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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2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필요’와 ‘기필코’는 부자관계다 (마7:7~8)

782호 · 2015-02-20

여러분, 진짜 하나님이 당신의 아버지입니까? 정말 하나님이 아버지라고 믿습니까? 그렇다면 가난하면 안 되지요. 아파도 안 되고, 실패해도 안 되는 거지요. 하나님이 당신의 아버지라면 말입니다.

세상에서도 부자 아버지를 두면 자식들도 다 부자로 잘 삽디다. 권력 가진 아버지를 가지면 어깨에 힘주며 큰소리치며 삽디다. 세상의 왕을 아버지로 둔 자들은 공주, 왕자라 불리고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리며 삽디다. 그런데 만왕의 왕이시오, 전지전능하시며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이 세상을 지으시고 사람마저 만드신 하나님의 자녀라면서 가난하고 병들고 무력하게 산다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요? 더욱이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당신의 아들까지 아낌없이 주신 분이니 결국 가난하고, 병들고, 나약하게 사는 것은 우리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렸지요? 하나님의 축복은 조건부라고요. 축복을 받는 비결도 조건부입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7:7~8). 이 말씀을 잘 보십시오. 무조건 준다가 아닙니다. 구하라, 그러면 준다는 겁니다. 찾으라 그러면 찾고, 문을 두드려야 열린다는 것입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이 뭡니까? 기도와 행함입니다. 기도하고 행하면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기도와 행함은 부부관계와 같아 결과라는 자식을 낳습니다.

이제 왜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난하게 살고, 병들어 살고, 무기력하게 사는지 아시겠습니까? 그리고 하나 더 알아야 할 것은 회개기도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더러운 그릇에 음식을 담지 않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용서하는 마음과 기도도 필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1:9).

그러면 ‘기도하고 행하면 다 됩니까?’라고 묻고 싶겠지요? 그럼요. 하나님이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고 약속하셨고,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2:26)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거울입니다. 성경에는 기도로 가난을 이기고, 병을 이기고, 실패한 인생에서 성공한 인생으로 역전극을 펼친 자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들은 기도했을 뿐 아니라 기도 후에 찾고 두드린 자들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으로부터 이끌고 나와 가나안 땅을 지날 때, 힘들고 어려운 고비마다 그가 한 것은 오직 기도였습니다. 홍해를 만났을 때도(출14:15), 마라의 쓴 물을 만났을 때도(출15:25),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을 때도 모세는 오직 기도만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다 하셨습니다. 한나도 평생의 소원인 자식을 기도로 얻었고(삼상1:27), 히스기야가 앗수르 침공과 산헤립의 농락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왕하19:19), 그가 죽을병에서 고침을 받고 15년 더 살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기도했기 때문이었습니다(왕하20:2). 또한 에스더가 풍전등화의 이스라엘 민족을 구할 수 있었던 것도 기도했기 때문이었고(에4:16), 다니엘이 굶어 허기진 사자의 굴속에서 털 끝 하나 상치 않고 살아나올 수 있었던 것 역시, 그가 하루 세 번의 기도를 그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지금도 그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의 소원을 응답해주십니다. 그런데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왜 하나님을 무능한 하나님으로 만듭니까?

“기도했는데 안 돼요.” 이러시는 분들, 세상 말에도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했습니다. 넘어갈 때까지 하라는 말입니다. 밥 먹을 때 잠깐 기도하고, 하루 10분 기도하면서 설마 기도했는데 안 된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요? 여러분, 뭔가를 이루려면 ‘이루고야 말겠다, 해내고야 말겠다’ 하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인디언들이 비가 올 때까지 제사를 지내듯 말입니다. ‘기필코 정신’이지요. ‘필요’를 얻기 위해서는 이 ‘기필코’라는 정신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을 아십니까? 그녀에게는 귀신 들린 어린 딸이 있었는데, 예수의 소문을 듣고는 물어물어 예수님을 찾아와 간구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막7:27)고 말씀하셨습니다. 개 취급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의 반응이 놀랍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막7:28).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식의 병을 고치고야 말겠다’는 ‘기필코 정신’이 그 여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보신 예수님이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막7:29)고 말씀하셨습니다. ‘기필코 내 원한을 풀고 말리라’며 매일 재판관을 찾아간 한 과부의 이야기(눅18:1~8)며, 여행 중에 찾아온 벗을 위하여 떡을 얻고야 말겠다는 어떤 친구의 이야기(눅11:5~8)처럼, 우리도 이 ‘기필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갈멜산에서 450명의 바알 선지자와 대결한 엘리야도 ‘기필코 하나님으로 하여금 하늘 문을 열어 비를 내리게 하겠다’고 작정 기도하여 3년 6개월 동안의 가뭄을 종식시켰던 것입니다(왕상18:42).

여러분,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응답이 무조건 OK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자식이 달랜다거나 해달라고 무조건 아무거나 다 해주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고등학생인 자식이 결혼시켜달란다고 OK 그럽니까? “학생이 무슨 결혼? 안 돼.” 이럴 것입니다. 아직 면허증도 없는 자식이 자동차 사달라고 하면 “기다려. 면허증부터 따.”라고 하겠지요?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응답이고,

‘기다려’도 응답이고, ‘안 돼’도 응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스릴 수 있을 때, 가장 합당하다고 생각할 때 허락하십니다. 요셉이 술 관원장에게 다시 기억된 바 될 때까지 2년이란 세월이 흘렀던 것처럼, 모르드개가 왕의 목숨을 건진 일을 왕이 알기까지 한 세월이 지난 것처럼. 그러나 그것이 더 좋은 때요, 가장 좋은 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은 까닭입니다(약4:2). 큰 것을 얻지 못함은 여러분이 작게 구해서 그렇습니다(시81:10). 불치병에 걸렸습니까? 파산 직전입니까? 당장 먹을 것이 없습니까? 아이들이 걱정입니까? 명퇴했는데 할 일이 없습니까? 능력이 없습니까? 그러나 기도할 수 있는데 이 모든 것이 무슨 걱정이겠습니까? 하나님이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는 것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닌데 무슨 걱정입니까? 당신의 기도가 짧을 뿐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셨던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육신을 입고 계시는 동안 기도의 일생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할 때 사십일을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마4:2). 예수님은 동트기 전에 일찍 일어나셔서 기도하셨고(막1:35), 기적과 이적을 행하신 후에도 한적한 곳에 가셔서 저녁에 기도하셨습니다(눅5:16). 또한 12제자를 뽑을 때에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고(눅6:12),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땀방울이 핏방울로 변할 정도로 애절한 기도를 하셨습니다(눅22:44). 그리고 십자가상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고 인자의 삶을 마감하셨습니다(눅23:34).

여러분, 우리에게는 천국열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이 천국열쇠를 쥐고도 이 세상에서 지옥처럼 생활한다면 어리석은 자일 것입니다. 지금 무릎을 꿇고 기도하세요. 하나님은 당신의 기도에 응답하실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할렐루야!

기도의 풍족은

모든 것의 풍족이다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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