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활극과 같은 성도인생
미국의 서부활극을 보면 중간쯤 해서 반드시 주인공이 곤경에 처하게 되어 생사의 기로를 헤매는 대목이 나오곤 한다. 혹 악당들에게 잡혀가서 린치를 당하거나 진퇴양난의 모함에 빠져 재기불능의 경지에 이르게 될 때, ‘이제 저 사람은 죽겠구나’ 하고 한숨을 쉬려하면 아이들은 대뜸 “저 사람 안 죽고 살아 나와요. 주인공이 죽어버리면 영화가 되나요?”한다. 과연 서부활극에는 하나의 도덕성이 있어 반드시 권선징악의 해피엔드로 끝나게 마련이다.
성도의 인생은 서부활극과 같아 반드시 승리와 축복의 해피엔드로 끝나도록 각본이 짜여져 있다. 그래서 시인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고 노래했다. 성도는 여러 가지 어렵고 무서운 시험을 만나 생사의 갈림길에 서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마침내 도우시어 승리와 축복을 주신다는 것이다.
성도의 인생은 마치 결과를 알고 있는 축구시합의 녹화방송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언젠가 한일 월드컵에서 이탈리아와 축구시합이 벌어졌는데 우리가 2:1로 역전하여 승리했다는 소식이 뉴스로 방송되었다. 다음날 TV로 재방송을 보니 월등한 상대가 전반 한골을 먼저 넣고 파죽지세로 공격하니 응원하던 국민들은 손에 땀을 쥐며 ‘아! 지겠구나’ 하며 한숨을 내쉰다. 그러다가 문득 아까 뉴스시간에 우리나라가 이겼다는 소식을 들었던 기억이 나면서 비로소 안심하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후반전에 동점골을 넣고 전세가 역전되더니 경기종료를 앞두고 역전골을 넣어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다.
우리 성도는 이미 결론난 시합의 재방송을 보고 있는 것이다. 결론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구원과 영생을 받아놓고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니 지금은 내가 곤경에 처해있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고 있지만, 마침내 승리한다는 결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안심하고 축구구경 하듯, 마음 놓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 즉 결론적 믿음인 것이다. 이 종말적 승리를 보증하시기 위하여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고후1:21~22).
‘내가 장차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이 병에서 고침을 받을 수 있을까? 이 어려운 문제에서 헤어 나올 수 있을 것인가?’ …가 아니라 이미 구원을 받아놓고, 건강을 받아놓고, 축복을 받아놓고, 천당을 확보해 놓고 우리는 신앙생활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6:17~18).
신기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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