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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별과 차별

815호 · 2015-10-09

차별은 옳지 않다. 그러나 구별은 반드시 필요하다.

오늘날 구미선진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웃지 못 할 해프닝이 있다. 차별금지라는 인권적 인식이 이상하게 작용하여 옳고 그름을 구별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나와 다르다고 배타하는 것은 차별이기에 이는 분명 문명사회에서 지양해야할 자세이다. 그러나 차별금지라는 가치가 무조건 우선하여 무엇이 옳고 그른지조차 구별하지 못한다면, 사회기강이 문란해지고 인간을 위한 가치가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인간의 행복한 삶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성(性)의 개인선택권을 보장하고 성적 소수자를 보호한다는 인권적 가치는 출발부터 접근이 잘못되어있다. 다르다고 배타하고 차별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옳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죄악에 눈을 감아버리는 것은 더욱 악하지 아니한가. 대통령이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하는 나라 미국이 앞장서서 이러한 불의를 전파하고 있으니 이는 그야말로 배도(背道)가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하여 분명히 죄라고 적시하고 있는 동성애를 의회와 대통령이 나서서 합법화하고 그것도 모자라 다른 나라에까지 강요하는 작금의 행태는 이만저만한 자기모순이 아니다. 청교도의 눈물과 피땀으로 세워진 나라를 기초부터 뒤흔드는 국기 문란 행위임에도 이에 맞서 불의를 따지는 목소리는 다수의 논리에 묻히고 감옥에 갇히는 세태가 안타까울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회개와 용서로 새로운 시작을 독려하는 구원의 복음이다.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시며 다시는 죄짓지 말라 하신 것은 용서를 통하여 죄에서 해방시켜줌과 동시에 분명한 회개를 통하여 새로운 출발을 독려하신 것이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요8:11)는 예수님의 음성을 오늘의 교회는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교회가 구별하여 옳고 그름을 가르치고 선도하는 역할은 게을리 한 채, 차별하는 정죄에 바빴던 것은 아닐까 반성해야 할 줄로 믿는다.

정죄는 쉽다. 정죄는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차별적 선언에 그치는 것이기에 거기에는 어떠한 사후책임도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정죄하러 오시지 않았다.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다.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는 것은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구별하여 가르쳐주고, 비록 지금까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었다 하더라도 돌이켜 옳은 길로 갈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주러 오셨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그런 노력이 우리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니 우리 속에 성령으로 오셔서 세상 끝 날까지 동행하시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과 부활로 웅변하신 복음이다. 결국 마지막 희망은 교회에 있다. 교회가 살아야 이 시대에 희망이 있다.

Henry Han

henry88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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