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 안주하고 살 것인가?(살후3:6~16)
일하기 싫습니까? 도전하기 싫습니까? 노력하기 싫습니까? 배우기 싫습니까? 그렇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현실에 만족하고 안주하고 사는 수밖에요.
벼랑에 서 있는 소나무도 살겠다고 뿌리를 깊이 내리려 몸부림치는데, 환경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몸을 사리고 손을 놓고 있다면 아름다운 미래는 포기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3주간의 하계산상집회를 마치고 기도원 식구들과 조촐한 파티를 하려고 하는데, 그날따라 비가 부슬부슬 내렸습니다. 준비가 다 되었다고 해서 나가보니까 식당에다 음식을 준비를 해놓은 상태였습니다. 마침 그 자리에 오 장로의 아들인 명철이가 있기에 그 아이에게 “이 곳에서 밥을 먹는 게 낫겠니? 아니면 밖에서 먹는 게 낫겠니?” 하고 물었더니 명철이가
‘비가 오니까 여기가 좋겠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도 같은 대답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비가 온다고 여기서 밥을 먹겠다는 생각이면 밖의 아름다운 풍경을 포기해야지. 비가 내리니까 더욱 풍경이 운치 있지 않겠니? 밖에 지붕이 있는 곳이 있지 않니? 거기로 이것들을 옮기는 것이 귀찮으면 여기서 고기 연기 맡으며 먹어야지.” 그랬더니 그제야 다들 깨달았다면서 음식을 옮기고, 불판을 옮겼습니다. 그들 말이 야외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니 너무 좋다고 했습니다.
일하기 싫은 자들, 노력하지 않는 자들, 도전하지 않는 자들은 항상 핑계를 댑니다. 비가 와서 못 나간다 하듯 학벌이 좋지 않아서, 돈이 없어서, 뒷받침이 없어서, 시대가 어려워서…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들은 다릅니다. 그들은 핑계 대신 방법을 찾습니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가면 눈부시게 찬란한 왕궁이 있습니다. 둥근 천장과 벽, 기둥이 마치 다이아몬드를 박아놓은 것처럼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게 부서진 유리조각들입니다. 이 왕궁이 설계되었을 때 건축가들은 문에 입힐 거울을 외국에서 수입했습니다. 그런데 기다리던 거울이 도착하여 포장을 푼 사람들은 낙담하고 말았습니다. 운반 도중 거울이 산산조각 나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안타까워하며 깨진 유리조각들을 쓸어버리려 할 때 한 사람이 ‘깨져 있기 때문에 더 아름다울지도 모른다.”고 말했고, 그의 의견대로 깨진 유리조각으로 벽에 붙였더니 뜻밖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왕궁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큰 화선지에 먹물 하나 떨어졌다고 화선지를 구겨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그 먹물을 기점으로 바위를 그리고, 난을 쳐서 명화를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미래가 보입니다. 길이 보입니다.
인생은 골프와 같습니다. 1홀에서 마음대로 안 되었어도, 실수했어도 다음 홀에서 기회가 있습니다. 1998년 US 여자 오픈에서 박세리는 1, 2위를 다투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그만 박세리 선수가 친 공이 연못에 빠졌습니다. 그러자 그는 주저 없이 맨발로 들어가 공을 쳐냈고, 결국 극적으로 우승했습니다.
공을 치다보면 연못에도 빠지고, 나무 사이로 들어갈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거기서 그만 두고 집에 옵니까? 여러분, 인생은 일모작이 아닙니다. 이모작, 삼모작이 가능합니다. 농사짓다가 태풍으로 날려도, 장마에 씻겨도 다시 씨를 뿌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입니다.
