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 제일 큰 지식이야
여보게!
자네에게 질문 하나 하겠네. 남대문에 문지방이 있나 없나? 대답해보게. 선뜻 대답을 못하는 걸로 봐서 잘 모르는 것 같구먼. 그렇다면 다음 질문도 하겠네. 문경새재에 문이 있나 없나? 역시 모르는 구먼. 내가 알려주지. 남대문에는 문지방이 없고, 문경새재에는 문이 있다네. 어떻게 잘 아냐고? 나는 가봤거든. 남대문도 문경새재도 가봤으니까 정확히 알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가 누군 줄 아나? 가보지 않고, 만나보지 않고, 먹어보지 않고 얘기하는 자라네. 가봐야 설명을 하고, 만나봐야 알고, 먹어봐야 맛을 아는 것 아니겠나. 남들이 수박은 파랗다고 해도 먹어본 자는 그 속은 빨갛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
사막에서는 늙은 낙타를 타야 하고, 전장에서는 백전노장의 말을 들어야 하네. 또 명 판결을 원하면 노(老) 법관을 찾아야 하고, 명쾌한 진료를 원하면 오랜 명의를 찾아야 하지. 늙은 소가 가장 곧은 고랑을 파는 법이거든. 이게 다 무슨 말인가 하면 바로 경험을 능가할 지식이 없다는 걸세. 아무리 식품영양학과를 나온 엘리트라도 우리 어머니가 끓인 찌개 맛을 따라올 수 없는 것은 경험부족 때문 아니겠는가.
여보게!
내가 주의 일에 목숨을 거는 것은 인복유치원 옥상에서 하늘 문이 열리고 예수님을 봤기 때문이라네. 그리고 내가 이단이네 사이비네 해도 개의치 않고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친 것은 내가 경험한 바가 있기 때문이야. 나를 통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내가 경험했는데, 누가 뭐란다고 내가 흔들릴까? 자기의 경험한 바를 어떤 문화적인 지식 앞에 팔아먹는 자야 말로 어리석은 자가 아닐까? 내가 남대문을 가보고, 문경새재를 봤으니 자신 있게 답한 것처럼, 응답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자, 병 고침을 받아본 자, 주의 음성을 들어본 자, 축복을 받아본 자는 비바람이 앞길을 막아도 확고한 믿음 위에 굳게 서는 거라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6:17)고 고백한 걸세.
이 세상을 남의 지식으로 살지 말고, 자네의 경험으로 살아보게나. 경험은 최고의 지식이니까.
朋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