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푯대를 향하여 뛰라
얼마 전 앞으로 있을 크리스마스 행사를 위해 뮤지컬을 담당할 청년 10여명과 함께 Man of Lamancha(맨 오브 라만차) 뮤지컬을 보았다. 줄거리는 스페인의 어느 지하 감옥….
신성 모독죄로 감옥에 끌려온 세르반테스는 죄수들과 함께 감옥 안에서 즉흥극을 벌인다. 라만차에 살고 있는 알론소는 기사 이야기를 너무 많이 읽은 탓에 자신이 돈키호테라는 기사라고 착각하고, 시종인 산초와 모험을 찾아 떠난다. 여러 비정상적인 행동을 일삼는 돈키호테를 많은 사람들이 미친 노인이라고 무시하지만, 결국 그의 진심에 감동받아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많이 감동 받았던 부분은 이룰 수 없는 꿈 노래 중에
“꿈, 이룰 수 없어도, / 싸움, 이길 수 없어도, / 길은 험하고 험해도, /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 /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뻗으리라. / 이게 나의 가는 길이오. / 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 /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가리라(The Impossible Dream).”
이 뮤지컬은 꿈과 암흑 같은 현실사이에서 꿈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 단순히 자신이 기사라 믿는 미친 노인의 이야기가 아닌 꿈을 좇는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이 뮤지컬을 보면서 삼포, 오포, 칠포 세대들이 생각났다. 이른바,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시대’에 이어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까지 포기한 ‘오포시대’. 그리고 꿈과 희망마저 포기한 ‘칠포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청년들.
대한민국 청년들은 현재 취업시장의 문턱에서 수십, 수백 장에 이르는 이력서를 쓰다가 ‘실신’할 정도로 자신감보다는 자괴감에 빠져 있다. 학자금도 상환해야 하지만 여전히 취업준비생들은 더 많은 스펙을 요구하는 세상 속에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비단 우리 교단 청년들도 예외는 아니다. 믿음으로 준비하고, 도전하며, 기도하지만 그들이 직접 마주하는 세상은 결코 녹록치 않다.
그렇다고 목표 없이 스펙을 준비하다 보면 더 나은 스펙 앞에서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와 연관된 준비,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가 취업의 지름길일 것이다. 이때 자신의 ‘역량’을 자신만의 시각과 해석이 들어간 경험과 어떻게 연결 짓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 자신만의 고유한 브랜드로 만들어야 한다.
‘나에게 열정이 있다’,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금까지 어떠한 경험과 도전을 했는지, 그것을 바탕으로 어떻게 역량을 펼칠지 기도하며, 나 보다 더 나은 스펙을 보유한 사람들 가운데서 남다른 브랜드로서 보여주어야 한다. 남들보다 ‘나은 스펙’이 아니라 ‘나만의 다른 경험’으로 승부해야 하는 이유이다! 오직 나만의 것을 찾아야 한다.
예수님의 브랜드로 세계를 다니시며 자신의 삶을 지금도 만들고 계신 분이우리 목사님이시다. 모방은 제 2의 창조라고 했다. 위기가 올수록 더욱 하나님 편에 서서 원칙과 기본에 충실하며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달려가 보자!
“누가 미친 거요? 장차 이룰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내가 미친 거요? 아니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포기하는 그대들이 미친 거요?” (Man of Lamancha 대사 중에서)
이정금 전도사
jungkm@nate.com
채움과 비움!
농사를 모르는 사람들은 논에 물이 가득 차 있으면 벼가 잘 자라는 줄 압니다. 하지만 논에 물이 항상 가득 차 있으면 벼가 부실해서 하찮은 바람에도 잘 넘어진다고 하네요. 그래서 가끔은 논에 물을 빼고 논을 비워 줘야 벼가 튼튼해진다고 합니다. 때때로 우리 삶도 물을 채워야 할 때가 있고, 물을 빼야 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나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지 말라. 장례식도 치르지 말라. 쓸 만한 장기와 시신은 모두 병원에 기증하라. 죽어서 땅 한 평을 차지하느니 그 자리에 콩을 심는 것이 더 낫다. 유산은 맹인복지에 써라.” 평생을 의료사업과 한글사랑에 헌신해온 외길 90년 공병우 박사의 유언입니다.
그는 한국 안과 의사이자 한글 타자기 발명가이기도 합니다. 그의 관심 속에는 늘 사람들의 필요가 무엇인지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는 맹인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아름다운 의사였습니다. 그의 죽음은 이틀이 지나서야 세상에 알려 졌을 만큼 소리 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빈소나 묘지하나 남기지 않고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비록 그의 죽음은 잔잔한 물결처럼 흘러갔지만 그분이 남기고 간 마지막 채움의 삶은 우리 곁에 영원히 머물 것입니다.
예전에 우리나라 남산 1호 터널 통행료를 1000원정도 받았을 때 이야기입니다. 누군가 만원을 내면서 “내 뒤로 오는 차 아홉 대를 그냥 보내 달라.”고 하는 사람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면 뒤에 오는 아홉 사람은 단돈 천원에 온종일 기분이 좋았다고 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배워야 할 삶이 바로 채울 때와 비울 때를 아는 지혜가 아닐까요?
왜냐하면 우리가 땀 흘리며 열심히 채우는 목적이 바로 참된 비움을 위함이니까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