보석 세공사가 다이아몬드 원석을 손에 넣고는 심마니가 산삼을 얻은 듯이 설레었습니다. 이것을 멋지게 세공하면 상당한 돈을 쥐게 될 것이라는 기대에 그는 밤을 새워가며 명작을 만들고자 부심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만 힘을 너무 주는 바람에 다이아몬드 원석 한 가운데에 깊게 칼자국이 나고 말았습니다. 정말 통곡을 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많은 전문가를 두루 찾아다니며 자문을 구하였으나 모두가 혀만 끌끌 찰뿐이었습니다. 그러다 그는 어렵게 나이가 많은 세공사를 만나게 됩니다. 그 노인은 사흘의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사흘 후 다시 그곳을 찾았을 때, 그는 놀라서 입이 다물지 못했습니다. 노인이 내놓은 다이아몬드에는 너무 아름다운 장미꽃이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노인은 젊은이에게 말합니다. “인생에서의 흠집도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오.”
주일예배 후에 저는 한 아이를 만났습니다. 그는 일찍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마음에 큰 상처를 입어 이리저리 방황하던 차였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아이를 좀 잡아달라고 간절히 부탁하기에 그를 만나 이렇게 말해줬습니다. “네 상처가 작다고 할 수는 없지만, 부모를 원망하지 마라. 불행한 가정환경을 탓하지 말고, 이것을 에너지 삼아 일어나라. 실패한 사람은 ‘~ 때문에’라고 원망 불평하지만, 성공한 사람은 ‘~덕분에’라고 하면서 그것을 디딤돌 삼고 일어난단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잠26:13).
또 저는 명문대인 중국의 북단대를 졸업하고 모스크바 대학에 진학하려는 젊은이를 만났습니다. 그에게 저는 “두려워할 것이 없다. 도전해야 얻을 수 있다. 배우는데 게으른 자는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야 한다. 5개 국어를 하도록 더욱 노력해라.”라고 말해줬습니다. 그는 후에 문자 메시지를 통해 ‘목사님의 말씀에 온 몸에 전율을 느꼈습니다. 말씀 명심하겠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여러분, 성장과 변화가 없는 것은 죽은 것입니다. 과거보다 현재가 나아야 하고, 현재보다 미래가 나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게으름과 핑계를 버리고 도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차에 시동을 걸지 않으면 기어 변속이 안 되듯 인생은 차와 같습니다. 핸들을 움직이는 대로 차가 나가는 것처럼 인생도 생각의 핸들에 의해 움직입니다. 그러나 먼저 시동을 걸어야 합니다. 시동을 걸어야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갈 수 있습니다. 인생도 시도해야 합니다. 실패할 수도 있고, 실수할 수도 있지만 일단 인생의 시동을 걸고 목적지를 향해야 합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부지런한 것이 아니라 부지런하다는 것은 한 곳에 몰두하는 집중력을 말합니다. 목적을 정했으면 귀는 막고 오직 목적을 향하여 집중해서 나가는 것이 부지런한 것입니다. 한 우물을 깊게 파는 것이 집중력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는 것은 집중력 부재 때문입니다. 이것 하다 안 되는 것 같다고 다른 것을 하고, 또 다른 것을 파는 것 때문입니다. 우물을 조금 파면 건수만 나오고 다시 마르고 맙니다. 마르지 않는 샘을 원한다면 깊게 파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갈수록 양극화현상이 두드러질 것입니다. 진화는 평준화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돈 있는 사람과 돈 없는 사람, 많이 배운 자와 못 배운 자로 갈리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어느 반열에 들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니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더욱 노력하고, 더욱 도전하고, 더욱 배우고, 더욱 부지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저축한 개미와 일하기 싫어 매일 놀기만 하던 배짱이의 삶을 비교해보면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제가 매사 차선을 버리고 최선을 다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아름다운 미래를 꿈꿉니까? 멋진 미래가 꽃다발을 안고 달려오길 원합니까?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새겨봅시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3:10). 할렐루야!
게으름은 악이요
인생을 부식시키는 독소다
배움의 끝은 실천
이제 시작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