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뒤에 축복이 따라온다
저는 급성 맹장, 폐결핵, 뇌출혈, 뇌기형, 편마비 등 세 번의 죽음의 문턱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또한 총회장 목사님의 보살핌으로 새 삶을 살고 있습니다.
87년 제 아내가 옆집에 사는 그 당시 한국예루살렘교회 집사님으로부터 전도를 받아 인천 숭의동에 있던 한국예루살렘교회 철야예배를 참석한 이후로 성령을 받고 보니 예수님을 모르고 사는 제가 불쌍해서 그 때부터 남편인 저의 구원을 놓고 금식하며 기도를 했답니다.
저는 그때 덤프트럭 운전기사였는데 쉬는 날이 없었습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와서 공사를 못하게 돼야 쉴 수 있는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을 믿지도 않았지만 신앙생활은 아예 생각도 못했죠. 그러다가 87년 2월, 그해 설 연휴가 끝나고 일을 갔는데 배가 너무 아파서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동료가 대신 사장님께 전화로 보고하니 일단 회사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저를 본 사장님은 대뜸 “병원으로 갈래? 집으로 갈래?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하기에 집으로 간다고 하니 집까지 차를 태워줬습니다. 제 안색을 본 아내는 당신 믿음이라면서 “병원에 갈래? 내일 철야에 목사님 기도를 받을래?” 했습니다. 또 선택을 하라는 겁니다. 전 그때 믿음이 전혀 없던 때라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의사가 급성맹장염 같다고 했습니다. 진단이 마음에 들지 않아 불편한 심정으로 내일 큰 병원에 가겠다고 하니까 혹시 많이 아프면 빨리 병원으로 오라며 늦으면 맹장이 터져 죽는다고 겁을 주었습니다.
집으로 와서 쉬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내가 서울 구역식구들에게 부탁하기를 ‘감이 다 익어 떨어질 때가 됐다’며 성진 아빠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기도 부탁을 하고 간절히 기도를 했답니다.
그런데 얼마나 배가 아픈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아내의 손에 이끌려 철야예배에 참석하였고, 총회장 목사님 안수를 받아 급성맹장염을 기적처럼 고침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저를 구원하시려고 급성맹장염을 통하여 믿음을 주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주일을 지키기로 마음먹고 주일을 지킬 수 있는 직장을 찾고 기도하던 중 1톤 트럭을 사서 채소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처음해보는 장사였지만 믿음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기쁨으로 열심히 “배추요, 무요!”를 외치며 장사를 하고, 물건을 다 못 팔면 우리를 전도한 집사님(현 인천교회 권사)과 “하나님께서 책임지지 않겠어?” 하면서 남은 채소를 나눠 먹고 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께서 두 번째 문제를 주셨습니다. 갑자기 몸무게가 줄고, 식욕이 줄고, 급기야 목에서 각혈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깜짝 놀라 병원에 가서 검사한 결과 결핵이라며 보건소로 가라고 알려주는 겁니다. 보건소에서 정밀검사를 해보니 결핵 3기 후반, 4기 초반이라고 해서 일반인과 격리조치를 해야 했습니다. 집에 가서 수건, 수저, 세면도구 등을 따로 쓰려고 준비했더니 아내가 보고는 ‘하나님께서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다’고 하셨다며 구분해놓은 물건들을 다 섞어버렸습니다.
그 당시 기도처를 처음 세울 때였는데 피를 토하면서도 기도처 수리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밤마다 꿈에 죽은 처남하고 아버지가 나타나 처남은 괴롭히고 아버지는 아파트를 지어서 분양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핵은 접촉하는 사람이 옮을 수 있는 전염병으로 처남이 결핵으로 죽었는데 밤마다 꿈에 나타나 잠을 못 자게 하는 겁니다. 처남이 결핵으로 죽은 것을 잘 아는 큰 처형(현 서울 안내권사)은 당시 예수님을 믿지 않던 때라 ‘결핵을 병원 가서 약으로 고쳐야지 무슨 야순지 예순지가 고치느냐’며 욕을 하고 심하게 핍박을 했지만, 아내는 “언니 두고 봐. 하나님이 고치실 거야.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야.” 하면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 당시 담당 전도사이신 인천 이재순 전도사님이 오셔서 예배드리고 나서 “이 집에 총각 귀신과 할아버지 귀신이 나갔다.”고 하시는데 요즘 말로 ‘멘붕!’이었습니다. 얘기도 안했는데 족집게처럼 알아맞히는 겁니다.
