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할 수 없이 힘들 때
최근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는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나서 조금 많이 힘들었습니다. 아침에 눈떠서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사람들 만나고, 겉으로 보면 모든 일상이 예전과 똑같은데 속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몸 안에 우울이 가득 차서 누가 조금이라도 건들면 곧바로 터질 것만 같았지요.
하나님은 항상 더 좋은 길로 인도해주시고 하나님께 기도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실 거라는 걸 잘 알지만, 일단 마음이 지쳐버리자 기도가 잘 안됐습니다. 몸은 교회에 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있는 상태로 2주가 흘렀지요. 그러던 중 출근길에 늘 듣던 팝송 말고 찬양을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번득 들었습니다. 여러 CCM을 찾아보다가 어노인팅의 ‘성령이 오셨네’를 골라서 재생 버튼을 눌렀고, 그 순간 제 귀에 찬양이 울려 퍼졌습니다.
‘허무한 시절 지날 때, 깊은 한숨 내쉴 때, 그런 풍경 보시며 탄식하는 분 있네. 고아 같이 너를 버려두지 않으리,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 내 주의 보내신 성령이 오셨네. 우리 인생 가운데 친히 찾아오셔서 그 나라 꿈꾸게 하시네’
이 찬양이 귀를 타고 들어와 제 심령을 가득 채웠고, 순식간에 눈시울이 뜨거워져버렸습니다. 그래, 하나님은 나를 고아같이 버려두지 않지. 맞아, 성령님은 내 인생에 친히 찾아 오셨지….
찬양은 기도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버린 영혼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입니다. 귀로 듣는 중에 마음으로 깨달아지고, 입술로 따라 부르는 중에 서서히 우리 영혼을 회복시키지요. 세상을 향했던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로 되돌리게 하고, 이 땅의 사라질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꿈꾸게 합니다. 당장 눈앞의 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실패한 것도 아니요, 좌절할 필요도 없다는 걸 알게 해주지요.
다윗은 인간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많은 환란을 경험했습니다. 사울에게 죽임을 당할 뻔하고, 아들에게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고…. 하지만 그 모든 고통을 견뎌내고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정신력이 유난히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고난 중에 있을 때 하나님을 찬양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찬양을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에게 인간이 줄 수 없는 새 힘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 찌어다’라는 그의 고백을 다시 말하면 ‘호흡이 있는 평생 동안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런던 브루넬 대학 코스타스 박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음악은 법적으로 허용된 약물에 가깝다.”
사는 동안 우울한 일들이 우리의 영혼을 공격할 것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찬양은 비타민처럼 영혼의 면역력을 키워주고 지켜줄 테니까요. 몸을 위해 꼬박꼬박 비타민을 챙겨 먹듯이 우리의 영혼을 위해 찬양을 챙겨줘야겠습니다. 지친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것일 테니까요.
신은혜
dopal0203@naver.com
코뚜레 해야죠!
집 안에 경사가 났습니다. 두 마리의 송아지가 태어났거든요. 농부는 두 마리 송아지를 정성껏 키웠습니다. 송아지가 어느 정도 자라자 농부는 송아지에게 코뚜레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한 송아지가 농부한테 사정을 합니다.
“제발 코뚜레를 하지 말아주십시오.” 농부가 대답합니다. “코뚜레를 하지 않으면 망아지가 된단다. 그래서 아프지만 이걸 하는 거야.” 송아지는 눈물을 흘리며 “주인님, 코뚜레를 하지 않아도 일도 잘하고 말도 잘 들을게요.” 농부는 눈물에 마음이 약해져서 그만 한 마리에게만 코뚜레를 하고 말았습니다.
정말 코뚜레를 하지 않은 송아지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래도 농부는 마음을 놓지 못했습니다. 드디어 일이 터졌습니다. 어느 날부턴가 코뚜레를 하지 않은 송아지가 조금씩 꾀를 부리더니 아예 일을 하지 않는 겁니다. 농부가 다가오면 뒷발질을 하기도 합니다. 점점 망나니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그 송아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코뚜레를 뚫은 송아지가 궁금해서 농부에게 묻습니다. 어디 갔냐고. 농부는 하늘을 보며 말합니다. “도살장에 보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이나 훈계를 마치 코뚜레를 뚫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억압한다는 것입니다. 질질 끌고 다니는 기분이 든다는 겁니다. 훈계하지 않아도 교회 잘 다니고 정직하게 잘 살 테니 걱정 말라고 큰 소리 칩니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가요? 세상의 유혹이 얼마나 크고 진한데요. 어느 순간부터 눈이 세상을 향하고, 조금 후에는 발이 세상을 향해 가고, 결국 아예 세상으로 나가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는 것은 자명한 일.
우리 목사님은 행복한 노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갇혀 있는 것이 고맙고, 그 분만을 위해 일하는 것이 제일 행복하다고 하십니다. 스스로 코뚜레를 하신 것입니다. 그 분이 어리석은 걸까요?
코뚜레 하시죠.
예수중심편집실
나이는 숫자다!
“내 나이 96세인데 난 아직도 일하고 싶다.” 한국 철학계의 대부로 불리는 김형석 교수(연세대 명예교수)가 며칠 전 TV프로에서 고백한 내용인데 대단히 감동적이었습니다. 건강의 요건을 묻자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건강하다.”, “오래 살기를 바라는 것보다 오래 일하는 것을 바라봐야 한다.”, “젊다는 것은 생활공간이 넓다는 것이며, 늙었다는 것은 생활공간이 좁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나이의 숫자가 많고 적음이 아닌 나의 활동영역으로 젊음과 늙음을 가늠한다니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닳아 없어지는 것이 녹슬어 없어지는 것보다 낫다.” 소크라테스의 원숙한 철학은 70세 이후에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철학자 플라톤은 50세까지 학생이었다고 하니 배움과 나이는 전혀 무관한 듯합니다. 또한 르네상스의 거장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벽화’를 완성한 것은 90세 때였다고 하니 참으로 멋지지 않습니까! 이탈리아 작곡가 베르디는 ‘오셀로’를 80세에 작곡했고, 미국의 부호 밴더빌트는 70세 때 산업용 수송선 1백 척을 소유했는데 83세로 죽기까지 1만 척으로 늘렸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합니다. 또한 문호 괴테는 대작 ‘파우스트’를 60세에 시작하여 82세에 마쳤다고 하고, 우리 목사님께서도 앞으로 30년을 다시 뛰신다고 하니, 이 모든 것이 열정의 산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열정은 사람을 젊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능력을 나이라는 숫자에 가두어선 안 될 것입니다. 미국의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은 “열정이 능력이다. 열정이 없다면 성취도 없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움직여야 열정적으로 살 수 있는 것이지 자신을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기 때문이지요.
자~ 그러니 이제 여러분의 활동영역을 넓혀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