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798호 목차 › 성경 에세이

영적 과부와 고아를 돌보아라!

798호 · 2015-06-12

여보게!

성경에는 과부와 고아를 돌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많이 기록되어 있네. 그 중 몇 말씀을 옮겨볼까?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슥7:10),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신24:21),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1:27),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14:29)….

왜 이렇게 하나님이 고아와 과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표명하셨을까? 그 이유가 시편 68편에 기록되어 있네.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시68:5).

그런데 말일세, 나는 육적인 과부와 고아를 돌보는 것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이겠지만, 영적 과부와 영적 고아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을 돌보는 일도 이에 못지않게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하네. 과부란 남편이 먼저 사망하여 혼자인 경우이고, 고아란 어떤 이유로든 부모가 없는 것이라면, 영적 과부란 예수 신랑을 잃어버린 자이고, 영적 고아란 하나님 아버지를 잃어버린 자이기 때문이지. 어찌 보면 영적 과부와 영적 고아가 더욱 불쌍한 자라 할 수 있다네. 안 그런가?

자네도 알다시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신랑이시네. 그런데 그 신랑을 잃어버리고 사는 자들이 많네. 그 신랑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그 신랑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홀로 이 험한 세상을 사는 자들이 너무 많네. 어디 그 뿐인가?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의 아버지인데, 그 아버지를 잃고 고아로 사는 자들이 그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이 세상길이 얼마나 힘들까? 6·25 때 어린 것들이 졸지에 부모를 잃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우리는 잘 알지 않는가.

내가 하루가 멀다 하고 세계를 다니는 것은 어찌 보면 영적 과부에게 신랑을, 영적 고아에게 아버지를 만나게 해주려는 것이라네. 사도 바울의 말이 생각나는 군.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11:2).

이보다 좋은 일은 없네. 세상 중매야 잘못 서면 뺨이 석 대라지만, 이 영적 중매는 하나님께도 칭찬을 듣고 당사자에게도 감사받을 일이라네.

여보게!

하나님의 은혜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있어서 ‘경건’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1:27)는 말씀대로 사는 것이라네.

우리 주님의 긍휼이 그들에게 있음을 알고 육적, 영적 과부와 고아를 돌보는 자가 되세나.

朋友

798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Text 주일설교
지혜의 말씀
귀를 기울이세요
Cartoon
붕우칼럼
세상을 보는 창
내가 매일 기쁘게
객원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