보건소에는 관리대상자로 등록돼있어서 약을 정기적으로 타 먹곤 했는데, 약의 양이 워낙 많은지라 ‘약을 먹고 낳는 게 아니라 약에 취해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교회 가서 목사님 설교 들으면 ‘약을 버려야 살겠구나’, 집에 와서 좀 지나면 ‘약을 먹어야 살겠구나’ 갈피를 못 잡고 두 마음이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목사님께 기도 받고는 ‘약을 버려야지’ 결단하고 행동으로 옮긴 순간 폐결핵을 고침 받았습니다.
“전에 처남은 결핵으로 죽었는데 신 서방은 저렇게 멀쩡히 낳는 것을 보니 하나님이 정말 계신가 보다.” 하면서 전에 핍박하던 큰 처형, 작은 처형, 작은 처남, 장인, 처이모 등 온 일가친지가 구원을 받고, 현재는 장로, 권사, 안수집사로 우리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처음 신앙생활 할 때, 저는 신앙생활을 감사함으로 열심히 해야 하는데, 날마다 불평을 일삼고 십일조도 제대로 드리지 않는 등 나태한 생활을 하자 아내는 저 사람이 ‘하나님께 두드려 맞아야 정신을 차리겠다’ 생각하고 속으로 기도했답니다.
의인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크다고 했는데, 그 당시 아내의 기도가 상달 되었나 봅니다. 급기야 99년 7월에 뇌출혈로 쓰러져 세 번째 하나님의 관리를 받게 되었습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여 정밀검사를 했더니 머리 수술을 해야 하는데 수술 후에도 살 확률은 20% 정도로 작고, 산다고 해도 평생 휠체어를 타고 생활해야 한다는 주치의의 말을 듣고 절망 가운데 한 가닥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머리 뚜껑을 여는 대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수술 후 입원실에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반신이 마비되어 반쪽이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때 제 생각에 죽는 것은 천국 가니 두렵지 않은데, 휠체어 생활을 할 경우 앞집에 살던 다른 교회 교인이 우리 교회를 이단교회라고 핍박했었는데, 그 사람이 비웃을 것을 생각하니 억울하단 생각이 들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하나님 내가 휠체어 타고 다니면 하나님 꼴좋으시겠습니다. 내가 이대로 못 일어나면 하나님 망신 목사님 망신이니 걸어서 나가게 해 달라.”고 눈물콧물 범벅되도록 아내와 병원 뒤 나무 밑에서 휠체어에 앉아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기도원 집회를 마치신 총회장 목사님께서 찾아오셔서 기도해주시고 귀신을 쫓아주고 가셨는데, 옆에 병문안 왔던 누님이 “너 걱정 말아라. 너희 목사님이 기도하는 거 들으니 금방 벌떡 일어나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밤 꿈에 총회장 목사님이 오셔서 머리 붕대를 살살 푸시고 환부에 입을 대고 쭉 빨아 뱉으시는 것을 일곱 번 하시고는 “나 갈게.” 하면서 가셨습니다.
의사는 수술해도 살 확률은 20%, 살아도 평생 휠체어 생활을 할 것이라고 했는데, 입원한지 한 달 만에 걸어서 퇴원하고 그 후로는 정상인들처럼 건강주시고 물질 축복과 영적인 축복을 많이 주셔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트럭 몰던 신 기사를 신 장로로 만들어 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고,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목사님 바라보며 엄지손가락 하는 큰일은 못하지만 새끼손가락 하는 작은 일이라도 열심히 충성하며 살겠습니다.
예수중심교회 성도 여러분! ‘문제가 있으면 해답이 있고 고난 후에는 축복이 온다’는 것을 알고 모두가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서울예수중심교회 신영근 장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