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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접하는 대로 대접 받는 게 만고의 진리다

819호 · 2015-11-06

목사님은 금요집회를 통하여 온 율법과 선지자의 대강령을 선포하셨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예수 그리스도가 초림하시기 이전 약 400년 동안 이스라엘 땅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취를 감추었다.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의 외침 이후 400년 동안 말씀의 암흑기였던 것이다. 그 말라기 선지자가 마지막으로 외친 음성이 바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라’는 하나님의 마지막 호소였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찐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찐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를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말1:6~10).

목사님께서 늘 강조하듯이 우리 크리스천의 삶은 십자가의 수직적, 수평적 관계를 잘 설정하는 것이다. 수직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요, 수평적으로는 인간과의 관계다. 그런데 그 관계설정의 기본이 먼저 대접하는 것이라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부모님을 부모님으로 대접하라는 것이다.

대접이라 함은 내가 낮아져서 겸손히 상대를 섬기는 자세다. 만남은 하나님께서 주시지만, 그 만남을 좋은 관계로 만들어가는 것은 나에게 달린 것이요,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내가 먼저 베풀 때, 상대도 나를 인정하고 대접하게 되는 것이 만고의 진리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두루미 이야기는 매우 시의적절하다. 두루미에게 얕은 접시나 여우에게 목이 긴 병, 거기에 담긴 음식은 제 아무리 별미라 해도 애초부터 먹을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대접이 아니라 모욕이다. 음식만으로 대접하는 것이 아니다. 대접이란 정말 상대에 대해 말로, 의상으로, 환경으로, 모든 것을 들어 인격적인 예우를 갖추는 것이다. 예전에 실업인 세미나에서 목사님은 셔츠 차림으로 참석한 한 장로님을 혼낸 적이 있다. 격식에 맞는 의복을 갖추는 것 역시 상대에 대한 예의요 대접이다. 가까이 있는 직원들을 우대하면 멀리 숨어있던 인재가 찾아오는 법이다. 중국의 한 임금이 노신하의 간언을 받아들여 적토마의 유골을 비싸게 사들였더니 전국에 숨어있던 명마(名馬)들이 구름떼처럼 몰려왔다 하지 않던가?

대접(待接)은 섬길 대(待), 사귈 접(接), 곧 상대를 섬겨 좋은 관계를 만드는 시작이다. 인생 성공의 기본이요, 영생까지 성공하는 비결이 바로 대접이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여 영생을 소유하고,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섬김으로 인간관계를 성공으로 이끄니 그의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그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하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보다 귀히 여기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 아니겠는가?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아니겠는가?

오는 15일 추수감사주일은 총동원주일이다. 1인 1명씩 전도하여 하나님을 제대로 대접해보자.

한은택 전도사

henry88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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