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있는 자, 발로 차지 말라 (요15:1~12)
제가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경쟁력이라고. 그래서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고 말입니다. 특히 복 있는 자를 만나는 것이 복 중의 복입니다. 그런데 복이 복인 줄 모르고 복 있는 자를 발로 차는 자들이 있습니다. 꿀을 따려는데 꿀통을 발로 차는 격입니다.
요셉은 늘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에 복 있는 자였습니다. 그가 노예로 팔려 보디발의 집에 들어갔을 때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았습니다.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창39:5). 그런데 보디발의 아내가 청년 요셉을 사모하여 유혹하다가 그것이 뜻대로 안 되니까 요셉에게 누명을 씌워 옥에 보냅니다. 복 있는 자를 발로 차버린 것입니다. 복은 복 있는 자를 따라다니는 법, 요셉이 옥에 갇히자 복은 전옥에 쏟아졌고(창39:21), 요셉을 총리대신으로 앉힌 바로에게 복이 넘쳐 애굽이 번영하고 강성케 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창47:13~26). 문득 우리 성도의 말이 생각납니다. 그들 부부는 첫 결혼에 실패한 후 재혼한 커플이었는데, 그 남편이 제게 하는 말인즉 “누군가 복을 찬 겁니다. 제 아내가 얼마나 복덩어리인데요. 복이 복인 줄 모르는 자는 어리석은 자지요. 제가 그 복덩어리를 주운 셈이고요.”라고 했습니다. 그들 부부는 모든 일에 승승장구하며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럼요, 자고로 인물이 인물을 알아보는 법이니까요.
야곱의 외삼촌 라반이 그런 자입니다. 라반도 야곱으로 인하여 자신이 부자가 된 것을 알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창30:27).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것을, 야곱의 마음이 이미 떠난 다음에 라반이 깨달은 진리입니다. 야곱의 임금을 착취하고, 또 라헬을 사랑하는 줄 알면서도 그의 언니 레아와 먼저 혼인케 해서 야곱의 마음을 아프게 했으니 야곱이 여기에 무슨 미련이 있겠습니까? 금의환향하고픈 마음뿐이지요. 사울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사무엘을 등지고, 다윗까지 원수 삼더니 그 결국이 정말 비참하게 되었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이야기도 해볼까요?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날 때 단 한 명의 혈육을 챙겼는데 그가 바로 조카 롯입니다. 가나안 땅과 애굽을 지나온 아브라함에게 금은과 육축이 많았고, 더불어 롯도 양과 소가 많아졌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과 롯의 가축을 지키는 목자들 사이에 좋은 목초지와 샘을 차지하려는 싸움이 잦아졌습니다. 아브라함은 안 되겠다 싶어서 롯을 불러 갈라설 것을 제안합니다. 그랬더니 롯이 기다렸다는 듯이 사면을 둘러보고는 물이 넉넉한 소돔과 고모라 땅을 택해 떠났습니다. 창세기 19장에는 아브라함을 떠난 롯의 결국이 기록되어 있는데 참으로 비참합니다. 하나님이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때 롯과 그의 가족들은 아브라함의 중보로 구출되었으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고, 그는 술에 취해 딸들과 동침하여 모압과 벤암미 두 아들을 낳아 모압과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자가 되고 맙니다.
(창19: 30~38). 롯이 큰 복을 받았던 것은 아브라함과 함께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오미에게 두 며느리가 있습니다. 룻과 오르바입니다. 나오미는 사사 시대에 흉년이 들자 남편과 함께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이주하나 거기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는 다시 고향땅으로 고뇌의 발걸음을 돌리게 됩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 전, 나오미는 젊어 과부가 된 두 며느리를 친정으로 돌려보내려고 했습니다. 나오미가 거듭 친정으로 돌아갈 것을 명하자 오르바는 눈물을 머금고 친정으로 떠납니다. 그런데 룻은 나오미를 붙들고 울며 말합니다.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룻1:16). 룻이 하도 강경하니까 하는 수 없이 나오미는 룻을 데리고 베들레헴으로 갑니다. 그 결과 룻은 계대의식을 따라 가장 가까운 친척 보아스와 결혼하게 되었고
(룻4:13), 다윗의 증조모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는 대복을 받습니다(마1:5). 나오미가 늙은 과부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였기에 그와 함께 한 룻이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나오미를 떠난 오르바의 이야기는 그 후 성경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럼요, 오르바처럼 복 있는 자를 떠날 것이 아니라 룻처럼 복 있는 자를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엘리사를 엘리야의 후계자로 세우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엘리사는 뒷짐 지고 그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엘리야 곁에 바짝 붙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엘리야는 길갈에서, 벧엘에서, 여리고에서, 요단에서 엘리사를 향하여 ‘가라’고 등을 떠밀었을 때도 그는 엘리야의 승천까지 지켜보며 그의 곁을 끝까지 사수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의 갑절의 능력을 받고 엘리야의 빈자리를 승계했습니다
(왕하2:1~14).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욜2:18~ 27). 그렇다면 하나님의 곁을 떠나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욥이었습니다. 욥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난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의 고난이 죄의 대가가 아니었기에 더욱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그의 아내조차도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욥은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2:10)라고 아내에게 응수합니다. 그런 욥이 이전보다 갑절의 축복을 받은 건 너무도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자들이 떠나가는 것을 보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요6:67)고 묻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요6:68). 예수님을 붙든 베드로는 사도로서의 삶을 살다 영생의 길로 갔지만, 예수님을 떠난 가룟 유다는 결국 자살로 그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5장에는 복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떠난 삶이 어떠한지잘 말씀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아버지 곁을 떠났던 둘째 아들의 비유가 하나님을 떠난 자의 비참함을 충분히 설명하고 있습니다(눅15:11~32).
저는 농사꾼의 자녀입니다. 제가 어릴 때 아버지께서 농번기가 되면 볍씨를 물에 담가놓으셨습니다. 그리고는 하루쯤 지나서 물에 뜬 볍씨는 버리고 가라앉은 알곡만 논에 심으셨습니다. 쭉정이를 심으면 논만 버리기 때문입니다. 삼손은 들릴라를 만나 인생의 밭에 쭉정이를 심었고, 이세벨을 만난 아합 역시 쭉정이로 인해 인생 농사를 망친 사람입니다. 필리핀이 미국을 내치고, 아르헨티나가 영국을 내치고 국가적인 농사를 망쳐 삼류국가로 전락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국가나 기업이나 교회나 가정에서 복 있는 자, 복 있는 기업과 복 있는 땅을 보는 혜안이 열려야 합니다. 복 있는 자와 동행하면 복을 얻습니다. 할렐루야!
나무에서 떨어진 가지는
말라 죽을 수밖에 없다
복이 복인 줄 알아야
복이 내 것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