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다시 기회가 있다 (창1:26~28)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동물과 식물 등 온갖 것들을 만드신 후 6일째 되는 날, 당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빚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창1:28~30).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부족함이 없이 모든 것을 준비하셨고, 그것들을 누리고 정복하며 행복하게 살 기회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이 죄를 짓는 바람에 이 모든 기회는 사라졌고, 정복하며 살아야 할 우리는 마귀에게 오히려 정복당했고, 누리며 살아야 할 우리는 귀신에게 모든 것을 빼앗겨 행복과는 멀어졌습니다.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벧후2:19).
하나님은 죄로 인해 우리를 에덴에서 쫓아내셨지만, 마음이 편치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심히 기뻐하셨던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단하셨습니다. 다시 기회를 주기로 말입니다. 그래서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보내셨을 뿐 아니라 그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여 우리의 죄를 단 번에 대속하게 하셨습니다. 대속이란 죄 없는 자만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예수 그리스도는 살리는 영입니다.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15:45). 우리를 살리러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다시 사는 영이 되었습니다. 그 분은 우리를 죄에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가 정복하고 누리고 행복해질 기회를 다시 주셨습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사61:1~4).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실 목적과 사명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기회를 주러 오실 예수님, 다시 회복시키러 오실 예수님에 대해 잘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분은 말씀대로 정말 이 땅에 오사 가난한 자와 고통당하는 자, 병든 자를 고치시고 싸매시고 위로하시어 삶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여 하늘과 땅과 땅 아래의 권세를 하나님께 넘겨받으셨습니다. “그는…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6~11).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권세를 이양 받으신 예수님이 그 권세를 우리에게 넘기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눅22:29). 할렐루야!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 곧 살리는 영인 예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오면 우리는 원수 악한 마귀를 대적하고 쫓을 수 있어 빼앗겼던 모든 것을 되찾고, 애당초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도둑놈을 잡고 탈취당한 것을 다 찾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에덴으로의 회귀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이제 잃어버린 물질도 찾으셔야지요? 베드로가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물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누가복음 5장을 읽어보세요. 자세히 쓰여 있습니다.
빼앗긴 건강도 찾아야지요. 열 두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만나 그의 겉옷만 만지고도 고질병이었던 혈루증의 근원이 말라 그리 원하던 건강을 되찾았습니다. 마태복음 9장에 기록되어 있지요.
죽은 것도 살아나야지요?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의 집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다들 예수님이 너무 늦게 오셨다고 난리였지만, 예수님은 죽어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나사로를 살려 그의 누이들에게 돌려주셨습니다(요11).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 여전히 빼앗긴 것과 잃어버린 것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는 안 된다, 팔자다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은 보물찾기와 같습니다. 찾는 자가 찾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소풍가서 보물찾기 할 때 어느 선생님이 제자들이 못 찾는 곳에 보물을 숨깁니까? 조금만 노력하면 찾을 수 있는 곳에, 조금만 인내하면 찾을 수 있는 곳에 숨기지 않습니까? 또 어느 아비가 자식이 생선을 달라하는데 뱀을 주겠습니까? 아무리 악한 자라도 자식에게는 좋은 것으로 줄줄 알거든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낌없이 당신의 아들까지 주신 하나님이 무엇을 주시지 않겠습니까(마7:9~11)? 다만 당신이 찾지 않아서 찾지 못하는 것이고, 구하지 않아서 얻지 못하는 것이고, 두드리지 않아서 안 열리는 것입니다. 이는 게으른 연고요, 안 된다는 부정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것을 잘라내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다시 얻게 된 기회도 무가치하게 됩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동안 지치지 않고 낫기를 소원했던 환자를 보십시오
(요5). 2대째 소경이던 바디매오를 보십시오(막10). 매일 재판장을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했던 과부를 보십시오(눅18). 열심히 찾으니까 찾지 않았습니까? 인내하며 구하니까 얻지 않습니까? 그런데 당신은 조금 해보고 안 되면 ‘나는 안 돼’하고, 조금 오래 걸리면 ‘팔자대로 살지 뭐’ 이러지 않습니까?
여러분, 말을 물가까지 끌고 갈 수는 있지만,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습니다. 모든 기회를 여러분 앞에 공평하게 놔줄 수는 있지만, 기회를 잡는 것은 여러분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당신의 아들을 보내사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 기회를 잡느냐 안 잡느냐는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하나님은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유의지를 주셨으니까요.
여러분, 살리는 예수님의 영, 곧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우리는 사는 영만 되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영이 되는 것입니다. 나만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영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아직도 죽어 있는 영을 살리는 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병든 생각, 나약한 생각, 부정적인 생각을 잘라버리고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빌4:1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생각(막9:23)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런 자만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다시 기회를 얻게 되고, 이 기회를 세상에 전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좌절과 포기에는
얕은 늪이 없다
우리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