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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6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철저하게 대비하고 점검하라(눅17:20~37)

836호 · 2016-03-04

설마가 사람 잡습니다. 어느 누가 나라가 부도날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나 나라가 부도가 날 수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던 1997년, 우리나라가 정말 부도가 났었습니다. 다들 설마 했지만 우리는 힘든 IMF시절을 겪어야만 했고, 또한 하루에도 수없는 사람이 건너다니는 한강의 대교, 누가 그것이 무너지리라 생각했었습니까? 그러나 출근길에 성수대교가 무너져서 수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습니다. 누가 백화점이 무너지리라고 생각했을까요? 그러나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습니다. 뉴욕의 상징인 쌍둥이 빌딩이 무너지리라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요? 설마, 설마 하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 것을 우리는 많이 봐왔습니다.

왜 설마가 사람을 잡을까요? ‘설마’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 하지 않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것이고, 그 이상의 부정적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요행이나 바라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마태복음 24장과 25장은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주님이 주신 메시지입니다. 종말론이지요. 그 주제가 무엇이냐면 바로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것’입니다. 25장에 등불은 있으나 기름을 가득 준비하지 않은 다섯 처녀는 그래도 설마 혼인잔치에 못 들어가랴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혼인잔치의 문은 닫혔고,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습니다. 또 한 달란트 받은 자가 그것을 땅에 묻어두었다가 주인 앞에 다시 내놓을 때, 다섯 달란트 남긴 자처럼 칭찬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설마 큰일 나겠어?’ 했습니다. 그러나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25:30)는 무서운 판결을 받고야 맙니다. 그리고 또 하나, 불쌍한 이웃을 돌아보지 않고 자기의 배만 채운 자들은 주님의 왼편에 설 줄도 몰랐고, 설령 왼편에 섰다한들 설마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25:41)고 할 줄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설마 내가 지옥에 가랴?’ 하십니까? 위에 세 경우 모두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해당된 말씀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야 이미 어두운 곳, 영벌에 서는 게 정해져 있어 설마 할 필요도 없습니다. 설마 성령 충만함을 조금 잃었다고 지옥에 가랴, 설마 달란트대로 봉사하지 않고, 전도하지 않았다고 내가 장로인데, 내가 집사인데 지옥에 보내시랴, 가난한 자를 돌아보지 않았다고 설마 영벌에 처하시랴 하지 마십시오. 설마가 사람만 잡는 것이 아니라 영혼까지 잡습니다. 오늘 본문에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눅17:34~35)고 하신 것을 보십시오. 천국에 갈 수 있는 확률이 50%정도라는 말씀입니다. 설마 내가 매주일 봉사하는 데, 내가 성가대에 서는데, 헌금도 꼬박꼬박 하는데 지옥에 가랴 생각하지 말고, 이 설마를 잡아 확실하게 천국티켓을 따야 합니다.

설마를 잡는 방법은 ‘대충’이란 균을 잡는 것입니다. 대충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준비하고 대비할 때 설마를 잡을 수 있습니다. 항상 기름이 찰랑찰랑 채워져 있는지 확인하고 점검해야 혼인잔치에 들어갈 수 있고, 달란트를 대충 땅에 묻어둘 게 아니라 열심히 최선을 다해 달란트를 활용할 때 주님의 칭찬과 함께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 수 있으며, 내 이웃을 돌아보고 사랑을 실천할 때 영생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에는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벧후3:3~4)라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설마 예수님이 다시 오시겠어? 맨날 곧 오신다 했지만 어디 오셨느냐고?” 그런다는 겁니다. 그러나 반드시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우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신앙생활 대충 할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벧후3:11~12).

어디 이것이 영혼에만 국한된 것이겠습니까? 지난 주말 미국의 땅끝예수전도단 회원이 찾아와 만났는데, 그가 저를 붙잡고 울면서 “설마 내 남편이 바람이 날 줄은 몰랐어요.” 그러는 겁니다. 그런 일은 남에게나 일어날 줄 알았지 자신에게는 설마 했던 것입니다. 남편을 철저하게 점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설마 대기업이 무너지겠어?” 하며 대마불사(大馬不死)를 외치던 국내 굴지의 재벌기업이 순간 주저앉지 않았습니까? 철저하게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관리는 곧 점검인데 말입니다. “설마 내 자식이 자살하겠어?” 하고 아이들을 대충 살피다간 씻을 수 없는 일을 당하게 됩니다. “설마 내가 암에 걸리겠어?” 하고 몸에 해로운 것을 먹고 마시면 설마에 잡히게 됩니다. 그래서 나라도, 기업도, 교회도, 가정도, 내 자신도 철저하게 점검하고 관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 설마를 잡으려면 남을 탓하지 말고 나를 탓해야 합니다. 저는 금식기간 중 창세기를 다시 읽다가 ‘아담이 왜 에덴에서 쫓겨났을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위해 에덴동산을 아름답고 풍성하게 지으셨고, 다만 에덴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만 손을 대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뱀의 유혹에 넘어간 하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아담에게 그 죄를 추궁하자 아담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3:12)라고 했습니다. 결국 아내를 주신 하나님 탓이라고 말한 겁니다. 그렇게 말할 때에도 아담은 ‘설마 무슨 일이 나겠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내쫓으시고 삶의 수고로운 고통도 함께 겪게 하셨습니다(창3:14-19). 만일 아담이 남 탓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은 자신의 부주의를 뉘우쳐 회개했다면 하나님은 아담을 용서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에게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모든 사람과 육축까지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아각을 사로잡고 양과 소 가운데 좋은 것을 죽이지 않고 남겼습니다. 이를 알게 된 사무엘이 책망하자 사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나이다”(삼상15:20~21). 백성 탓을 한 것입니다. 얼른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자신을 탓해야 했습니다. 사울은 설마 한 거죠. 그러나 하나님은 가차 없이 사울을 버리셨습니다. 사로잡힌 아각도 제사장 사무엘 앞에 끌려나오게 될 때 ‘설마 제사장이 사람을 죽이겠나?’ 생각해서 “진실로 사망의 괴로움이 지났도다”

(삼상15:32) 했지만, 설마란 그에게 없었습니다. 그는 죽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나를 탓하고 돌아보아야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에덴으로 복귀할 수 있습니다. 내 삶 속에 에덴이 찾아오고, 제2의 에덴, 천국에 입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렘29:11~14).

설마가 사람을 잡습니다. 그러니 이 설마에 잡히지 않도록 나의 영·혼·육을 확실하게 점검하고 그날을 준비합시다.

할렐루야!

설마 설마 하다가

설마에 잡힌다

경영은 곧 관리요

관리는 곧 점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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