27),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잠13:4).

이제 원인을 찾으셨습니까? 부지런히, 열심히 살지 않았기 때문에 가난한 겁니다. 마태복음 25장 14~30절에 보면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한 주인이 타국에 나가면서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또 다른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 다른 한 사람에는 한 달란트를 각각 주고 갔습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 회계하는데, 다섯 달란트를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를 받았던 자는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았던 자는 한 달란트 그대로를 내놓았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내어 쫓았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대로 각기 충성하라는 깊은 메시지가 담긴 말씀이지만, 경영학적 측면으로 보면 열심히 일하고 부지런히 장사해서 이익을 남기는 부자가 되는 길을 제시하신 말씀이며, 땅에 묻어두지 말고 재테크하라는 말씀으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굉장히 부지런한 자였습니다. 그가 외삼촌 집에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부지런함 때문이었습니다(창31:40). 또 요셉이 게으르고 나태했다면 절대 애굽을 그렇게 부국으로 만들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살게 된 것은 먼저는 하나님의 은혜요, 또 하나 부지런히 일했기 때문 아닙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자유의지를 주셨다는 것은 우리를 믿는다는 뜻입니다. 자식에게 “네 맘대로 해봐.” 이렇게 말하는 건 자식을 믿을 때이듯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믿음을 저버리고 게으르고 나태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가난을 타파하시고 ‘만물이 다 너희 것’이라고 하셨건만 여전히 가난의 굴레 속에 사는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교회에서 ‘돈 많이 벌어라’, ‘부자 되라’ 그러면 잘못되었다고 합니다. 기복신앙이니 타락했다느니 세속적이니 합니다. 참 답답합니다. ‘부자면 다야?’ 그럽니다. 아니, 그럼 가난해야 답니까? 이것은 돈에 대한 개념을 성경적으로 잘못 풀어서 그런 겁니다. 칼에도 양면이 있듯 돈도 양면성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돈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말씀을 곡해합니다. 또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눅16)와 부자 청년의 비유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잘 보십시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는 말씀을 보면 ‘일만 악의 뿌리’ 전에 분명히 ‘돈을 사랑함이’라는 말씀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죄입니다. 돈을 사랑해서 돈의 노예가 되어 끌려 다니는 것은 분명한 죄입니다. 그러나 돈을 좋아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우리 솔직하게 대답해 봅시다. 당신은 돈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저는 돈을 좋아합니다. 돈처럼 충성된 하인이 없습니다. 돈은 배신하는 법이 없고, 언제나 제 가치만큼 충실히 봉사하는 하인이요, 충신입디다.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요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패망이니라”(잠10:15).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도 그렇습니다(눅16). 부자가 돈이 많아서 지옥에 간 것이 아니라 헐벗고 배고픈 이웃을 돌아보지 않고 자기 배만 채웠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25:45)는 말씀에 기준해서 영벌에 처해진 것입니다. 돈 많은 청년도 영생을 얻기 원하면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는 말씀을 받잡기 어려워 고민하다 돌아간 것입니다. 부자이기에 천국에 못 들어간다는 말씀이 아니라 청년이 돈에 집착해서 주님 말씀대로 나누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19:23~24)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부자가 돈을 사랑해서 천국에 들어가기 힘들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마19:26)고 하셨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많이 배우고, 많이 가진 자가 하나님의 일을 하자들면 더 크게 하지 않습니까? 바울처럼요.

여러분,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이 잘 사는 것입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가난하기를 바라겠습니까? 마태복음 5장 3절에도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했지, 물질이 없는 가난한 자의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히 심어 얻은 네 소유로 자신의 안락과 평안만을 추구하지 말고 나누고 베풀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돈을 경멸하지 마십시오. 돈은 삶의 지렛대요, 징검다리입니다.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만나게 해주고,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게 해주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재물에 대한 말씀이 3,250번이나 나온 겁니다. 교회가 구제 사업을 무엇으로 합니까? 돈으로 합니다. 학교나 경찰서도 돈이 있어야 짓습니다. 제가 해외선교 나갈 때 빈손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선교자금을 들고 나갑니다. 사마리아인이 돈이 없었다면 어떻게 강도를 만난 사람을 도왔겠습니까? 자기 먹을 끼니도 없는 사람이 남을 어찌 돕겠습니까? 자기 배도 못 채우는데 어떻게 남의 배에 신경 씁니까? 자기 교회 꾸려가기도 벅차다면 구제를 어떻게 하고, 선교를 어찌합니까?

“가난한 자는 그 형제들에게도 미움을 받거든 하물며 친구야 그를 멀리 아니하겠느냐 따라가며 말하려 할찌라도 그들이 없어졌으리라”(잠19:7)는 말씀을 깊이 생각해봅시다. 70년대 초에 우리나라 대통령이 말레이시아 대통령을 한 번 만나려고 추진했지만 그쪽에서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나라의 대통령 만나봐야 별 볼일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잘 사니까 각국 정상들이 되레 만나러 찾아오지 않습니까? 또 우리나라가 잘 사니까 가난한 나라, 재난 당한 나라를 원조해주지 않습니까?

이제 썩은 생각을 잘라냅시다. 그 생각을 잘라내지 않으면 매일 그 밥에 그 반찬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믿는 자들이 부자가 되어야 합니다. 돈 많이 벌어서 청렴한 부자, 나눌 줄 아는 부자, 하늘나라에 심는 부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돈에 대한 개념이 바뀌셨습니까? 돈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니 옳은 방법으로 열심히, 부지런히 많이 버십시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을 돕고, 선한 사업도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삽시다. 또한 복음을 위해 열심히 투자합시다. 돈은 목적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과 사회를 위해, 그리고 하나님을 위한 목적에 이르는 수단이니까요. 할렐루야!

가난한 자는 사랑의 대상이나

가난은 경멸의 대상이다

현실에 눈 감으면

미래도 눈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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