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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소, 이용해 보셨나요?

815호 · 2015-10-09
나도 건강할 수 있다

보건소에는 이상한 꼬리표가 하나 달려있다. 보건소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가는 곳이며, 병의원이 없는 시골에서나 이용하는 곳이라는 잘못된 편견이다. 보건소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1차 진료뿐만 아니라 생각해보지 못한 다양한 보건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곳이다.

75세의 저희 어머니, 평소 깜박깜박 잘 잊어버리셔서 치매 걱정을 하던 차에 보건소의 치매상담센터를 방문하여 치매검사를 받았다. 보건소에서는 일반 의원처럼 일반 환자에 대한 1차 진료 서비스가 이루어진다. 뿐만 아니라 한방치료, 치과진료도 이루어지고 있으며, 처방전도 발행하는데 본인부담금이 매우 적다. 진료에 필요한 검사나 처치, 치료에 필요한 소모품은 무료이기 때문에 비용 면에서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또 한방진료실을 운영하는 곳도 있는데, 주로 뜸, 부항 등의 한방진료와 물리치료를 받을 수 있다.

40대 남성 박 씨 역시 보건소를 찾았다. 그가 찾은 곳은 보건소 내 금연클리닉이다. 해마다 금연을 결심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던 박 씨는 금연클리닉에서 금연에 대한 상담을 받고 니코틴 검사를 받았다. 이후 금연보조제를 받아들고 보건소 문을 나섰다. 건강증진법이 제정된 후 보건소에서는 시민들의 건강증진을 위해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는 곳이 바로 금연클리닉이다. 이곳에서 금연교육과 상담이 이루어지고 일산화탄소 농도 측정 및 니코틴 농도를 측정한다. 이후 니코틴 패치나 니코틴 껌 등의 금연보조제를 나눠주고 심한 경우 약물요법이 무료로 이루어진다. 보건소에 따라 금연클리닉 등록 후 성공한 사람에게는 기념품이나 상품 등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시행하는 보건소도 늘고 있다.

30대 여성 최 씨는 임신 중이다. 보건소에 임산부 등록을 한 후 임산부 건강교실 수업을 듣고 있다. 보건소에서는 임신 20주~30주로 등록된 임산부에게 철분제, 엽산제 등을 무료로 지원한다. 또한 임산부는 혈액검사를 통한 빈혈, 혈청매독검사, 간염검사 등을 무료로 받을 수 있으며, 아기가 태어나면 시기별 예방접종도 받을 수 있다. 이외에도 난임 부부 시술비 지원, 노인 의치(틀니)사업, 노인개안 수술비 지원, 암환자 의료비 지원 등 다양한 의료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다.

Dr. 조희경

pearl9230@naver.com

To Be Succeeded

결단과 선택이 부르는 성공

학업, 직장, 결혼과 같은 굵직한 일에서부터 한 끼 식사를 정하는 소소한 일상까지 우리네 인생은 크고 작은 선택의 연속으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선택이란 ‘결단’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단하지 못하면 선택할 수 없고, 선택하지 못하면 좌고우면(左顧右眄), 이리저리 흔들리다 결국 대업을 그르치게 된다. 그래서인지 포용력, 통찰력 등의 다른 여러 요소와 더불어 결단력이 있는지 여부 또한 리더형 인재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고 한다.

결단력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가진 평범한 여건까지도 비범한 결과를 만드는 특별한 요소로 부각시킨다. 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이 그러했다. 평범한 서민 농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나라의 녹을 먹는 하급관리였을 당시 민란이 일어나자 과감하게 동참했고, 라이벌 항우보다 먼저 진나라 수도를 함락시켰을 때도 항우에 압도당하자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를 망설이지 않았다. 자존심을 접은 후퇴와 처세술의 결단은 결과적으로 평범한 유방으로 천하를 얻게 만들었다. 그런가하면 영화 의 주인공 애런 랠스턴은 협곡 탐험 중 사고를 당하자 바위와 절벽 사이에 단단히 낀 오른팔을 주머니칼로 잘라내는 결단을 감행, 자신의 생명을 구해냈다. 애런의 사례처럼 결단력이 회생과 죽음의 기로를 가르기도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우리가 결단을 하기까지는 깨야할 한계, 또는 잘라내야 할 것들이 있게 마련이다.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이 정도면 됐지’하는 안일함, 주변 사람들의 시선으로 인한 불편함 등은 결단을 가로막거나 지연시키는 요소다. 이를 깨뜨릴 수 있는 연장은 바로 ‘뜻을 정하는 것’, 다시 말해 명확한 목표의식과 신념일 것이다. 성경에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하루 세 번 기도했다고 했다. 만약 그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신념이 흐린 사람이었다면, 그가 가진 높은 지위에 안주하거나 죽음을 두려워하여 기도하기를 그쳤을 것이다. 그리고 히브리서 11장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친 반열 가운데 다니엘의 이름은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성장과 변화를 기대하는가? 꼭지점 인생을 꿈꾸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결연한 의지와 결단, 그리고 선택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국진

