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 안경을 쓰고 성경을 보라! (히2:14~3:14)
우리는 성경을 볼 때 항상 ‘왜’라는 안경을 쓰고 봐야 합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으라고 하실까?’, ‘왜 주를 앙모하라고 하셨을까?’ 이러한 관점으로 성경을 읽고 말씀을 묵상하면 우리가 혼란스럽게 생각하는 모든 것들에 답이 보이게 됩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부터 볼까요? 왜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보내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마귀의 일을 진멸하기 위함입니다(요일3:8). 문제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갑자기 닥친 멸망, 병, 저주, 가난의 배후에는 우리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마귀의 계획이 숨겨져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사망을 두려워하고 마귀의 종이 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씨를 마리아의 밭에 떨어뜨려 우리와 똑같이 혈육을 입은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본이 되게 하기 위해 배고프게도 하시고, 울게도 하시고, 시험도 받게 하시며 마침내 죄와 사망을 이기고 부활함으로 세상과 마귀로부터 우리를 완전히 해방시키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을까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가 받았던 성령을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신 것은 예수님처럼 성령을 힘입어 장래 일을 알고 귀신을 내쫓으며 하나님 자녀의 권세를 회복하여 죽음다음에 부활이 있다는 것을 증거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저는 내일이면 36시간씩 비행기를 타고 선교를 떠나야 하지만 오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밤잠을 자지 않고 단에 섰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시고 명령하신 복음증거의 사명을 다하여 예수를 믿지 않고 지옥에 가는 영혼들을 건지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여
(마6:33) 하나님의 일을 우선순위에 놓고 하나님의 자녀로 의로운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면, 우리의 삶에 장애물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반드시 넘치는 축복으로 되돌려주십니다.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더니 어떤 부족함도 없이 전 세계에 이름을 높여주신 제 삶이 바로 그 증거이지 않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삶에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자문자답해보십시오.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고 예수가 우리에게 부탁하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반대로 돈, 명예, 아내, 자녀를 우선순위에 놓고 우상이 되어 있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못하시는 분이시기에 오직 하나님 최우선의 삶을 사는 자에게 성경 속 아브라함, 야곱, 요셉과 같은 축복으로 함께하실 것임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성경은 또 우리가 ‘왜 주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애통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바로 ‘주님이 응답하시고 크고 놀라운 비밀의 길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렘33:3). 며칠 전 저는 친분이 있는 한 목사님이 쓰러져 중환자실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았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목사님이 쓰러지자 사모님이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중환자실 문 앞에서 제발 남편을 살려달라고 데굴데굴 구르며 애통하고 부르짖었다고 합니다. 그때 목사님이 천국 문에 들어가다가 아내의 목소리를 듣고 영혼이 돌아와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고 간증했습니다. 또한, 이 목사님의 믿음도 만만치 않습니다. 제가 너무 바빠 올 수 없을 것이라는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믿고 기도했기에 반드시 제가 찾아와 자신에게 안수하여 낫는다고 믿었답니다. 그래서 인지 제가 바쁜 일정 중에도 꼭 그 목사님을 찾아가야 할 것 같아 결국 늦은 밤, 병원을 찾아 귀신을 쫓고 안수하며 그 믿음을 확증했습니다.
우리 교회에 한 장로가 쓰러졌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권사인 아내가 병원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없이 누워있는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부르짖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았더니 깨끗함을 받고 돌아와 지금도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발 하나님을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분입니다. 연약한 자를 강하게 하시고 피곤한 자에게 힘을 더하시며 미련한 자를 들어 세상의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어 하나님의 자녀를 그 누구보다 높이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그런 하나님의 자녀임에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며 하나님을 앙모해야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유언을 통해 “세상의 성공을 모두 얻었지만 내 대신 아파줄 사람은 없었다. 나는 어리석었다.”고 고백했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대신해 아파주시고,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신 표적으로 성령까지 받았으니 ‘앙모(仰慕)’라는 한자의 뜻처럼 하나님을 그리워하며 독수리가 창공을 날아오르듯 다시금 새 힘을 얻어 주의 뜻대로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함에는 반드시 고난이 찾아옵니다. 왜냐고요? 공짜에는 독약이 있기 때문입니다. 난공사에 이익이 많고 고생해서 낳은 자식이 더 귀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상대에게 공짜를 주면 이는 상대를 폐인으로 만드는 것임을 잘 아시기에 두드려야 열어주시고 ‘왜’라는 안경을 끼고 찾아야 찾을 수 있게 만드셔서 고난의 훈련으로 정금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더불어 우리는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이 무엇입니까? 정직에 배려를 더한 것입니다. 단순한 정직은 상대를 정죄하기도 하지만 여기에 배려(配慮), 즉 아내처럼, 짝처럼 상대를 위해 헌신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더해지면 ‘진실’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진실된 배려와 사랑이 없으면 목회도, 사역도 모두 실패하게 됩니다. 또한 이러한 진실에서 시작되는 구제야말로 진정 하나님께 상달되는 구제라 할 수 있습니다. 고넬료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구제에 힘씀으로 그 행위가 하나님께 상달되었기에 베드로를 통해 그 가족 모두를 구원하신 것처럼, 과부 다비다가 구제에 힘쓰다 죽자 다시 살려주신 것처럼 진실된 구제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왜 찬송해야 할까요?’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사43:21)고 답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입니까? 바로 손주들이 노래하고 춤추며 재롱을 부릴 때입니다. 이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춤추고 찬양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188명의 성가대원을 구성하고 자신도 하나님의 법궤 앞에서 바지가 벗겨질 만큼 춤을 추지 않습니까? 그런 다윗을 비난하는 아내 미갈에게도 나같이 비천한 목동에게 왕권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했기에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셨고 그의 족보를 통해 예수를 보내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는 문빗장을 견고히, 즉 육체에 귀신이 들어와 병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막아주시고 이를 보고 배운 너의 자녀에게 동일한 복을 주신다(시147:13)고 말씀하셨으며, 네 경내, 즉 모든 사업과 만사가 평안하게 될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생전에 하나님의 말씀처럼 거룩한 손을 들고 하나님께 찬양하므로 이 땅의 축복은 물론이요 천국의 왕권을 누려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모든 문제 앞에 사람, 지식, 권력을 의지하지 말고 ‘왜’라는 안경을 쓰고 성경을 바라봄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문제의 해답을 찾읍시다. 그리하여 세상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자랑할 때,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를 높이시고 우리의 하나님이 되심을 자랑스러워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안경만 바꾸어 써도
세상이 달리 보인다
빨간 안경을 쓰면
모두 빨갛게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