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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6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야생마와 명마는 무엇이 다른가? (민14:26~30)

826호 · 2015-12-25

야생마와 명마는 무엇이 다를까요? 태어날 때부터 야생마와 명마가 구분되는 건 아닙니다. 교육을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의 차이입니다.

제가 과테말라 집회에 갔을 때, 2대 재벌 후안의 저택에 머물며 말을 탄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여러 말을 타봤는데, 야생마와 명마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야생마는 고삐를 매어놔도 난리를 치고 맘대로 돌아다니는 반면에 후안이 명마라고 지목한 말은 정말 말을 잘 들었습니다. 왼쪽 고삐를 잡아당기면 왼쪽으로 가고, 오른쪽을 잡아당기면 오른쪽으로 가고, 양쪽을 잡아당기면 그 자리에 멈췄습니다. 후안이 그러더군요. 야생마도 교육시키면 명마가 된다고요. 명언이었습니다.

여러분, 개도 교육받으면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짖지 않습니다. 교육을 받느냐 안 받느냐의 차이가 이렇게 큰 것입니다. 사람도 여우 밑에서 크면 여우처럼 울부짖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를 돌아봅시다. 내 입이라고, 입이 열렸다고 아무 말이나 뱉습니다. 남이 상처를 입거나 말거나, 내 가치가 추락하거나 말거나, 말로 내 인생이 얽히거나 말거나 마구 쏟아냅니다. 더러운 말도 하고, 추악한 말도 하고, 저주도 하고, 부정적인 말도 하고, 음담패설도 합니다. 그래놓고 교회 다닌다고 하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면 누가 믿겠습니까?

교육이 필요합니다. 말이 조련사에 의해 조련을 받듯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약3:2). 무슨 말씀입니까? 교육받아서 명마가 되라, 그러면 네 가치가 천정부지로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제가 남미 집회를 마치고 미국 애틀랜타에 들렸을 때 한 골프장에 갔는데 벽에 장식되어 있는 앤틱(antique)이 좋아 보여 사려고 했더니 동행한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목사님, 그거 안 팔아요.” 하는 겁니다. 주인에게 물어보기도 전에 안판다고 말로 뿌렸으니 팔 리가 있겠습니까? 저는 그들을 야단쳤습니다. “네가 안 된다고 했는데 팔면 하나님이 안 계시는 거지. 그러나 나는 된다. 오늘은 안 되지만 내일은 된다.” 그리고는 다음 날에 또 가서 인터넷에 나온 제 사진을 보여주며 팔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글쎄 족히 1,500달러는 나갈 그 조각품들을 저에게 단돈 15달러에 팔더란 말입니다. 제가 왜 그곳을 다시 찾아갔을까요? 앤틱을 사야겠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들에게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부정적인 말은 부정을 낳고, 긍정적인 말은 긍정을 낳는다는 진리를, ‘오늘 되지 않아도 내일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르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러분,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지 않습니까(마7:16)?

말은 마음과 생각에서 나옵니다. 마음이란 주머니에 말이 들어 있다가 툭 나오는 겁니다. 마음이 부정적이면 부정적인 말이 나오고, 마음에 음란이 가득하면 세상적인 말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나 마음에 하나님이 가득한 사람은 언제나 생명의 말, 진리의 말, 긍정의 말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늘 ‘백문백답(百問百答)이 예수, 천문천답(千問千答)이 예수’ 라고 하는 것은 제 생각이 오직 영적인 것으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말과 거짓의 말이 계속 나옵니까? 맑은 물이 나오지 않으면 내 집의 파이프라인을 갈아야 하듯 내 마음을 바꿔야 합니다. 내 마음에 더럽고 추한 것들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것으로 갈아야 합니다. 거미줄을 암만 치워도 거미를 잡지 않으면 아무 소용없듯 말입니다.

여러분, 명마와 야생마를 생각하면 베드로가 생각납니다. 베드로는 야생마였습니다. 조급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고, 아무 말이나 툭툭 바로 뱉는 그런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으로 인해 명마가 되더니 이런 멋진 말을 했지 않습니까?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5~7).

언젠가 제가 초소형 녹음기를 차고 하루를 지내본 적이 있습니다. 목사인 나는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자가 진단한 겁니다. 그날 밤에 집에 돌아와 녹음된 제 말을 들어보니 정말이지 부정적인 말 하나 없이 다 긍정적인 말, 남을 살리는 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녹음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조절이 잘 되는 명마는 아니었습니다. 성격 자체가 ‘칼 나간다, 총 나간다’ 하는 성격이고, 조급하여 말부터 던지던 자였습니다. 그래서 실수도 많이 하고, 손해도 많이 보고, 수치도 많이 당했습니다. 그런 제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을 받으니 말에 실수를 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참을 줄도 알고, 희생할 줄도 알고, 사랑할 줄도 아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명마가 되니 가치가 오릅디다. 하나님이 높이십디다. 명성이 따라오고, 많은 사람이 저를 좋아합디다. 하긴 아무나 보고 짖고 무는 개를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보신탕집에 팔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아무 말이나 뱉는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 교육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니 교육받은 자답게 행동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으로부터 교육을 받은 자들이 어떤 말을 했는지 볼까요? 다윗은 처참한 지경에서도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23:6) 라고 말하더니 그의 말년이 부하고 존귀했습니다. 욥은 자식이 다 죽고 재산이 다 날아간 상황에서도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 라고 말해 갑절의 축복을 받았으며, 사도 바울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고 했습니다. 그러니 어렵다고 힘들다고 ‘죽겠다’, ‘못 살겠다’, ‘빌어먹을 놈’, ‘불황이라 안 돼’, 이런 말일랑 하지 맙시다. 그 말대로 죽을 일만 생기고 빌어먹을 일, 불황만 계속된단 말입니다.

야생마가 날뛰면 기물이 파손되고 주위사람들이 다치는 것뿐만 아니라 야생마 자신도 다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말이 야생마처럼 날뛰면 주위 사람들은 물론이고, 내 자신도 다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말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나 말은 사람으로서는 길들일 수 없습니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3:8).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려질 뿐입니다.

성공하고 싶습니까? 인물이 되고 싶습니까?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국내 대기업 총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십시오. 그들이 말하기를, 사람을 고를 때 절대 학력이나 인물을 보지 말고 그들의 말을 들어보라고 했답니다. 왜겠습니까? 말속에는 그 사람의 본심이 들어있고, 말을 통해 그 사람 됨됨이와 신앙을 엿볼 수 있으며, 나아가 그 미래까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뿌리가 썩은 나무에는 물을 주지 않아야 합니다. 더욱 썩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썩어 썩은 말을 내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축복을 하실 수 없습니다. 축복하면 이생뿐 아니라 내세까지 망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생각과 말은 반드시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돌아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 썩은 생각, 부정적인 말은 뿌리째 잘라냅시다. ‘내 귀에 들린 대로 네게 행하리라’ 말씀하신 하나님께 아름다운 말, 감동하는 말을 올려드려 복 받는 2016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반찬이 좋아야

입맛이 난다

말은 곧 예술이다

인생을 디자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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