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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4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교만과 겸손의 차이를 알라 (벧전5:1~6)

794호 · 2015-05-15

교만(驕慢)은 스스로 잘난 체하며 겸손하거나 온유함이 없이 건방지고 방자함을 이르는 말이고, 겸손(謙遜)은 자신을 낮추며 상대방을 인정하고 높이는 욕심 없는 마음 상태를 일컫는 말로 성경 전체를 통틀어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요구되는 신앙 덕목입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들에게 경고하신 말씀과 겸손한 자가 받을 복에 대해 성경에는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는 잠언 22장 4절의 말씀입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저는 이번 파나마에서 참으로 겸손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바로 파나마의 후안 까를로스 바렐라 로드리게스 대통령입니다. 대통령궁에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외모에서부터 겸손이 배어있었습니다. 그것이 험한 정치판에서 승리하여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르게 한 주요 원인이라 할 것입니다. 그가 부통령 시절, 당시 대통령에게 충언과 조언을 일삼자 이를 간섭으로 여긴 대통령이 부통령직을 박탈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에 불평하지 않고 대통령 덕분에 부통령까지 할 수 있었다고 감사했습니다. 이에 뜻 있는 자들이 그를 추대하여 당을 설립하였고, 야당후보로 대통령에 출마한 그는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로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고 합니다. 학식을 겸비한 그였지만, 저에게 많은 조언을 부탁했고,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기도를 받을 정도로 겸손한 자였습니다. 재물과 영광과 생명을 누릴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본보기로 느브갓네살 왕을 소개할까 합니다. 다니엘서 4장은 느부갓네살 왕이 치세의 확장으로 인해 자기의 업적과 권세를 자랑하고 스스로 교만하여질 때, 하나님의 심판의 음성을 듣게 되고,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진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한 꿈을 꾸었는데, 한 나무가 자라 하늘에 닿았고, 그 잎사귀가 아름답고 그 열매가 많아서 거기에 깃든 동식물이 많았는데, 한 순찰자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 나무를 그루터기만 남겨두고 베어버렸고, 그는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느부갓네살에게 임할 일로, 왕이 사람에게 쫓겨나서 짐승처럼 일곱 해를 지내게 된다고 다니엘이 해몽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은 왕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했으나 왕의 교만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단4:30). 하나님은 교만한 느부갓네살에게 그 꿈이 응하게 하셔서 그는 광야에서 소처럼 풀을 뜯고 몸이 이슬에 젖으며, 머리털이 독수리 털 같고 손톱이 새 발톱처럼 되어 짐승처럼 칠년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기한이 차매 그루터기를 남겨주신 하나님이 다시 그에게 총명을 주사 그는 예전의 영광을 찾게 됩니다. 이제 그에게서 오만방자했던 지난날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단4:37).

세 번째 말씀은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18:12)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는 사울과 다윗이 등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울은 처음에는 겸손한 자였으나(삼상9:21) 점차 엉덩이에 뿔이 나 스스로 교만해졌습니다. 사무엘상 10장에 보면 제사장이 늦었다는 이유로 자기가 제사를 드리는 죄를 짓고 맙니다. 교만이 불순종으로 표출된 것입니다. 결국 그는 왕권을 잃게 되고 비참한 종말을 고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많은 실수와 죄를 지었음에도 겸손한 마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시편 131편은 다윗의 노래로 겸손한 자가 누리는 평온함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시131:1~2). 하나님은 교만한 사울의 왕권을 겸손한 다윗에게 넘기셨고, 다윗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게 하셨던 것입니다.

네 번째 말씀으로는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잠29:23)입니다. 이는 누가복음 14장 11절 말씀,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는 말씀과 일맥상통합니다. 저와 호형호제하는 분이 있습니다. 세계적인 인물이지요. 한 번은 그가 미국 모 정당의 파티에 초대를 받은 일이 있었는데, 제가 조언해준 대로 그는 제일 말석에 앉았답니다. 그런데 그 파티의 주최자며 정당의 총재가 나타나더니 이분을 발견하고는 직접 내려와 ‘왜 여기 앉아계시냐?’며 손을 잡고 자기 바로 옆 자리로 데려가 앉혔답니다. 거기에 미리 자리 잡았던 자들은 다 밀려난 셈이지요. 다들 누구기에 그러나 하는 표정들이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겸손하기를 원하십니다. 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돌리셨는지 압니까?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신8:12~14). 너희가 누리는 풍족함과 편안함이 너희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불뱀과 전갈이 있는 광야에서 건지시고, 건조한 땅을 무사히 지나게 하셨으며, 굳은 반석에서 물을 내게 하셨고, 광야에서 만나를 내리게 하신 하나님으로 인하였음을 기억하여 절대 교만하지 말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몰아내신 것입니다. ‘너희가 그것을 잊지 않는다면 마침내 큰 복,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겸손의 모범을 보이신 가장 대표적인 분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사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죄인들을 사랑하고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빌2:5~8).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그래서 손수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입니다(요13:3~5).

교만은 인간의 본성입니다. 높아지고 싶고, 잘난 척하고 싶고, 남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 우리의 속에 늘 잠재하고 있습니다. 이를 이기는 방법은 겸손의 모범을 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안에 모시는 길입니다. 곧 믿음으로만 교만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졌던 바울, 그가 교만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난 후 만물의 찌기 취급을 받아도 감사하는 겸손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말입니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5).

물은 낮은 곳에 고이듯,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언제나 낮은 곳에 임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의 기도에 응답하시고(왕하22:19), 구원하시며(대하12:6~7), 배부르게 하시고

(시22:26), 돌보아주시며(시138:6), 영예롭게 하시고(잠 29:23), 존귀하게 하십니다(잠15:33).

여러분은 혹 교만하지는 않습니까? 어떤 사람이 나를 만나고 기분 나빠하거나 재수 없어하면 내가 교만한 겁니다. 그러나 나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본다면 당신은 겸손한 하나님의 자녀가 분명합니다.

겸손이란 부족함이 없는 자가 낮아져서 섬기는 용기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낮아지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겸손이 아니겠습니까? 할렐루야!

맛없는 스프가

뜨겁기만 하다

빈 그릇이야말로

진정 큰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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