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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을 즐기는 인생

848호 · 2016-05-27

얼마 전, 막심 므라비차(Maksim Mrvica)의 내한 공연을 보고 왔다. 막심은 크로아티아 출신의 크로스오버 전문 피아노연주자이다. 그는 빠른 속주와 화려한 무대 매너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 많이 알려진 피아니스트이다.

그의 어린 시절 크로아티아는 전시 상황이었다고 한다. 하루에도 1,000개가 넘는 포탄이 터지는 시기였다. 그는 지하 연습실에서 포탄 소리를 들으며 피아노 연습을 했었다. 그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피아노 때문이었으며, 살아남아야 했던 이유도 피아노 때문이었다. 그의 과거를 알고 난 뒤에 다시 듣는 그의 음악은 더 남달랐다.

모든 공연이 끝나고 앙코르곡이 끝나도 청중들의 박수는 끝날 줄을 몰랐다. 인사에 인사를 거듭하는 막심의 얼굴은 말 그대로 빛이 났다. 그의 표정에 가득한 미소는 어린 시절부터 이어온 고된 연습 시간들을 보상받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 자리에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연습의 시간을 보냈을까?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굴하지 않고 피아노에만 몰두했던 15세 막심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았을까? 돌아오는 길에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세상살이를 길에 비유한다. 각자가 가는 길은 그 누구도 걸어보지 않은 나만의 길이다. 그래서 삶은 늘 고되고 힘들다. 끝이 보이지 않거나, 보인다 해도 막막하고, 내가 올라가는 이 길이 잘못된 길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발걸음은 더 무거워진다. 과연 나는 시간이 지난 뒤에 막심처럼 화려한 박수는 아니더라도 내가 걸은 만큼의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서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한없이 아래로만 곤두박질치던 나에게 하나님께서 엄마의 말을 통해 응답해주셨다.

엄마는 성공하겠다는 의지는 좋지만 그것이 의무와 부담이 되는 순간, 삶의 기쁨은 사라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내리막길을 가고 있다면, 내리막길 그 자체를 즐기면 된다고. 그렇게 내려가다 보면 바닥을 칠거고 바닥을 치면 다시 오르막이 나타날 거라고. 좋아서 재미있어서 시작한 일이니 내리막길도 즐기면 그 뿐. 성공과 목적은 차후의 문제라고.

1년 365일 중에 해가 구름에 가리지 않는 화창한 날은 100일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얼마 되지 않는 그 날들이 화창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나머지 260여 일이 흐리고 비가 오기 때문이다. 막심이 전쟁의 포탄 속에서 피아노에 몰두했던 것도, 지금 내가 나에게 주어진 길에 회의를 품는 것도 찬란한 날을 위한 과정임을 기억하고 싶다. 그러고 보면, 야곱과 요셉, 다윗, 등 셀 수 없는 성경 속 인물들이 고난의 시간을 거쳤고, 총회장 목사님도 물 없는 사막과 눈 덮인 산야를 지나오셨다. 나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 믿는다. 다시 기운을 내어 내리막길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여유와 믿음을 가져야겠다.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전3:2~6).

전훈지

ppj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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