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이 있는 삶
성공한 사람의 삶에는 반드시 원칙이 있습니다. 몇 백 년을 이어 명가로 발돋움한 가문들의 시작은 올곧은 정신을 가진 한 사람의 원칙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몇 대에 걸쳐 조선시대를 이끌어간 명문가(서애 류성룡, 다산 정약용, 명재 윤증)의 원칙을 살펴보면, 벼슬보다는 학문을 중시하고 충효, 실용적인 삶, 상생(相生)을 지침으로 하였습니다. 모든 진리가 그러하듯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평범한 내용이지만, 비범한 가문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선조부터 지켜온 원칙을 한 두 대가 아닌 수백 년 동안 지켜왔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두 가문에 대한 흥미로운 조사내용이 있습니다. 18세기 천재신학자 조나단 에드워드 가문과 맥스주크 가문입니다. 에드워드 가문은 20세기 후반까지 300명이 넘는 학장, 대학교수, 판사, 변호사, 의사 등 걸출한 인재들을 배출하였지만, 반면 같은 지역에 거주한 맥스주크 가문은 동일한 기간 동안 약 500명의 극빈자, 도둑, 범법자를 내며 사회에 해악을 끼쳤습니다. 조사를 시행한 분석가는 두 가문의 차이를 원칙의 유무에서 찾았습니다.
에드워드 가문은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원칙(남을 비방하지 말라, 함께 기도하라, 하나님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라 등)을 목숨같이 지켜온 반면, 맥스주크 가문은 원칙은커녕 되는대로 인생을 살아온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 앞에서 목숨 걸고 진미를 거절한 대쪽 같은 원칙주의자였습니다. 이후 왕들이 여러 번 바뀌고 권력쟁투와 시기 속에서도 다니엘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원칙은 시대나 문화에 휩쓸리지 않았고 노년까지 그를 성공적인 삶으로 이끌었습니다.
7월이 되어 달력을 새로 넘기니 ‘어려울수록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라’는 총회장 목사님의 말씀이 눈에 들어옵니다. 32년 동안 흔들리지 않고 교단을 이끌어나가시는 목사님은 철저한 원칙주의자의 표본입니다. 목사님의 원칙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가까이서 모범되시는 목사님을 본받아 작은 원칙 하나부터 마음에 심는다면 이것이 씨앗이 되어 풍성한 삶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김고은
khjc77@hanmail.net
사랑을 나누자
나의 아내는 화초를 키운다. 여러 화초를 키우긴 하지만 무슨 이름의 화초인지도 모르고 키운다. 화초의 이름을 모르기 때문에 그 화초에 대한 지식을 찾을 수도 없어서 잘 알지도 못한다. 아내는 단지 매일매일 화초에게 애정 어린 말투로 말을 걸고 섬세하게 관찰한다. 그리고는 물을 주기도 하고 화분 위치를 바꾸기도 한다. 화초는 산 것도 아니고 어디에선가 주워왔던 볼품없고 말라가던 화초였다. 지금은 볼품없었던 처음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는 새 생명을 찾은 것처럼 푸르다. 크기도 아주 커져서 한번 분갈이를 했는데 또 한 번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아내가 화초를 대하는 것을 보면서 ‘만물은 다 사랑을 먹고 사는구나.’ 생각했다.
6·25전쟁 당시, 두 고아원의 이야기가 유명하다. 한 고아원은 미군의 도움을 받아 제법 영양가 있는 음식이 나오는데도 아이들이 잘 자라지 못하거나 병들어 죽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 옆에 있는 고아원은 자체 운영이라 그야말로 간신히 풀죽이나 먹는데도 아이들이 건강했다. 사람들은 그 원인이 궁금했다. 그래서 두 고아원을 유심히 살펴본 결과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그 원인은 자체 운영하는 고아원에 자식을 잃어 정신이 나간 여인이 하나 들어와 있었는데, 그 여인이 고아원의 아이들을 자기 자식으로 생각하여 매일 안아주고 다독거렸기 때문이었다. 부모를 잃은 아이들도 그 여인이 엄마인양 의지하고 따랐다. 아이들은 영양가 있는 음식보다 사랑에 목말라했던 것이다.
왜 세상이 이렇게 시끄럽고 무서워지는가? 왜 사람들이 이렇게 강퍅해지는가? 사랑을 받지 못한 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화초도 사랑을 먹고 쑥쑥 자라지 않는가. ‘서로 사랑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실천하는 자가 되자.
김성일
cre8tor@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