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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있는 자는 포기를 모른다 (히10:35~11:2)

817호 · 2015-10-25

이번 코스타리카 집회 첫날은 좋은 날씨 속에 순항했으나 둘째 날에는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쳐 모든 장비들이 철수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집회를 주최한 웡 목사는 이런 상황에서는 도저히 야외집회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교회로 옮겨서 집회를 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야외집회를 강행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제 사전에는 오직 최선만 있을 뿐, 차선은 없기 때문입니다. 집회 장소에 나가보니 비는 멈췄지만 무대천정은 바람에 찢겨 있었고, 모든 앰프시설은 철거되어 마이크조차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집회에 참석한 자들을 가까이 모으고는 의자에 올라서서 육성으로 한 시간 정도 설교했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날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은 저를 보시고 소경이 눈을 뜨는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오래 전 포항집회를 갔을 때입니다. 포항의 한 학교운동장에서 집회가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계의 압력을 받았는지 학교 측에서 갑자기 장소제공을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가보니 학교 정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집회 시간은 다 되었고, 사람들은 학교로 몰려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교문 꼭대기에 올라가 설교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같은 이유로 집회장소가 없어서 구미에서는 운동장에서 자동차 라이트를 켜고 설교했더니 그 옆에 있는 예식장에서 식장을 빌려줘서 집회를 했던 일이 있었고, 천안의 청소년회관에서도 담장에 올라가서 설교를 했으며, 대전 기독교회관에서 집회 중에 전기를 내린다고 하길래 베니스의 상인에서

‘피만 안 나게 살을 떼어가라'고 한 것 처럼 '전기는 끊되 불만 들어오게 하라’고 강하게 대항했었고, 부산 집회를 위해 공항에 갈 때 길이 막히자 지나가던 오토바이를 타고 갔던 일이 있습니다. 저는 뒤로 물러난 적이 없습니다. 제 사전에 포기라는 단어는 아예 없습니다.

그런 기질 탓인지 저는 마가복음 2장에 중풍병자를 예수께 데리고 온 네 친구의 이야기를 아주 좋아합니다. 중풍병에 걸린 친구를 고치기 위해 네 명의 친구가 연합하여 예수님 곁에 가려하였으나 사람이 너무 많아 근처에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네 명의 친구는 ‘아쉽지만 그만두자’라고 한 것이 아니라 지붕을 뚫어 병든 친구를 매달아 예수님 앞에 내려놓습니다. 그것을 보신 예수님이 그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믿음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얍복 강가에서 밤이 새도록 하나님의 사자와 더불어 씨름을 하다 환도뼈가 위골되는 지경에 처한 야곱, 날이 밝아오자 하나님의 사자가 떠나기를 청했으나 야곱은 축복을 받기 전에는 보낼 수 없다고 하나님의 사자를 놓지 않습니다. 기필코 축복을 받고야 말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이 정신, 이 믿음 앞에 하나님의 사자도 항복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을 축복하고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었습니다(창32:22~32).

엘리야는 3년 6개월 동안 닫혔던 하늘 문을 열기 위해 갈멜산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비가 내릴 때까지 기도했고(왕상18:19~46), 엘리사는 기필코 엘리야보다 갑절의 영감을 받겠다며 엘리야를 좇더니 그의 계승자가 되어 정말 갑절의 능력으로 많은 일을 행했습니다.

소경 바디매오도 꼭 눈을 뜨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지 예수를 목청껏 불러 소원을 이뤘고

(막10:46~52), 수로보니게 여인도 개취급을 받았지만 포기하지 않았기에 딸이 고침을 받았으며(막7), 누가복음 11장에 나오는 친구에게 떡을 구하는 자나 누가복음 18장에 재판관을 찾아간 과부의 결말도 포기하지 않는 믿음이 일군 쾌거입니다. 마태복음 9장에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 반드시 전쟁에 이겨 이스라엘의 우두머리가 되겠다던 입다, 꼭 아들을 얻고야 말겠다고 기도한 한나, 이 모두 포기하지 않은 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왜 그들에게 역경이 없었겠습니까? 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역경에 무릎 꿇지 않고 일어나 마침내 소원하던 것을 이뤘습니다. 믿음으로 승리한 것입니다. 영·혼·육에 성공한 자들은 다 역경을 이겨내는 역경지수(AQ)가 높다는 통계가 있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10:38). 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18:7~8).

요즘 3포, 5포 세대라는 말을 합니다. 세 가지, 다섯 가지를 포기했다는 얘기입니다. 연애, 결혼, 취업 등을 포기한 세대라는 겁니다. 저는 이 말을 아주 싫어합니다.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들이 왜 벌써 포기라는 말을 씁니까? 취업이 힘들고, 돈 벌기 힘드니까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내 집 마련하는 것도 다 포기한다는 말인데, 여러분의 부모들은 힘 안 들이고 여러분을 낳고, 힘 안 들이고 가르치고, 힘 안 들이고 작은 집이라도 마련한 줄 압니까? 많이 배우지 못해서, 비빌 언덕이 없어서 그들은 여러분들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있기에 포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꿈이 없기 때문에 포기하는 겁니다. 힘들어서 꿈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꿈이 없기 때문에 포기한 것입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팔려 애굽에서 종노릇을 하고, 보디발의 아내가 모함하여 옥에 들어가는 등, 참으로 험산준령을 넘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모든 곡식 단들이 자기 단을 향하여 절하던 꿈과 해와 달, 그리고 열 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던 꿈을 마음 판에 새겨두었습니다. 그 꿈이 없었다면 요셉도 억울함에 분노하고 좌절하고 모든 것을 포기한 채로 살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꿈이 있었기에 늘 정직했고, 언제나 충실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약관의 나이에 영광의 자리에 앉았습니다.

야곱은 그의 외삼촌의 딸인 라헬을 사랑함으로 14년을 견뎠습니다. 노임을 착취당하고, 라헬 대신 언니인 레아를 아내로 먼저 맞는 아픔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약속보다 7년 동안 일을 더해서 마침내 라헬을 아내로 맞았습니다. 라헬을 아내로 맞겠다는 꿈이 있었기에 7년을 수일처럼 여겼다고 했습니다(창29:18). 예전에 사하라 사막을 건넌 사람은 군인들과 장사꾼들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정복자와 거부의 꿈이 있었기에 죽음의 모래바람 속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포기하는 것은 세상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꿈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악한 마귀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어 꿈을 갈취하고, 포기하게 합니다. 그래서 두려움은 인생 최대의 적인 것입니다. 앞에 있는 문제는 허상입니다. 골리앗 같은 문제를 보지 말고, 다윗처럼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아가십시오. 골리앗 같은 문제도 분명히 해결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구하면 주신다고 했고, 포기하지 않고 찾으면 찾게 하신다고 했고, 기필코 열겠다고 문을 두드리면 열어주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목적을 이룰 때까지, 응답을 받을 때까지, 열매를 딸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들이 됩시다. 할렐루야!

우리에게 차선은 없다

오직 최선뿐이다

소망의 열도와

응답은 정비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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