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댓말을 합시다
여보게!
올 신년축복성회 첫 시간에 나는 ‘명품인생이 되자’고 우리 성도들에게 설교했네. 멋지고, 맛나고, 값지고, 알찬 삶을 살자는 뜻이었지. 내가 70 가까이 살아보니까 양보다 질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군. 삶은 양 못지않게 질이 더욱 중요하지. 이것은 높은 지위에 올랐다든가, 아니면 돈을 많이 벌었다든가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 품격을 높이는 인격의 문제라네. 더구나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은 산 위의 동네 같아서 더욱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네.
내 설교를 듣고 먼저 깨달은 사람이 있었네. 바로 서울교회 이시대 목사네. 이시대 목사는 명품교회가 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존댓말을 쓰는 것이라고 설교했다네. 사실 목사들이 어린 자매들이나 형제들에게 반말을 쓰는 경우가 대다수거든. 때론 나이든 분들께도 말을 놓아서 심정을 상하게 할 때도 많지. 그런데 그러지 말자는 거지. 아무리 어려도 ‘자매님’,
‘형제님’ 하자고 한 거라네. 교회니까 교회에서 준 직함을 부르면 되는 거라네. ‘목사님’, ‘전도사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성도님’, 이렇게 부르자는 거지.
나는 그 소식을 듣고는 옳거니 하고 무릎을 쳤다네. 행동보다 말이 먼저거든. 존댓말을 써놓고 함부로 행동하거나 무례를 범치는 않을 거 아닌가.
여보게!
자네는 명품인생인가? 아니면 삼류인생인가? 잘 모르겠거든 그것을 판단하는 방법을 가르쳐줌세. 아주 쉽다네. 그것은 내 주변의 사람이 나를 존경하고 인정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네. 자네 아내가 자네를 인정하는지, 자네 애들이 자네를 아빠로서 존경하는지, 자네 부모가, 그리고 자네 직장 동료나 부하직원이 그러는지 생각해보게. 그 사람들이 자네를 인정하고 존경한다면 자네는 어디에 내어놔도 손색이 없는 명품인생이야. 그러나 만일 그렇지 않다면 자네는 명품인생과는 거리가 멀다네. 가장 잘하는 설교는 가족들이 은혜를 받느냐 아니냐로 판단되는 것과 같은 이치지. 오늘 가족에게 한 번 물어보게나.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명품인생이 되는 방법을 가르쳐줬네.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5~7). 그리스도인의 8음계지. 어디 이뿐인가. 갈라디아서에는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5:22~23)고 했다네. 이것이 명품의 삶을 살기 위한 필요조건이네.
가끔 교회 안에서도 기도생활은 잘 하는 것 같은데, 신앙생활은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인격은 영 아닌 사람들을 보네. 권사, 장로가 화 좀 나면 세상에서나 쓰는 육두문자를 거침없이 내뱉고, 양보도, 배려도 없는 자들이 있지. 그들을 보고 누가 예수를 믿겠나. 베드로전서 3장에는 아내의 행위가 남편을 구원할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네. 인격을 갖추고 사랑을 행하는 것도 복음의 통로가 된다는 말씀이지. 예수중심교단의 모든 성도들이 명품인생을 산다면 그를 보고 ‘나도 예수 믿겠다’는 사람이 많아지리라 믿네.
자네도 노력해보게. 우선 존댓말부터 쓰도록 하게나.
朋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