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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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값을 해야 할 텐데

840호 · 2016-04-01
신앙논객

제 본명은 신재식(申宰植)입니다. 그런 제 이름이 바뀐 것은 2014년 3월 7일, 제 바로 윗 선배님들의 신학교 졸업예배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총회장 목사님께서 예배 전에 전화를 주셔서 “너는 이제부터 이름을

‘혁주’라고 한다. 빛날 혁(赫), 주인 주(主), 주님을 빛나게 하는 종이 되거라.”라고 말씀하셨지요. 2년이 지난 지금, 과연 나는 이름값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니 그저 죄송스런 마음이 듭니다.

성경에는 소위 이름값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의 이름과 생애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름 하나도 그냥 지어진 것이 없습니다. 아브람은 원래 그 이름이

‘큰 아버지’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아브라함(열국의 아버지)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고, 이후 그 이름에 걸맞게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는 영예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야곱은 그 이름이 ‘발꿈치를 잡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처음 태어날 때부터 쌍둥이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오더니,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나중에는 아버지 이삭의 축복까지 가로채는 ‘침노하는 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얍복강 가에서 천사와 씨름한 끝에 이스라엘(하나님이 투쟁하시다, 하나님과 겨루다)이라는 이름을 받았고, 그 이름은 지금까지도 이스라엘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쓰이게 됩니다.

사무엘상 25장에는 다윗(사랑하는 자)과 나발(어리석다), 그리고 아비가일(내 부친이 기뻐함)이 등장합니다. 광야를 지나는 다윗 일행을 나발이 불손한 태도를 보이며 영접하지 않자, 다윗은 나발과 그의 일족을 죽이려고 올라갑니다. 그 때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은 지혜로운 말로 다윗을 진정시켜 그가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그 때 아비가일이 하는 말이 재미있습니다.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삼상25:25). 결국 나발은 그 이름대로 어리석게 화를 자초했다가 하나님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든, 교회에서 목사님을 통해 새로 받은 이름이든, 하나도 의미 없는 이름이 없고 ‘나발’같이 나쁜 이름도 없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야곱처럼, 다윗처럼, 그리고 아비가일처럼, 귀한 이름대로 ‘이름값’을 하는 우리가 되길 소원합니다.

신혁주 전도사

blessedmic@naver.com

:::참된 깨달음

행복한 나눔!

만약 누군가 나를 위해 따뜻한 커피를 선물해준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마음을 나누는 일상의 기부! “맡겨둔 커피”, 혹은 착한 기부커피, 서스펜디드 커피(Suspended coffee)라고 들어보셨는지요? 서스펜디드 커피는 돈이 없어 커피를 사먹지 못하는 노숙자나 불우한 이웃을 위해 미리 돈을 내고 맡겨 두는 커피를 말합니다. 자신의 커피 값을 지급하면서 불우한 이웃의 커피 값도 미리 지급해 보관하는 방식으로 약 100년 전 이탈리아의 나폴리에서 시작된 이 운동이 현재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미리내운동”으로 새롭게 태어났다고 합니다.

빨리 가고 싶다면 혼자 가고 멀리 가고 싶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처럼, ‘혼자’라는 말은 단어만으로도 외로움이 묻어나고, ‘함께’라는 말은 단어만으로도 따뜻함이 묻어납니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는 아름다운 동행이야말로 참되고 복된 삶이 아닐까요?

터키의 에스키셰히르의 한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이를 세는 독특한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오늘 내가 정말 잘 살았다’는 삶의 경험이 있을 때마다 집 문 기둥에 금 하나씩을 그어 죽은 후 그 숫자를 ‘참 삶의 나이’로 묘비에 새겨준다는 것입니다. 신체적 나이가 아닌 참 삶의 나이가 묘비에 기록되는데, 어떤 사람은 이 땅에서 90세까지 장수해도 참 삶의 나이는 20세로 기록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이 땅에서 30세의 나이로 단명해도 참 삶은 90세의 나이로 기록되기도 한답니다.

그저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떡국을 먹는 숫자의 신체적 나이가 아닌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는 참된 삶의 참 나이가 된다는 깨달음 속에 7,80평생을 살면서 과연 나의 ‘참 삶의 나이는 몇 살일까?’를 생각하게 합니다.

당신은 몇 살입니까?

김정옥 전도사

jcc01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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