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 앞 넙도에서 생긴 일
총회장 목사님은 목회초기에 개척교회의 많은 목사님들의 초청을 받아 전국을 순회하며 복음을 증거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사정이 여의치 못한 교회들에게는 물질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오직 주를 위하여 말씀을 증거하시는 그 사건의 현장 속에 저는 늘 목사님과 동행했었습니다.
그 사역 가운데 전라도의 아주 작은 섬 넙도에서 있던 이야기입니다.
당시 완도에서 현지까지 직접 가는 배편이 없어서 노화라는 섬을 거쳐 넙도를 가게 됩니다. 넙도로 가는 도중 노화 바닷가 뱃머리에서 그물을 정리하는 어부들에게 일일이 소주를 따라 주시면서 까지 그들에게 예수 믿기를 권하셨던 일들, 거의 삼십년이 지난 지금 그때를 돌이켜 생각하면 하나하나의 사건들이 감회가 새롭기만 합니다.
저녁 집회시간이 되어 모인 성도들의 숫자가 어린아이에 젊은이, 그리고 노인 분들 다 하여 열 명 남짓이었습니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 바닷가 나지막한 언덕에 블록 시멘트 벽돌로 자리 잡은 그 교회는 한 눈에 봐도 형편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간신히 작동되는 앰프 하나와 양발로 쉼 없이 발판을 밟아야 소리가 나는 풍금, 그리고 칠판 하나가 다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 목사님께서는 복음성가 중에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때’를 즐겨 부르셨습니다. 마침 칠판이 있어서 가사를 써 놓고 풍금 반주에 맞춰 찬송을 부르며 몇 안 되는 성도들과 저녁집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총회장 목사님은 지금과 같이 그분의 모든 열정을 다하여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는 말씀을 온전히 실천하셨던 것입니다.
그 한 주간 동안 시간 시간 말씀을 사모하며 받아들이던 그들의 눈빛이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됩니다. 그렇게 나흘에 걸쳐 집회를 다 마친 후, 그 교회 담임이신 강동명 목사님과 성도들은 총회장 목사님을 붙잡고 가지 말라며 집회를 연장해주실 것을 간청했지만, 그날 밤에 있을 금요철야예배를 위해 모든 일정을 마쳐야 했습니다.
넙도에서 노화로 향하는 정기 배편이 없어 우리는 작은 통통배를 타고 노화까지 왔습니다. 노화에서 다시 배를 타고 목표까지 가야 합니다. 그런데 때마침 폭풍주의보가 내려 뜨는 배가 없었습니다. 웬만하면 부수입 때문에 배를 대는 자가 있을 텐데, 풍랑이 너무 심해 아무도 엄두를 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서울로 올라가서 오늘 저녁 본 교회에서 기다리는 성도들을 위해 금요철야예배를 인도하는 것이 나의 목적’이라고 하시면서, 당시 상황에서는 불가능 그 자체처럼 여겨졌지만 목사님은 ‘구하라 찾으라(마7:7)’는 말씀을 붙잡고,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서 배를 준비해 놓으시지 않았겠냐고 확신에 찬 말씀을 하셨습니다.
결국 목사님의 믿음대로 몰래 뜨는 배가 나타났습니다. 작은 통통배였습니다. 목사님과 저는 그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바람이 심하게 불고 검푸른 파도가 눈 바로 앞에 넘실거리는 작은 배 위에서 목사님과 저는 머리부터 온 몸을 세차게 때리는 파도를 가리기 위해 파란 비닐 포장을 뒤집어쓰고 있었는데, 목사님은 예수 이름으로 명령하며 출발할 때부터 도착할 때까지 방언기도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험한 풍랑의 위협 속에서도 무사히 목포에 도착했고, 철산리 교회에 와서 철야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기쁨과 환희로 금요철야예배를 인도하셨습니다. 그날 밤 철야예배에 목사님이 철산리 교회 단상에 서있다는 것 자체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 누구보다도 변함없이 하늘나라를 전파하시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시는 목사님과 동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로써 마땅히 고백되어야 할 말씀은 바로 이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춘천예수중심교회
김근철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