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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먹던 우물에 침 뱉지 말라 (마7:1~6)

834호 · 2016-02-19

요즘 각 교단에서 주의 종들이 저를 꾸준히 찾아오고 있습니다. 제 기도의 응답입니다. 그런데 그들에게서 발견한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자기 교회의 담임 목사를 헐뜯거나 교단의 목사를 정죄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목사는 이래서 나쁘고, 이래서 틀렸고….’ 저는 다 듣습니다. 그리고 끝에 이렇게 말해줍니다. “목사님, 오늘의 목사님이 있는 건 그 분 덕 아니겠습니까? 그 분 덕분에 이만큼 목사님이 성장하고, 세상 말로 먹고 살 수 있었던 것 아닙니까? 그런 분을 헐뜯으면 안 되지요. 정죄해서도 안 됩니다. 감사해야 옳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는 것을 봅니다.

그럼요, 옛말에 ‘침 뱉은 우물 사흘도 안 되서 도로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를 길러준 스승을 헐뜯고 욕하고 어떻게 그 분 얼굴을 다시 봅니까? 물론 제가 배출한 제자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저를 통해 목사가 되고, 교회를 세운 자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저를 욕하고, 정죄하는 것을 봤습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용서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비판을 하고 정죄를 하면 자신도 비판을 받고 정죄를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것도 흔들어 눌러 넘치도록 말입니다(눅6:38). 오늘 본문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7:1~2).

예수님의 제자 중에도 그런 자가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신임을 얻어 돈궤를 짊어지고 다닌 자입니다. 그런 자가 스승에게 침을 뱉었습니다. 은 삼십 냥에 예수님을 팔아버린 것입니다. 그의 결과는 여러분이 익히 잘 알고 있습니다.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어린 계집애 앞에서 스승인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용서하셔서 그는 다시 수제자로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이 먹던 우물에 침을 뱉지 않은 참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리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는 형들을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보디발의 아내로 인해 졸지에 성폭력범이 되었을 때도 그는 역시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간 편히 먹고 살 수 있게 해준 보디발의 가정이 자신으로 인해 깨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그의 발길을 형통케 하사 애굽의 총리대신이란 자리까지 오르게 하셨습니다. 다윗도 자기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장인 사울을 정죄하지 않고,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그를 살려주었습니다.

총선을 앞둔 정치판을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당을 이리저리 옮기는 거야 뭐라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자신이 몸담고 있던 정당을 욕하는 것을 보면 ‘저런 분들에게 어떻게 나라를 맡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회사에서 경력사원을 뽑는데 면접에서 ‘지난 번 회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을 했답니다. 그랬더니 대부분이 ‘그 회사는 이래서 나빠 내가 나왔다.’, ‘그 회사는 이것이 불합리해서 내가 손해를 봤다.’고 했는데, 한 사람만이

‘좋은 회사다. 다만 내가 그 회사와 맞지 않아 그만 두었다.’고 답했답니다. 결국 그 사람만 합격을 시켰다고 합니다.

모 장로님이 제게 카톡으로 보내준 글을 보고 제가 무릎을 쳤던 일이 있습니다. 어느 집사님이 혀에 암이 생겼답니다. 병원에서 말하길 사는 길은 혀를 잘라내는 방법뿐이라며 수술을 종용했고, 결국 수술 날이 다가왔습니다. 수술 직전 의사가 그 집사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다 하세요. 부르고 싶은 분도 다 부르세요. 지금이 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집사님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말했답니다. “하나님, 제가 이 입으로 남을 많이 정죄했습니다.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를 용서해주세요. 이게 제가 하고 싶은 말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수술실에 들어가 전신마취를 하고 입을 여니 이게 웬일입니까? 암 덩어리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이것과 비슷한 생생한 간증을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작고하신 모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 분은 저를 예수님께 인도한 영적 스승입니다. 그 분이 후두암에 걸렸는데, 의사는 수술을 해도 말은 못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런 상태가 되어 그 분이 자신을 돌아보니 입으로 정말 남을 많이 정죄했더라는 겁니다. 자기 기준에서 남을 비판하고 정죄한 것입니다. 병원에 가기 전에 그가 자기 방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을 잘하던 그 분이 단 한 마디 밖에 나오지 않더랍니다. “아버지, 저를 용서해주세요.” 그가 하염없이 울면서 이 말만 되풀이하는데 어디선가 세미한 음성이 들렸답니다. “내가 너의 기도를 들었다. 이제 깨끗함을 입었느니라.” 너무 놀란 그가 병원에 가서 확인을 하니 정말 후두암이 사라졌답니다. 그 후로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직 주만 위해 살다 가셨습니다.

남을 정죄하는 원인의 하나는 바로 편견입니다. 편견(偏見)이 뭡니까?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입니다. 그래서 편견을 갖게 되면 사물이나 사람에 대해 균형감각을 잃게 됩니다. 쉽게 말하면 파란 안경을 쓰니 모든 게 파랗게 보이는 것이고, 빨간 안경을 쓰니 하얀 것도 빨갛게 보이는 겁니다. 이게 편견입니다.

편견이 무서운 이유는 편견이 편견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곧바로 정죄로 이어진다는 것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목수인 요셉의 아들로 30년 동안 아버지인 요셉을 도와 목수 일을 하셨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이 나서 자란 것을 다 보아온 사람들인지라 그 분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예수는 목수의 아들’이라는 안경을 쓰고 있었기에 그리스도 예수를 비난하고 정죄했던 것입니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막6:3).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을 뵙기 전에는 예수를 믿던 사람들을 찾아내어 결박하고 처단하는 일을 담당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변화되어 다메섹의 각 회당에서 제자들과 함께 전도하고 있을 때,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고는 “저 자는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들이던 자가 아니냐? 그가 지금 예수를 전하고 있지 않는가. 저건 분명히 함정일 거야. 예수를 전한다고 하면서 예수 믿는 자들을 색출해서 결국 다 잡아가고 말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과거 사울이라는 인물 그대로의 안경을 쓰고 있었기에 변신한 바울의 모습이 의심스러웠던 것입니다.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행9:20~21).

이런 이유로 저는 주의 종들에게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람만은 인수인계 받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전에 있던 사람에게 ‘저 사람은 이렇고, 이 사람은 이렇다.’라고 인수 받으면, 벌써 빨간 안경을 쓰게 되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빨갛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전에 있던 사람에게는 잘못했지만, 나에게는 잘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나를 낳아준 부모, 나를 키워준 스승, 내가 몸담았던 직장에 침을 뱉지 마십시오. 더욱이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침을 뱉는 자가 없기를 바랍니다. 만고의 진리 중의 하나가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침 뱉은 물을 도로 먹게 되는 게 인생사입니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는 것도 다반사입니다. 그러니 내가 먹던 우물에 침 뱉지 맙시다. 할렐루야!

좋은 씨를 뿌려야

좋은 열매를 거둔다

살고 죽는 것이

세치 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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