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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성공한 사람을 모방하면 성공한다 (왕하2:7~14)

815호 · 2015-10-09

서울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이시대 목사는 육적으로는 제 동생입니다만, 영적으로는 저의 사랑하는 제자입니다. 작년인가 그가 하는 설교를 듣고 무릎을 쳤던 일이 있습니다. 이시대 목사가 주일아침 설교를 하러 아내와 함께 교회로 오는데 가양대교 쯤에서 무슨 일인지 차가 막혀 꼼짝도 안하더랍니다. 예배 시간은 다가오는데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었겠지요. 그 때 그의 머리를 탁 치는 것이 있었답니다. 그건 바로 아주 오래 전, 제가 지방 집회를 위해 김포공항으로 가는데 길이 막혀 도저히 비행기 시간을 맞출 수 없었을 때, 지나가던 오토바이를 잡아타고 갔던 일이었습니다. 제가 쌀을 싣고 가던 오토바이 주인에게 사정사정해서 간신히 공항에 도착한 일을 이시대 목사가 기억해낸 겁니다. 그래서 이시대 목사는 아내에게 운전하고 오라고 하고는 차에서 내려 지나가던 오토바이를 잡아타고 88체육관에 도착해서 예배를 인도했다고 했습니다. 이시대 목사 왈, ‘총회장 목사님이 하신 그대로 했다’고 설교했습니다. 이시대 목사는 저를 모방해서 위기를 극복한 것입니다.

요즘 벤치마킹(benchmarking)이란 말을 자주 씁니다. 벤치마킹이 뭡니까? 기업에서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타사에서 배워오는 혁신 기법이 벤치마킹입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모방하는 겁니다. 그대로 본뜨는 것이 아니라 성공사례를 들여와 더 나은 내 것을 만드는 것이 벤치마킹입니다.

오늘 본문은 엘리야를 모방한 엘리사의 이야기입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졸졸 따라다닌 수제자입니다. 엘리야가 내 곁에서 떠나라고 몇 번이나 권했지만 엘리사는 스승인 엘리야의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고 그가 하는 것을 보고, 듣고 배웠습니다. 마침내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을 타고 승천하자 엘리사는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왕하2:14) 했습니다. 그러자 물이 갈라져서 엘리사가 강을 건너게 됩니다. 이것은 스승인 엘리야가 요단 강가에 섰을 때 하던 것을 똑같이 모방한 것입니다.

“엘리야가 겉옷을 취하여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육지 위로 건너더라”(왕하2:8). 이 후로 엘리사는 여리고의 물을 고치고, 과부의 집에 기름을 채워주고,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리는 등 엘리야를 능가하는 능력을 행했습니다. 모세를 따르던 여호수아(출24:13)가 모세의 후계자가 되어 여리고를 무너뜨리고 가나안을 정복한 것, 예수의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아 복음을 전함은 물론 많은 기사와 표적을 나타낸 것은 그들의 스승을 모방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귀먹고 벙어리 된 자들에게 먼저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난 다음, 입에 손가락을 넣고는 “에바다” 하고 외칩니다. 사람들은 비위생적인데 왜 그러냐고 하지만 이유는 단 한 가지, 저의 스승인 예수님의 방법을 그대로 하는 것뿐입니다.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막7:33~35). 또 눈이 보이지 않는 소경에게는 침을 뱉어 눈에 문지릅니다. 그 이유 역시 예수님의 방법을 모방한 것입니다(요9:6~7). 제 스승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목회초기에는 모세를 저의 롤모델 삼아 모방하였고, ‘나를 본받으라’고 한 바울을 따라가기도 하였으나 ‘나의 스승은 오직 예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예수님이 하신 것을 그대로 모방하고, 그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와 같은 능력을 갖게 되었고, 그 능력으로 전 세계에 나가 복음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현재성을 증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성공한 사람들, 성공한 나라, 성공한 교회를 벤치마킹하는 겁니다. 모방하는 겁니다. 그래서 거기에 좋은 것을 더하고, 나쁜 것은 빼고, 필요한 것을 보태서 나도 성공하고, 내 나라도 성공하고, 내 교회도 성장시키는 것이 지혜입니다. 모방은 제2의 창조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하던 우리나라가 잘 사는 미국과 일본을 모방하고 노력해서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세계 개발도상국들이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을 모방해서 그대로 실천하고 있지 않습니까?

믿음도 모방함으로 성장합니다.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임신한 마리아. 그녀는 사내아이를 낳게 될 것이라는 여호와의 사자에게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눅1:34)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사자가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눅1:36~37)라고 말하고 떠납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보여줄 모델을 설정해준 것입니다. 이에 마리아가 직접 엘리사벳을 찾아가 그를 보고, 그에게 듣더니 믿음이 확고해져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눅1:47~48) 라며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엘리사벳을 보고, 그에게서 듣고 믿음이 성장한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읽다가 지혜도 모방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로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의 이야기입니다. 영적 거성이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아브람 시절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그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일이 있습니다(창12:10~20). 아내인 사래가 너무 아름다워 자신을 죽이고 아내를 빼앗을까 하는 염려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26장에 보면 이삭도 똑같이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삭이 그랄에 거하였더니 그곳 사람들이 그 아내를 물으매 그가 말하기를 그는 나의 누이라 하였으니 리브가는 보기에 아리따우므로 그곳 백성이 리브가로 인하여 자기를 죽일까 하여 그는 나의 아내라 하기를 두려워함이었더라”(창26:6~7). 더러는 그들의 행위를 두고 야비하다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행동입니다.

“청컨대 너는 옛 시대 사람에게 물으며 열조의 터득한 일을 배울찌어다”(욥8:8). 저는 여러분들이 옛 시대의 사람, 곧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선친들을 보고 벤치마킹을 했으면 합니다. 아벨을 보고 하나님께 어떻게 예배드려야 하는지 배우고, 죽음을 맞보지 않고 들림 받은 에녹을 보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이 무엇인지 깨달았으면 합니다. 또한 산꼭대기에 배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100년이 넘도록 배를 만든 노아에게서 순종과 인내,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믿음을, 아브라함에게서는 우리의 본향을 사모하는 마음을, 이삭에게서 자신을 드리기까지 순종하는 마음을, 야곱에게서 침노하는 믿음, 요셉에게서 인내와 사랑을 배워 신앙이 성장함은 물론 삶의 질이 높아지기를 원합니다.

새로운 많은 것을 창조해냈던 발명왕 에디슨도 ‘타인이 많이 생각한 신기하고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찾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발명의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성경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잠13:20). 나보다 나은 자를, 기업을, 국가를 모방해서 발전하고 성장합시다. 할렐루야!

모방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라

보고 듣고 모방하면

너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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