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의 속도
지난 학기, 국가에서 학교에 위탁해 운영하는 장학금 제도에 지원했었다. 자격 요건을 맞추기 위해서 이런 저런 서류들을 작성하여 제출했었지만, 기도의 부족인지, 아니면 나보다 더 급한 지원자가 있었던 것인지 장학금 혜택을 받지 못했다. 서류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명백하게 억울한 사연이 있었지만, 한마디 내색도 하지 않은 채, 하나님께 신원해주실 것을 기도드렸었다. 그리고 지난 학기동안 두 번의 고배를 마시지 않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노력의 결과는 누구보다 열심히 사용했던 연구실의 퇴실, 즉 자격 박탈로 이어졌다. 내 집보다 더 깨끗하게 사용하고, 내 학업 시간표는 ‘월화수목금금금’이라 여기며 꾸준히 출석을 했음에도 학기수가 ‘어리다’는 이유로 연구실 연장이 되지 않았다.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결국 나는 심하게 앓았다. 솔직히 아픈 중에는
‘더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이라며 위로해주는 가족들의 말이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풍랑 속의 배를 탄 것처럼 어질어질했다. 어지러운 가운데 참석한 주일예배에서 목사님은 성경 속에서 답을 찾으라고 하셨다. 내가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아주 깊은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 문득 다니엘의 기도가 떠올랐다. 하나님의 응답을 가로 막았던 ‘바사국군’과 ‘미가엘’의 도우심이 떠올랐다. 다니엘의 기도는 바로 상달되었지만, 그에 대한 응답이 돌아오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다니엘 10장). 그리고 어린 시절 들었던 설교 한 토막이 떠올랐다. 기도의 항아리가 가득 차서 찰랑거려야 쉽게 넘치지 바닥부터 채워서 넘치게 하려면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는 목사님의 말씀이 떠오른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내 기도의 항아리가 얼마만큼 찼는지 아마득했다. 무조건 순종하며 감사해야 할 상황에서 그러지 못한 나를 반성했다. “그래! 내가 언제부터 연구실에서 공부를 했었나? 공부할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을 주시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라고 생각하며 툭 털고 일어났다.
연구실에서 퇴실한 후 첫 월요일이었다. 시험기간이 겹쳐 대학원 열람실은 만실이고, 가는 곳마다 학생들이 넘쳐나서 가방을 둘 곳도 없다. 쾌적한 환경과 나만의 책상이 있던 연구실을 기억에서 애써 지우며 자리를 잡았다. 내가 앉는 자리가 명당이고, 그곳이 제일 좋은 연구실이라며 나를 위로하였다. 그런데 웬걸? 하나님은 정말로 더 좋은 것으로 나에게 응답해주셨다.
칠전팔기의 마음으로 재 지원했던 장학생 선발에 합격한 것이다. 어찌나 감사하고 감격적인지…. 시쳇말로 ‘웃픈’(웃기고 슬픈) 눈물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작고 연악한 제 믿음을 지킬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고, 항상 제 기도를 들어주시고, 저를 감찰하신다는 믿음이 더 확고해질 수 있도록 응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다시, 하나님 보호하심 아래에서 온 맘과 뜻을 다해 학업에 정진해보려고 한다. 할렐루야!!
전훈지
ppjee@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