joyful_jina@hanmail.net

하나님 편에 서는 삶

믿음의 기도

저는 하나님을 만난 지는 오래 되지 않았지만, 예수중심교회에 출석한지는 올해로 23년째입니다. 올림픽공원에서 예배를 드리던 한국예루살렘교회 시절, 산책하듯 따라간 집 앞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엄마와 저는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기성교회들이 우리 교회를 이단이라고 정죄하며 핍박하고 있었고, 매 예배 때마다 하나님의 기적을 두고 사이비라고 했습니다. 우리 아빠 역시, 그런 교회에 자신의 아내와 아이가 출석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주 교회를 나가는 엄마와 저를 막아서기도 했고, 직접 이초석 목사님을 만나 따지기도 하고, 평소 아빠답지 않게 교회 이야기가 나오면 ‘그 교회를 폭파시켜버리겠다’며 과격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셨습니다.

당연히 ‘아빠의 구원’은 저와 엄마의 첫 번째 기도제목이 되었고, 그 기도가 23년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가끔은 기도를 하다가 “하나님, 이제는 우리 아빠 부르실 때도 되지 않으셨습니까?” 라고 묻기도 합니다. 여전히 하나님은 이렇다 할 대답이 없으십니다.

그렇게 23년이 지났습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이제 우리 아빠의 삶에서 믿음의 행동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귀신을 쫓고 오라고도 말씀하시고, 두꺼운 성경책을 꾸준히 읽으시기도 하며, 평화통일성회나 총동원주일 같은 날은 교회에 오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시다는 증거이겠죠.

저는 이 믿음의 기도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물이 99도에서는 절대 끓지 않듯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면, 저는 이 기도가 하나님의 때에 사람이 상상해보지도 못하고 상상할 수도 없는 방법으로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김경현

kyunghyunjudy.kim@gmail.com

참된 깨달음

친구란?

친구란 어떤 사람일까요? 사람마다 조금씩은 대답이 다를 것 같습니다.

영국에서 ‘친구’라는 말의 정의를 독자들에게 공모한 적이 있었는데, 수 천통이나 되는 응모엽서 중에 다음 내용들이 선발되었다고 합니다. ‘기쁨은 곱해주고 고통은 나눠주는 사람’, ‘오랜 시간 침묵이 흘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람’, ‘아무 말하지 않았는데도 교감이 이뤄지는 사람’, ‘어떤 경우에도 내 뜻을 믿고 깊은 비밀은 지켜주는 사람’ 하지만 1등은 다음의 글이었습니다. ‘친구란 온 세상이 다 내 곁을 떠났을 때 나를 찾아오는 사람’

세상에는 내 존재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고, 나의 행동이나 성과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 존재를 사랑해주는 사람은 내가 실수나 실패를 해도 그 사랑이 변함이 없지요.

누군가 말하길 ‘진정한 사랑이 눈을 멀게 하는 것’이라면, ‘진정한 우정은 눈을 감아주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처럼 친구가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는 건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여러분에겐 어떤 친구가 있습니까?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고 비밀이 없을 만큼 절친한 친구를 ‘죽마고우(竹馬故友)’라 하고, 숙명처럼 물과 고기의 삶 같이 친밀한 친구를 ‘수어지교(水魚之交)’라 합니다. 단단한 무쇠나 돌처럼 서로 견고함을 지닌 사이를 ‘금석지교(金石之交)’라 하고, 오랫동안 편한 친분을 쌓은 친구를 ‘막역지교(莫逆之交)’라 합니다. 또한 한결같고 허물없는 친교를 맺은 친구를 ‘관포지교(管鮑之交)’라 하고, 목숨 걸고 신의로 맺은 친구를 ‘문경지우(刎頸之友)’라 하는데 이 중에 어떤 친구라도 한두 명쯤 곁에 두고 있다면 분명 당신은 성공한 인생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알고 계십니까? 우리에게 이 모든 친구를 다 합해놓은 ‘생명을 준 친구’, ‘생사고락을 함께 해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곧 나의 친구라”(요15:14~15). 그분의 이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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