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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엉뚱한 자들의 몫이다 (요16:1~33)

768호 · 2014-11-14

믿음은 보편적 지식을 뛰어넘은 엉뚱한 자들의 몫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신앙이든 인생이든 현실에 잘 훈련된 사람들, 상식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그 선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기상천외한 생각을 가진 자들, 역발상 할 줄 아는 자들이 성공하고 기적을 맛본다는 말입니다.

근래에 TV광고를 보면 엉뚱한 광고들을 보게 됩니다. 예전에는 냉장고 광고는 당연히 여자 모델의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상식을 접고 요즘은 남자 모델이 냉장고 광고를 합니다. 처음에는 업주도 반신반의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주부들이 그 남자 모델 때문에 그 냉장고를 더 선호하게 되고, 더는 아직 바꿀 시기가 아닌데도 서둘러 바꾸었다는 겁니다. 역발상 마케팅의 성공입니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는 엉뚱한 자들에 의해 진화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에디슨, 그는 상식의 눈으로 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릴 때는 계란을 품고 있기도 했고, 날 수 있다는 약을 만들기도 했으며, 실험한다고 기차역에 불을 내기도 한 자입니다. 그러나 그의 엉뚱함이 결국 전구도 만들고, 축음기도 만들고, 영사기 등등 무려 천 점이 넘는 발명품을 만들었습니다.

비행기를 만든 라이트 형제도 엉뚱한 자입니다. 사람도 날 수 있다는 생각은 당시로는 상식선 이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수년간의 연구를 거듭해서 결국 동력비행기를 만들어냈습니다.

근자의 사람으로 빌 게이츠를 봅시다. 그는 세계인 모두의 책상에 컴퓨터를 놓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는 컴퓨터가 대문짝만했는데 말입니다. 그러나 그의 엉뚱한 생각이 오늘날 손가락만 있으면 세계를 넘나드는 PC세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한술 더 떠서 손에 컴퓨터를 들고 다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아이디어의 세계’가 아니라 ‘어이디어의 세계’라고 합니다. 어이없는 생각, 엉뚱한 생각으로 승부하는 세상이라는 겁니다.

성경의 인물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성경 본문이 있습니다. 바로 마가복음 2장에 기록된 말씀으로,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4명의 친구들 이야기입니다.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4명의 친구들은 예수님 곁으로 다가가려 했으나 사람들이 너무 많아 예수님 얼굴조차 보지 못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엉뚱했습니다. 지붕을 뚫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지붕을 뚫어 침상 네 귀퉁이를 달아 예수님 앞에 내려놓겠다는 기발한 생각을 했습니다. 지붕 위에서 내려오는 침상을 보신 예수님은 그들의 행위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막2:5).

모세는 공주의 자녀로 최고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모세의 지식은 너무 교과서적인 것이었습니다. 틀에 박힌 지식 말입니다. 이래서는 절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끌어낼 수 없다고 생각하신 하나님은 그를 40년 동안 광야에서 양치기로 살게 하셨습니다. 교과서적인 지식을 다 빼낼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 후 출애굽하게 되는데 모세는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사면초가일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여 모든 것을 해결하였습니다. 그 방법들은 실로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엉뚱하고 기상천외한 것들이었습니다. 한 예를 들어볼까요? 홍해를 가를 때 하나님은 모세가 들고 있던 지팡이를 바다에 내밀라고 했습니다. 만일 모세가 예전의 지식으로 가득했다면 하나님과 실랑이를 벌였을 것입니다. “하나님,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어떻게 지팡이를 내민다고 이게 갈라집니까?” 그러다 결국 애굽 군대에 다 잡혀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엉뚱하기 그지없는 하나님의 방법에 토 달지 않고 순종하여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단언컨대 보편적 지식을 버려야 기적의 주인공이 됩니다. 그래서 대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한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3:7~9).

마태복음 11장 12절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남의 자리를 빼앗으라는 얘기가 아니라 믿음을 침노하라는 말씀인데, 믿음의 침노는 보편적 지식, 고정관념, 상식을 깰 때 가능합니다.

사소한 일이지만 삭개오를 봅시다. 삭개오는 예수님이 오시는 길목에 나가 예수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들로 길목은 막혔고, 유난히 키가 작은 삭개오는 사람 속에 묻히고 말았습니다. 그 때 그의 머리가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나무 위로 올라가 볼까?’ 그래서 체면이고 뭐고 생각하지 않고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마침 예수님이 다가오시다가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삭개오를 발견하고는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눅19:5)”라고 하셨습니다. 침노하여 천국을 소유한 경우입니다.

처음 우리교회 이름은 철산예루살렘교회였습니다. 광명 철산리에 있는 인복 유치원 지하에서 목회를 할 때였지요. 그런데 황지에서 토레이 신부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성령께서 저에게 ‘한국예루살렘교회’로 개명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평소 존경하는 어느 목사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그 분 하시는 말씀이 “이 목사, 엉뚱하기는…. 철산리에서나 잘해.” 그러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국예루살렘교회라고 개명했습니다. 물론 다들 이상하다고, 엉뚱하기 그지없다고 했습니다. 철산리 구석에서 목회하면서 무슨 한국예루살렘교회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81:10). 엉뚱하다는 것은 제 분수를 뛰어넘는 것이고, 상식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네 분수를 뛰어넘으라고, 상식이상으로 생각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 자의 입, 곧 목표를 다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임신케 하신 이가 순산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임산케 하였은즉 해산케 아니하겠느냐”(사66:9). 지금 우리는 한국예루살렘을 뛰어넘어 세계를 예수중심으로 이끄는 예수중심교회가 되었습니다.

에디슨도, 라이트 형제도, 지붕을 뚫은 4명의 친구도, 모세도, 삭개오도 엉뚱하다고, 이상하다고, 틀렸다고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고, 못들을 소리도 많이 들었을 겁니다.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건 당연한 반응입니다. 상식 밖의 진리를 모르는 자의 당연한 태도입니다. 임신하면 힘든 일이 많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참고 떡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으면, 공주 같은 딸을 낳으면 모두가 잘했다며 축복하는 것처럼, 목적을 이루고 나면 아낌없는 찬사를 보낼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모든 재산을 팔아 진주 하나를 산 자가 있습니다. 그런 자는 분명히 엉뚱하다는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아니 미쳤다는 소릴 들었을 것입니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진주가 얼마나 귀한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미래가치를 발견하는 혜안은 결코 고정관념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고정관념과 상식을 깨고 비트는 역발상에서 새로운 발견은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우물 안 개구리는 결코 너른 세상을 볼 수 없습니다. 우물 속을 나와야 합니다. 고정관념, 보편적 지식, 교과서적인 지식에서 빠져나와 상상의 날개를 달아봅시다. 할렐루야!

상식으로 대화할 수는 있지만

상식으로 가르칠 수는 없다

상식의 틀을 깨는 상상력

곧 역사 진보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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