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파수꾼을 세워라(겔8:1~18)
왜 범죄가 어두운 뒷골목에서, 밤에 자주 일어날까요? 보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이 밖에 나갈 때는 시쳇말로 때 빼고 광내고 나가면서 집에서는 엉망으로 하고 있을까요? 역시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런 겁니다.
1992년의 일입니다. 올림픽 메인스타디움 전도 집회를 앞두고 청계산에 오르면서 작정기도를 할 때입니다. 당시 전도단 본부에 머물고 있을 때라 청계산에서 기도를 마치고 내려와 전도단 맞은 편 목욕탕에 씻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목욕탕 화장실에 들어가 보니 거기가 너무 더러웠습니다. 그 때 성령께서 저에게 “보이지 않는 곳이 깨끗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화장실을 말끔히 치우고 나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왜 화장실이 그리 더러웠을까요? 아무도 안 보니까 맘대로 썼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깨끗하지 않은 곳이 또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마음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나쁜 생각도 하고, 죄도 짓습니다. 그러나 정말 아무도 안 볼까요? No, 보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외모는 안 보시지만 마음, 곧 중심은 보십니다. 그것도 자세히, 늘 보십니다. 침 삼킬 틈도 놓치지 않고 보십니다
(욥7:19).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그 증거입니다.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질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23:27).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경건했습니다. 거룩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속을 보시고, 탐욕과 불의와 음란이 가득함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사람만을 의식하는 그들의 허영에 차고 위선적인 신앙에 독설이라 할 만큼 책망을 하신 것입니다.
또 볼까요?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가 베드로 앞에서 거짓말을 할 때 베드로는 말합니다.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행5:3). 성령은 그들의 마음을 속속히 보셨던 것입니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 분을 위하여 요한복음 1장에 예수님과 나다니엘이 만나는 장면을 소개합니다. 나다니엘이 저 멀리서 예수님께 다가가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1:47). 분명 예수님과 나다니엘은 첫 대면이었고, 아직 대화 한 번 나눠보지 않은 상태였지만 예수님은 그를 알고 계셨고, 그의 속까지 완전하게 읽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저들의 마음만 보신 걸까요? 오늘 본문입니다. 여호와긴 왕이 포로로 바벨론에 끌려온 때로부터 6년 즈음에 에스겔이 하나님의 신에 이끌려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행해지는 유다 백성들의 가증한 모습을 환상으로 보게 됩니다. 환상을 통해 본 유다 백성은 한 마디로 가관이었습니다. 제사장은 물론 장로들과 백성들까지 사람이 만든 신상을 숭배하고 있었고, 나무나 돌 등과 같은 자연물로부터 곤충과 같은 피조물까지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그것 뿐 아니라 풍년을 가져다준다는 바알과 담무스를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분명 성전에 거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온데간데없고 우상을 숭배하는 가증한 자들로 가득했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뭐라고 하셨는지 압니까?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아껴 보지 아니하고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겔8:18).
이제 우리를 봅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우상을 섬기듯 우리도 교회를 다니고는 있지만, 우리 속에 우상이 득실거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바리새인처럼 겉은 그럴싸한 크리스천이지만 속은 세상의 것들이 우상으로 자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나니아처럼 눈에 보이는 것들이 우상이 되어 ‘눈 가리고 아웅’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도 모르게 탐욕과 시기, 불의와 음란이 일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바리새인을 질타하신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분노하신 하나님이 당신을 향하여서도 동일하게 질타하시고 분노하신다는 것입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필경은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렘17:9~11).
그러니 이제라도 우리의 속을 청소해야 합니다. 목사가 집에 심방만 간다고 해도 심지어 도배까지 하면서 난리를 치던데, 하물며 하나님이 우리를 보시고 성령으로 오시는데 속을 대청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숫군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141:3). 속의 것이 입으로 나오니까 결국 마음의 파수꾼을 세우라는 말씀입니다. 마음의 파수꾼을 세워 세상의 것들, 죄의 것들,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 청소 며칠만 안 해보세요. 집안이 난리가 납니다. 정원을 1년만 방치해보세요. 쑥대밭이 됩니다. 우리의 마음을 청소하지 않으면 죄악의 소굴이 됩니다. 그러므로 매일 회개함으로 내 속을 청결케 해야 합니다. 그런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마5:8).
여러분, 열심을 내는데 열매가 없습니까? 성과가 없습니까? 뭐가 잘 안 됩니까? 문제가 있으면 원인도 있을 터, 열왕기하 2장을 봅시다. “그 성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우리 주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찌니라 하셨느니라”(왕하2:19~21). 엘리야의 뒤를 이어 선지자가 된 엘리사에게 여리고의 물 문제가 닥쳤습니다. 물이 좋지 않아 소산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물의 근원지로 가서 물에 소금을 뿌렸더니 물이 좋아져서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당신 삶에 열매가 없을 때도 근원지를 찾아나서야 합니다. 그 근원지는 마음입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거기에 소금을 쳐야 합니다. 소금이란 부패를 방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인생을 부패하게 하는 것들은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오직 회개하고 기도와 말씀으로 마음이 부패되지 않게 해야 열매가 맺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화통일이 되게 해달라고 지속적으로 기도성회를 열고 있습니다. 이 것 또한 결실을 맺으려면 우리 하나하나가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속이 더러우면 하나님을 아무리 크게 외쳐도 대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 우리 마음을 대청소합시다. 예수 보혈의 피로 깨끗함을 얻고 기도와 말씀으로 파수꾼을 세워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자들이 됩시다. 할렐루야!
마음의 지킴이는
오직 내 자신이다
기도와 말씀으로
마음의 파수꾼을 세워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