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선을 구하지 말고 오직 최선을 다하라
“I don't know the second best(나는 차선을 모른다)! I only know the best(나는 오직 최선을 다할 뿐이다)!”
목사님이 청소년 수련회부터 산상집회 기간 내내 외치신 제일 화두(話頭)다. 중고등부 수련회 때는 폐회예배까지 직접 인도하셨고, 산상집회 때는 매일 3시간이 넘게 불을 뿜는 설교로 혼신을 다하셨다. 진정 오늘을 마지막으로 아는 자세였다. 그러나 이는 새로운 30년 사역의 원년에 목사님께서 새롭게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단 1명을 놓고 시작한 30년 사역에 항구여일하게 추구해온 목사님의 목회철학이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
정치나 사업, 목회 뿐 아니라 매사 이런 자세로 임한다면, 목사님 말씀처럼 실패하는 게 기적이다. 사람 사이에 신뢰를 구축하는 것부터 인간사에 해당하는 모든 일에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연구 노력하며 일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얻는 결과이다. 그래서 “과정은 결과를 대변하지 못하지만, 결과는 과정을 대변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신앙의 문제부터 실제 삶에 적용되는 처세에 이르기까지 믿음과 지혜로써 모범을 보이시는 목사님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가 왜 인간의 길인지, 하나님을 믿는 삶이 왜 위대한지, 순수한 열정이 진정 무엇인지 절절히 보여주고 있다.
확신을 가지고 말하건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구체적 삶에 어떻게 적용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목사님이 설교하실 뿐 아니라 직접 삶으로 보여주는 모습을 따라가길 권한다.
혹자가 말하기를 “목사님의 설교는 참 이해하기 쉬운데, 실천하기가 힘들다.”고 했다는데, 이는 결국 실천의 문제임을 잘 설명해준다. 몰라서 못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알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게으름, 나태함이 주범인 것이다. 즉,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들을 때마다 아프게 폐부를 찌르는 말씀이 또 있다. “이것이면 됐어.”가 아니다. “이것이라야만 돼!”이다. 따라서 목사님의 사전에 ‘대충’, ‘얼렁뚱땅’이란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목사님과 우리의 차이는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지만, 그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 얼마나 자신과 철저히 싸우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단 한 가지라도 실천하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치고 있느냐에 있다고 하겠다.
성경도 말씀한다. 히브리서 12장 4절의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라는 말씀처럼,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내 삶에 이루기 위해 이런 처절한 열정과 자세로 자신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자만이 세상과 음부의 권세가 감당하지 못한다는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할 때마다 편한 길을 찾는 사람, 꾀를 부리는 사람, 차선부터 구하는 사람은 결코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없다. 그들은 일을 이루려는 생각보다는 피할 핑계부터 찾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작은 같이 할 수 있지만, 결코 끝까지 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끝까지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가는 사람은 앞에 어떤 난관이 닥쳐와도 피하지 아니하고 함께 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실수하고 넘어질 수 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우리 인생의 앞길에 탄탄대로만 깔려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더디 갈지언정 뒤로 물러간 적은 없다.”는 목사님의 말씀에서 숱한 시행착오를 넘어 길을 찾아나가는 개척자의 모습을 본다.
오늘도 자문자답해보자. ‘나는 오늘 최선을 다했는가?’
한은택 전도사
henry8829@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