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관리 못하면 망한다
사회가 점차 투명도가 높아지면서 사회지도층에 대한 국민적 기대수준 역시 점차 높아지고 있다.정신없이 성장가도를 달리던 시절에는 웬만한 불법이나 탈법에 대해 눈감아주거나 불가피성을 피력하며 넘어가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국회인사청문회에서 진행되는 검증과정을 보아도 고래적 일부터 지극히 작은 일조차 대충 넘어갈 수 없는 시대이다. 그만큼 사회지도층이 되고자 하는 자는 더욱 자기관리에 철저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는 단지 지도층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요즘은 곳곳에 CCTV다, 블랙박스다, 스마트폰 등이 넘쳐나기에 언제 내 일거수일투족이 타인에 의해 찍혀 온라인상에 퍼져나갈지 알 수 없는 시대이다. 남의 집 앞에 쓰레기를 투기하던 얌체족이 주차된 차량의 블랙박스에 찍혀 신상이 털리는 일들이 심심찮게 뉴스를 타기도 한다. 각종 범죄행위가 CC TV에 찍혀 옴짝달싹 못하는 실정이기도 하다. 곳곳에 눈이 있어 사생활침해의 부작용까지 거론되기도 하지만, 워낙 사회안전망에 대한 불안이 가중되다보니 어린이집을 비롯한 유치원, 동네 골목 구석구석에 날로 CCTV가 늘어간다. 인간의 눈도 이런 문명의 이기를 빌어 보이지 않는 곳들을 탐지해내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는 없을 터, 성경에도 다윗이 아무도 모르는 줄 착각하고 완전범죄를 획책하다가 나단 선지자의 입을 빌린 하나님의 질책을 받고 대성통곡하며 회개하는 사건이 나온다(삼하11, 12장).
목사님이 언젠가 기도원 산상집회 설교를 통해 하신 말씀이 있다.
“나도 알고 하나님도 아는 죄는 문제될 게 없다. 회개하면 용서 받을 수 있는 특권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은 아시는데 나는 모르는 죄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고 자신의 생각이 옳은 줄 착각하다가 사울처럼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망해간다.”
지금도 불꽃같은 눈초리로 우리 삶을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따라서 ‘공든 탑이 무너지랴’는 속담은 옳지 않다고 목사님은 말씀하신다. “공든 탑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경영은 관리요, 관리는 곧 점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늘 내 가정을 점검하고, 내 사업을 점검하고, 내 신앙을 점점해야 한다.”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인간에겐 늘 죄의 소원이 도사리고 있다. 사도 바울도 속사람이 서로 싸운다고 그 고충을 토로하지 않던가?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7:22~24).
사도 바울도 자기 관리에 얼마나 애썼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목사님도 많은 유혹과 싸우신다고 고백하신다.
“수많은 유혹이 늘 따라온다. 특히 사업을 했던 전력이 있어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지 눈에 보이기에 더욱 유혹이 온다. 돈, 명예, 정치, 이성 등등의 유혹에서 나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종은 오직 말씀과 기도에 전무해야 하기에 날마다 기도하며 나 자신과 싸운다.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깨어 기도해야 한다고 우리 주님이 말씀하셨기에 이 수많은 유혹에서, 내 속사람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은 오직 기도뿐이다.”
악한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이 땅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는 길뿐이다. 우리 믿는 자의 삶에 있어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전 반공구호 중에 ‘초전박살’이라는 말이 있었다. 적의 도발을 초전에 봉쇄하여 더 이상 도발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다짐이었다. 죄를 다루는 신앙의 자세에 아주 시의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죄의 유혹을 초전에 박살내지 못하고 두었다가는 그 죄에 먹혀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목사님께서 강조하신 말씀을 잘 기억하기 바란다. “죄는 문틈으로 들어온다. 그러나 이를 무시하다가는 나의 행복, 가정의 행복이 대문으로 나가버린다.”
한은택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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