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의 힘
일기, 쓰시나요? 전 2005년 9월 11일 일요일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날은 이시대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셨는데 “성공하길 원하면 일기와 저축을 하라.”고 말씀하셨지요. 집에 돌아온 저는 새 노트를 꺼내 바로 일기를 썼습니다.
그렇게 9년이 지났습니다. 목사님 말씀처럼 일기를 썼더니 성공을 했냐고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네, 그렇습니다. 사실 제 일기는 별 게 없습니다. 온통 걱정투성이지요. 대학생 때는 성적 걱정, 돈 걱정, 친구 걱정, 취업 걱정…, 취업하고부턴 업무 걱정, 연애 걱정, 장래 걱정…, 매일 크고 작은 걱정들이 일기에 끊이질 않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걱정만큼이나 감사도 많다는 것이지요. 한숨 쉬며 일기장에 썼던 당장의 문제들이 짧게는 하루, 길게는 몇 달, 몇 년 후 더 좋은 쪽으로 해결되었기 때문이지요. 늘.
일기는 제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명언을 몸소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당시엔 죽을 것 같이 괴로웠던 문제들도 지나고 나면 별 것 아니고,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는 일들도 의외로 쉽게 해결되리라는 것을 다른 책이 아닌 제가 쓴 일기장이 알게 해주었지요. 덕분에 미리 걱정하고 괴로워하는 버릇도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주변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이다, 걱정 없이 산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요, 그런 낙천적인 성격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그저 하루하루를 기록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변화되어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저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노스다코타 주립대학에서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주일에 한 시간 이상씩 일기를 쓰도록 했는데요, 놀랍게도 일기를 쓴지 몇 달 만에 환자의 47%가 증상이 호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하는 일을 글로 쓰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해결할 수 있게 되며 스트레스 또한 해소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일기를 쓰는 것만큼이나 과거의 일기를 읽어보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과거의 일기는 그 자체로 훌륭한 교훈이 되지요. 내가 어떤 일을 극복해냈는지, 누가 내게 도움을 주었는지, 주님이 어떤 은혜를 주셨는지 우리는 자주 까먹고 삽니다. 어떤 것은 영영 잊어버리기도 하지요. 그런 우리를 대신해서 일기장은 다 기억해줍니다. 지금 나를 서운하게 만든 사람이 예전엔 얼마나 내게 큰 도움을 주었는지 깨닫게 해주고, 과거에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잡아주기도 하지요.
다시 말해 일기는 서점에 파는 그 어떤 자기계발서보다 훌륭한 책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독서를 하고 어학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따는데 바쁘지만, 제 생각에 자기계발의 기본이자 필수는 일기를 쓰는 일인 것 같습니다. 적은 시간과 적은 비용으로 자신을 근본부터 변화시키는 것, 이보다 좋은 게 있을까요? 이제 저도 잠시 덮어두었던 일기장을 다시 펼쳐보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일기장을 펼쳐 펜을 들어보지 않으실래요?
신은혜
dopal0203@naver.com
너 하나님의 사람아
지난 11월 4일, 대구에서 나라를 위한 평화통일 기도성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동행했던 어르신들은 이구동성으로 오길 잘 했다고 말씀하셨다. 목사님께서 “우리가 함께 기도하면 다 살고, 가만히 있으면 모두 같이 망한다고 하시며 오직 우리의 살 길은 합심기도뿐이다. 통 큰 자가 되라.”고 하실 때, 그 말씀이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면서 무사안일한 자신이 부끄럽고, 이제 나라를 위해, 자손들을 위해 함께 기도해야겠다고 다짐했다는 어르신을 필두로, 시작부터 눈물만 흐르더라는 분도 있고, 친구 따라 왔다는 어떤 분은 자신이 다른 교회를 다니고 있는데, 나라를 위해 이렇게 좋은 일을 하는 교회가 있는 줄 몰랐다며 초청해줘서 고맙다고 하신 분도 계셨다. 고백하는 자나 그 고백을 듣는 자나 함께 예수님 찬양을 부르며 돌아오는 길은 어느새 감사와 기쁨으로 가득 찼다. 무엇이 그분들의 마음을 깨우고 움직이게 만들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자신이 누구인가를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5:13~16)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에게 세상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대상이 아니라 사랑하고 구원해야 할 대상이라는 뜻이다. 사도행전 24장에는 사도 바울이 예수라는 염병을 퍼뜨리는 자라며, 가는 곳마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소동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곧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전하며 세상에 영향을 주는 자라는 것이다. 또한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향해 하나님의 사람이라 부르면서(딤전6:11), 하나님의 사람은 마땅히 피할 것은 피하고 좇을 것은 좇으며 담대히 싸워서 반드시 취하여야 할 것이 있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을 통합하면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말씀이다. 부천에서, 잠실에서, 서울시청광장에서, 또 대구에서 가진 평화통일 기도성회 역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차 안에서 내내 감사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하서연 전도사
ohzion1004@daum.net
볍씨를 심자!
가난한 과부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의 석유왕으로 억만장자가 된 세계적인 재벌 록펠러는 생전 자신의 간증에서 “만일 내가 처음 교회에 갔을 때,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둔다(고후 9:6)’는 말씀을 듣고, 그때 월급 6달러에서 십일조 60센트를 심지 않았다면, 내가 오늘날과 같이 1백만 달러를 하나님 앞에 십일조로 드릴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록펠러가 기업을 세운 후, 하나님께 철저한 십일조를 드리기 위해 십일조 전담 회계 부서의 직원만 40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철저한 십일조 생활로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았던 록펠러는 죽으면서 자손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나는 십일조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으며, 이 사업은 십일조의 축복으로 된 사업이니 너희는 이 믿음을 버리지 않도록 하라. 너희는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평생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농부는 봄이 되면 볍씨를 심습니다. 씨나락을 심는 겁니다. 이 씨나락을 심어야 가을에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가난한 농부도 이 볍씨에는 손을 대지 않습니다. 또한 많이 심은 농부는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게 됩니다. 영적 농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일조는 볍씨입니다. 영적 씨나락입니다.
추수철, 당신은 얼마나 거두셨습니까? 적게 거둬 속이 상합니까? 당신이 적게 심어서 그런 겁니다. 아예 거둘 것이 없습니까? 자업자득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안 심었기 때문입니다. 만물의 주권자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심지 않은 데서는 거두게 하지 않으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올해 수확이 어떻습니까?
김경현
kyunghyunjudy.kim@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