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편에 서는 자가 되라 (왕상18:20~21)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 도와주세요!’ 라고 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하나님 편에 섭시다. 그러면 만사형통의 복이 나팔 불며 찾아올 것입니다. 이것은 저의 간증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편에 선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편에 서는 걸까요? 하나님 편에 서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우상숭배하지 말라 하시니 우상숭배 안 하고, 부모를 공경하라 하셨으니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며, 사람의 비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비위를 맞추는 것도 하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위기가 와도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장로다, 권사다, 집사다’ 하고 당당히 밝히는 것도 하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은 그 자체가 영광이요 멋진 일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하나님 편에 선다는 것은 영광된 일이고 멋진 일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힘들고 위험하고 고난의 길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주님도 그 길을 ‘좁은 길, 협착한 길’이라 하여 힘든 길임을 암시하셨습니다(마7:13~14).
초대교회 때 하나님 편에 선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세상과 사회, 가족으로부터 고립 당함은 물론이고, 하나님 편에 선다는 이유만으로 화형을 당하고 사자에 찢겨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다니엘이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봅시다. 그들은 털어도 먼지조차 나지 않는 흠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 선다는 이유로 풀무불에 던져졌고, 배고픈 사자굴에 던져졌습니다. 또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 힘든 이유는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드리라고 한 것처럼, 욥을 마귀에게 내어놓으신 것처럼, 하나님이 하나님 편에 선 자를 시험하시기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이래도 내 편이 되겠느냐’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편에 서지 않고 마귀 편에 선 자들이 있습니다. 아담이 그랬고, 사울왕, 발람 선지자, 가룟 유다가 그랬습니다. 넓은 길, 편한 길을 따른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 자의 편에 섰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요일4:4).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16:33).힘들더라도 이긴 자의 편에 서야 나중에 함께 영광을 누릴 것 아닙니까?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 편에 꼭 서야 하는 이유입니다. 세상을 이기신 하나님 편에 선 다윗의 노래입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시118:6~7).
오래 전의 일입니다. 목회 초, 파주 집회를 할 때 저는 그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이봉재 전도사의 옥탑 방에서 묵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하루를 유하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나려는데 어지럽고 맥이 풀려 전혀 몸을 가눌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주범은 연탄가스였습니다. 저는 엉엉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길이 정말 힘드네요. 그러나 그 길이 아무리 힘들어도 저는 끝까지 주님을 따라갈 겁니다. 제게 힘을 주세요.” 그 때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그래, 나를 따라오는 길은 좁은 길이란다. 그래도 오겠니?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는데….” 저는 소리 내어 울면서 주님께 답했습니다. “머리 둘 곳이 없어도 좋아요. 끝까지 주님을 따라가겠습니다. 저는 오로지 주님만을 사랑합니다.” 그랬더니 주께서 “그렇다면 만물이 네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편에 서서 가는 길은 어렵습니다. 저는 그 과정을 ‘눈 덮인 산야, 물 없는 사막’이라 표현하렵니다. 정말 힘든 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은 것은 고난의 길 끝에 영광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도중에 총도 맞고 악당에 잡혀 고초도 당하지만 결국 악한 것들을 일망타진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옛날에 즐겨 보던 서부활극 영화처럼, 고난과 시련의 과정 끝에 영광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영광을 받은 것처럼, 제가 오늘날 영광을 받은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마귀의 편에 선 자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더디 내려오자 백성들이 아론을 찾아가 신을 만들어 달라고 했고, 아론은 금고리를 가져오라 하여 그것들을 녹여 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시내산에서 내려온 모세는 그것을 보고 기함했고, ‘여호와의 편에 선’ 자들을 따로 분리한 다음 그들을 통해 우상을 숭배한 삼천 명 가량을 죽였습니다(출32).
솔로몬은 하나님 편에 선 자로 전무후무한 지혜를 얻었고, 건강과 재물을 아울러 얻은 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이방 여인들을 첩으로 들이면서 이방 여인들이 들여온 우상들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몰록을 위하여 산당을 짓고 그것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를 보시고 진노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나의 언약과 내가 네게 명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왕상11:11). 하나님 편에서 마귀의 편으로 갈아탄 결과입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하니 백성이 한 말도 대답지 아니하는지라”(왕상18:21). 이것은 엘리야가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느 편에 설 것인지 확실하게 하라고 촉구하는 말입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추석을 맞아 제사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성도들이 있을 것입니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족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심하게는 구타를 당하는 자도 있을 것입니다. 간혹은 이혼까지 당하는 자들도 봤습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하나님 편에 꿋꿋하게 서야 합니다. 힘든지 알지만 꼭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당신이 하나님 편에 서면 하나님이 당신 편이 되사 당신을 영광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한테 내 편이 되어달라고 하지 말고, 내가 먼저 하나님 편이 됩시다. 그 길이 비록 어렵고 힘들더라도 영광이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흔들리지 맙시다. 사도 바울의 고백으로 맺겠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5~39).
할렐루야!
모든 것은 타협할 수 있지만
신앙만은 타협할 수 없다
나무에서 떨어진 가지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