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아는 자, 멸망하지 않는다
여보게!
요셉은 자네도 알다시피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을 시기한 형들에 의해 애굽의 노예로 팔렸다네. 우여곡절 끝에 바로의 친위대장인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가게 되었지. 그런데 요셉이 들어온 후로 보디발의 집이 만사형통한 거야. 보디발은 요셉이 보통 노예가 아니라는 것을 감지하고 모든 전권을 요셉에게 넘겨줬다네.
그런데 그 아내가 문제였네. 평소 외모가 출중하고 어디를 보나 노예로 살 사람이 아닌 듯한 인격을 가진 요셉에게 마음이 있던 보디발의 아내가 드디어 사고를 쳤네. 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요셉을 유혹한 거야. 그러나 어디 요셉이 넘어갈 사람인가.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득죄할 수 없노라’며 단호히 이를 뿌리쳤지. 그런데 보디발의 아내가 뿌리치고 나가는 요셉의 옷을 잡는 바람에 그만 옷이 벗겨졌지 뭔가. 그런데 이게 화근이었네. 보디발의 아내가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거짓말을 한 거야. 요셉이 자기를 겁탈하려 했다고.
내 생각에 보디발은 요셉이 그런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았을 걸세. 그러나 어쩌겠는가. 그래서 시위대 옥에 가두었다네. 여기서 부터가 내가 오늘 말하려는 것일세. 성경 어디에도 요셉이 변명한 기록이 없다는 거지. 왜 그랬을까? 그가 옥에 갇히면서도 입을 다문 건 보디발의 은혜를 알았기 때문이었던 거지. 비록 노예의 신분이었지만 보디발 때문에 그간 편히 살았던 것을 요셉은 감사했네. 그것을 보답하는 길은 입을 다물어 보디발의 가정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한 거지.
여보게!
감사의 표본은 다윗이라네. 그는 자기를 왕으로 세워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했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서도 감사를 잊지 않았지. 어디 그 뿐인가? 그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감사를 알았던 자네. 다윗이 특별한 사람임을 알 수 있는 것은 자기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사울에게까지 감사했다는 거야. 성경에 구체적인 대목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그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몇 번의 기회에도 불구하고 그를 살려준 것이 증거라네. 물론 사울이 하나님의 기름 부은 자여서 그러기도 했지만, 한 편으론 사울에게 받은 은혜 때문이기도 했지. 다윗이 유명해진 것은 골리앗을 물리쳤기 때문인데, 그 기회를 준 것이 사울이었거든. 또한 사울이 그의 딸을 아내로 줬지 않은가. 나중 자신을 무조건 죽이려는 사울 앞에서 감사는 무색하게 됐지만, 다윗은 감사의 다른 이름인 의리로 관계를 지켜냈지.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여도 의리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잠10:2).
현대 망국병이 무엇인지 아는가? 감사를 모른다는 거야. 감사는커녕 열 번 잘해주다 하나 섭섭하면 배신하고 원수가 되어버리는 세상이니 답답한 일이 아니겠나. 개도 주인을 안 무는데, 그 집에서 밥 먹고 살던 사람이 주인을 무는 일이 사회일각에서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하긴 저를 낳아준 부모도 죽이는 세상이니….
진정한 감사란 이것이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부디 자네는 감사하는 사람, 은혜를 아는 사람이 되게. 그런 자는 결단코 멸망하지 않거든.
朋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