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제가 목사님을 모셨습니다
88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저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성수장로교회에 나갔습니다. 그해는 고춧가루 파동으로 양념값이 비쌀 때입니다. 어머니는 교회 식사 당번이어서 반찬을 준비하셨나 봅니다. 그런데 아마 반찬값 때문에 목사님은 어머니를 오해해서 어머니와 형에게 언사가 좋지 않았나 봅니다. 그 일로 어머니가 시험이 들었습니다. 그 때가 정월 초인데 마침 조장을 만나 이런 교회가 있으니 한 번 가보지 않겠느냐 하시며 인천예수중심교회를 소개해서 어머니는 금요집회부터 참석하기 시작했고, 3주째는 저한테 “그 목사님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목사님이다. 목사님 손에서 예수의 피가 나와.” 하시면서 저에게 가자고 하시는 겁니다.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믿음도 없고 천국과 지옥도 몰랐습니다. 그냥 어머니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마지못해 따라갔습니다. 목사님 설교제목은 ‘모든 것이 나 때문이다’ 였습니다. 공감이 가고 이해도 되고 저에게 하시는 말씀 같아서 은혜가 되었습니다.
저도 3주째 계속 은혜를 받아 눈물 흘리고, 큰 소리로 기도하고, 찬양하고, 그리고 주일 낮 예배에 갔습니다. 통성기도 시간에 내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지며. 내 혀는 방언을 말하며, 내 귀는 세미하고 다정하고 인자하고 자비하신 성령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손들고 나오라, 손들고 나오라.” 내 입은 나도 모르게 사랑의 종이 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서원하는 것입니다.
예배가 끝나고 바로 청년부실로 가서 봉사할 것 있냐고 물으니 청년들 예배 후에 차량을 운행해달라고 해서 열심히 차량운행을 했습니다. 그 때 노강식 전도사님과 김종오 전도사님이 청년부 담당 전도사였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김종오 전도사님이 사모님을 뵈러 가자는 것입니다. 영문도 모르고 따라갔는데 사모님이 저에게 목사님 차를 운전해보지 않겠느냐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한 번도 윗사람을 모셔보지 못하고, 서울지리도 잘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도 잘 모르는 어린 나귀 같은 저를 쓰셨습니다. 목사님의 이해와 배려 속에 목사님의 차를 운전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차에 타시면 모자란 잠을 청하시든지 방언기도를 쉬지 않고 하셨습니다. 집회에 나갔을 때에 저는 한숨자고 일어났는데 새벽시간인데도 방언소리가 나는 거예요. 그래서 목사님 방을 열어보았더니 누워서 방언기도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이면 어김없이 금식을 하셨습니다. 또 금식을 밥 먹듯 하셨습니다. 단에 오르실 때면 복대를 두르고, 링거주사를 맞고 오르셨습니다. 몸 상태는 금식하면 안 되는데, 그 때 목사님은 3년만 하나님 뜻대로 목회하시다가 하나님께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9:29)고 하셨는데, 어떤 번역에는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고 나옵니다. 우리 총회장 목사님의 능력의 근원은 금식과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오직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목사님! 목사님은 사람들과 대화하실 때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을 알아보시는 것도 그렇고 올림픽공원에 들어가실 때에도 그렇습니다. 또 집회 때마다 귀신 쫓고 각색 병자를 고치시는 것도 그렇습니다.
제가 목포교회 전도사 시절 폐결핵을 앓고 있었는데, 하루는 총회장 목사님께 전화가 왔다는 겁니다. 국내도 아니고 미국 시카고 집회 가셨는데, 누가 말씀도 안 드렸는데 나의 상태를 알고 귀신 쫓고 기도해주시는 것입니다. ‘아! 이 까마득한 전도사를 챙기시는 우리 총회장 목사님!’, 이것은 총회장 목사님 속에 계신 예수 이름으로 오신 성령,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감사하고 고맙고 어찌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총회장 목사님의 모든 사역이 성령의 인도함이라고 저는 말할 수 있습니다.
양을 누구보다 사랑하신 목사님, 성도들이 잘 됐다 하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감사로 잠을 못 이루시며 밤새워 기도하시는 목사님. 성도들이 어려움 당했다 하면 하나님께 눈물로 통곡하시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목사님. 이는 목사님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그러지 않겠습니까?
