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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4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말3:13~18)

844호 · 2016-04-29

“남들은 주일에 가족이랑 친구랑 놀러가고 그래도 저렇게 잘 사는데 나는 주일성수는 물론이고 철야예배, 구역예배 빠진 적이 없는데 왜 나는 이 모양이야?”, “십일조 거른 적이 없이 꼬박꼬박 드려봐야 소용없어. 여전해”, “작정기도, 금식기도를 밥 먹듯 해봤는데 달라진 게 없어. 그냥 편히 사는 게 나아.”

이런 푸념 해봤지요? 또 들어봤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랍니다. 제 말이 아니고 하나님이 그렇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만군의 여호와 앞에 그 명령을 지키며 슬프게 행하는 것이 무엇이 유익하리요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창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니라”(말3:13~15).

말라기서 1장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고 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말1:2)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는 한 겁니까? 아브라함 때부터 말라기 선지자까지 무려 1,700년이나 하나님을 섬겼는데 결과가 이겁니까? 사랑한다고 하면서 남의 나라에 포로가 뭡니까?” 이런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현실을 보니 실의와 회의에 빠져 신앙이 점차 냉소주의적 색채를 띠고 하나님의 섭리를 의심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과연 가치가 있을까 생각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제사 드리는 것을 번폐스럽게 생각하고, 형식적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는 “목사님, 안 믿는 자들이 더 잘 살아요.”, “기도해봐야 별 거 없어요.” 이렇게 말하는 요즘 우리와 같습니다. 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은 이렇습니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말3:16~18). 고난과 환난 중에도 고통 중에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는 기념책에 기록하시고 정하신 때에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를 삼으신다는 것입니다. 생명록에 기록된 자가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라면, 기념책에 기록된 자는 정한 때에 하나님이 특별하게 생각하고 축복하신다는 것입니다. 욥의 처는 환난이 몰아닥치자 욥에게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2:9)라고 했지만, 욥은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2:10)라며 끝까지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정한 때에 욥에게 갑절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로 이미 작정하셨습니다. 우리가 나기 전, 아니 창세전에 우리를 이미 무조건 사랑하기로 하셨습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4~6). 우리의 행위로서가 아니라 원천적으로 우리를 사랑하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마치 나기도 전에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롬9:10~13).

그런데 하나님이 사랑했던 자들의 삶을 돌아보면 의외로 편안한 삶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의 인생을 볼까요? 그가 인생을 다 살고 바로 앞에서 한 그의 고백이 그의 삶을 대변해줍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 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47:9). 사는 게 많이 힘들었다는 겁니다.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전당에 오른 믿음의 선친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이들은 희롱과 채찍질 뿐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히11:35~38). 또한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삶도 녹록치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어려움 중에도 고난과 핍박 중에도 오히려 하나님을 더욱 경외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으로 감사했습니다. 노예로 살았지만 항상 하나님을 경외했던 요셉이 그랬고, 사울과 압살롬에 쫓겨 다니면서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시편을 통해 노래한 다윗이 그랬으며, 목숨을 거둬달라고 할 만큼 힘들었지만 모세는 예수님의 충성의 반열에 들어갔다고 성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히3:5~6). 그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된 자입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목회 30여 년 동안 물 없는 사막을 건넜고, 눈 덮인 산야를 걸었습니다. 이단이니 가짜니, 사기꾼이니 살인자니 차마 입으로 다 담을 수 없는 핍박과 모함을 받았습니다. 안으로는 가정이 깨지고, 어머니에게 쫓겨나고, 자식들이 속을 썩이는 아픔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한 번도 주의 종이 된 것을 후회한 적 없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가 하고 의심을 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더욱 감사했고, 더욱 열과 성을 다해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정한 때가 되자 이제는 저를 높이시고, 세계를 저에게 맡기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어려울 때 쉽게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신앙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다윗도 하마터면 실족할 뻔했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대하여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시73:15). 그러나 그가 깨닫고 돌이켜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시73:25~26)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나기 전에 우리를 사랑하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이렇습니다.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애3:33),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렘29:11). 다만 우리를 정금같이 쓰시려고 녹을 제거하는 과정을 두신 것입니다. 그 때 감사하면 장색이 쓸만한 그릇이 될 것입니다. 그분은 지금도 무궁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는고로 인자함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렘31:3).

힘듭니까? 고통스럽습니까? 아픕니까? 이 때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감사하면 하나님이 당신을 기록책에 적으시고 하나님의 정한 때에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 날이 속히 오기를 소망합니다. 할렐루야!

거목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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