저는 목사님 때문에 예수를 영접하고, 또 귀한 직분을 받았고, 그리고 우리 가족도 목사님 덕분에 복을 받았습니다. 또 가정을 이룰 수 있게 된 것도 목사님 덕분입니다. (저 같은 것을 우리 집사람이 따라왔겠습니까? 목사님 곁에 있었다니까 따라오지 않았겠습니까?) 목사님,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저는 목사님을 통해 받은 복이 너무 많으니까 이제는 자꾸 주시려고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글재주가 없어서 이 글을 쓰려하지 않았으나 이상 중에 목사님이 수박냄새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화물차를 보았더니 짐 밑에 수박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쓰지 않으려고 했더니 성령께서 나에게 등을 돌려 누워서 통곡하시는 것입니다. 그래도 쓰지 않으려고 했더니 내 여동생이 꿈에 나에게 ‘개새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쓰게 된 것입니다.
총회장 목사님!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총회장 목사님의 은혜 어찌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 밤새 내내 쓰고 써도 다 기록하지 못할 것입니다.
상주예수중심교회 박일태 목사
사랑하는 우리 목사님!
1968년쯤 인 걸로 기억됩니다. 제가 초등학생이었던 그때에 할머니는 천을 덧대어 만든 속옷 파자마 주머니 속에서 밤톨만한 눈깔사탕을 꺼내주면서 “아가, 꼭 예배당 가야한다”며 어린 저희들을 전도하셨습니다. 할머니께서 주시던 사탕이 어찌 그리 맛있고 달콤하던지 “예. 할머니” 하고선 눈깔사탕을 받아먹곤 했지요. 그 당시에 독실한 불교신자인 어머니는 예수 믿는 할머니를 무척이나 싫어 하셨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주님을 영접하시고 신실한 일꾼이 되신 것은 할머니께서 시골의 작은 예배당 새벽기도 종을 치시면서 후손들이 구원받기를 간절히 기도하다 천국가신 지 10년쯤 후였습니다. 그렇게 저는 3대째 주님을 믿게 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된 것이지요.
한남동의 작은 교회를 섬기셨던 어머니께서 1994년부터 친정집에 갈 때마다 늘 기다렸다는 듯이 비디오테이프를 꺼내 비디오에 넣은 후 “얘, 이런 목사님도 계시더라. 이것 좀 봐라.” 하시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PR 하신 것은 이초석 목사님을 통해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셨기 때문입니다.
이초석 목사님과 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무척이나 날카로운 이미지에 아이보리 양복과 백구두는 매치가 되지 않아 왠지 어색하게만 느껴졌고 외적인 모습은 제가 흠모하는 목자상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목사님께도 느껴 보지 못한 하나님 말씀 외에 그 어느 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함과 주님 외엔 그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담대함의 거침없는 설교패턴과 강력함에 흡입되어 빨려 들어갔고, 불을 뿜어내는 듯 뜨거움의 열정이 화면을 통해서 그대로 내 영혼에 부어지는 듯했습니다. ‘아~ 저분을 좀 보고 싶다.’로 시작하게 된 저의 신앙생활은 하루하루가 새로운 행복이었습니다. 늘 저를 짓누르고 있는 우울한 기질과 모든 질병을 목사님의 손길을 통해 고침 받았고, ‘저런 분이라면 따라가도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 즈음에 “너는 내 것이다”(사43:1)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신학교에 입학했고, 지금까지 잘 따라올 수 있었던 것은 강단 위에서 선포하신 하나님 말씀과 강단 아래서 목사님의 일관된 삶의 일치성 때문이었습니다. 초지일관 흔들림 없는 주님을 향한 충성심과 영혼을 위해 쏟아 붓는 진한 사랑은 의심이 많고 지나치게 소심한 저를 감동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목사님의 삶을 지켜보면서 기도를 배웠고 상급을 알게 되었고, 그 말씀을 들음으로 믿음이 커졌습니다.
“예수 외엔 정복자가 없어야 된다.”고 하시면서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기도! “천문천답(千問千答)이 예수”라고 외치며 주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몸소 행하심으로 가르쳐 주신 사랑하는 우리 목사님! 때론 아버지처럼 무섭고 엄격한 사랑으로, 때론 어머니처럼 따스하고 부드러운 사랑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신 목사님!
앞으로 30년! 의의 길, 진리의 길, 생명 길로 앞서 가옵소서! 그길 끝에서 주님을 뵈올 때까지 잘 따라가겠습니다.
김정옥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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