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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4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극히 아름다운 일을 행하신 하나님 (사12:1~6)

764호 · 2014-10-17

지금으로부터 2,700년 전,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에 알게 할찌어다”(사12:5).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빚으신 하나님, 홍해를 가르고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게 하신 하나님, 마른 막대기에 싹이 나게 하신 하나님의 일은 분명히 위대하고 경이로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극히 아름다운 일’이란 무엇일까요? 누차 저는 ‘아름다움이란 부족함이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는데, 극히 아름다운 일이라면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일입니다. 이사야서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9:6),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사11:1). 이새의 뿌리에서 예수가 나와 이 세상을 충만하게 하신 것, 그것이 하나님의 어떠한 일보다 극히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정말 극히 아름다운 일이었고, 그 일은 우리로 하여금 부족함이 없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4:9~10).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의 영혼 뿐 아니라 우리의 삶도 살리셨습니다. 가난한 자가 복된 자가 되고, 병든 자가 나음을 입고, 죽을 수밖에 없던 영혼들이 영생을 얻었으니 이는 극히 아름다운 일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 극히 아름다운 일을 찬송해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홍해를 갈랐을 때 모세는 출애굽기 15장에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사사기 5장에도 드보라와 백성들이 전쟁에 이기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했고, 사무엘을 낳은 한나의 찬양이 사무엘상 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물며 극히 아름다운 일, 즉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일이 우리에게 이루어졌으니 찬양해야 함은 너무도 마땅한 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사 구원의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구원의 은총을 구원의 우물이라고 표현했습니다(사12:3). 세상 것은 아무리 먹고 마셔도 갈증이 날 뿐이지만, 예수가 주신 구원의 우물은 한 번 마시면 영·혼·육 모두 영원히 목마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에게 극히 아름다운 일은 무엇입니까? 사업이 잘 된 것입니까? 자식이 일류대학에 척 붙어준 것입니까? 남편이 승승장구한 것입니까? 아니면 병에서 나음을 입은 것입니까? 이 모두 아름다운 일임에 틀림없지만, 극히 아름다운 일이라 말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극히 아름다운 일은 이 땅에 오신 예수를 영접한 일입니다. 예수로 인해 당신의 인생에 부족함이, 갈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6:35).

여러분, 우리 삶 속에서 예수의 이름이 빠지면, 앙꼬 없는 단팥빵처럼 맛없고 허무한 것이 되고 맙니다. 성경에서 예수의 이름이 빠지면 이빨 빠진 사자마냥 세상 책이나 진배없습니다. 우리 가정, 우리 교회, 우리나라에 예수의 이름이 빠지면 모든 것이 넘쳐나도 아무것도 없는 것이며, 무가치하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의 선친들은 모든 것을 다 잃어도, 모든 것을 다 빼앗겨도 오직 예수 이름으로 만족하고, 그 이름만으로 기뻐했던 것입니다.

다음은 사도 바울이 옥에 갇혀서 에베소 교인에게 쓴 편지내용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3~6).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이미 우리를 택하셨고, 그 선택은 오직 예수 안에서 이루어짐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옥중에도 감사했습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14:8),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라는 그의 고백은 정말 환희에 차 있지 않습니까?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예수를 영접한 것이 세상 어느 것과 비길 수 없는 아름다운 일임을 인지한다면 세상 것이 조금 안 풀린다고, 좀 가진 것이 없다고, 몸이 좀 병들었다고 불평하지 않을 것이고, 낙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또한 이사야 선지자는 이 극히 아름다운 일을 널리 알리라고 했습니다. 온 세계 만민이 구원의 우물에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길어 마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바로 내 안에 행하신 십자가의 구원을 널리 전파해야 합니다. 이는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8~20)는 말씀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는 주님의 말씀을 연상케 합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 1절의 말씀을 보면 바로 ‘전에는’과 ‘이제는’으로 나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진노의 자녀였습니다(엡2:3). 그러나 ‘전에는’과 ‘이제는’ 분기점에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당당히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했습니다. 그 예수를 전해야 합니다. 제가 7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구 한 바퀴를 돌며 전도하러 다니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극히 아름다운 일을 행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전해야 합니다. 이는 꼭 입을 열어서만이 아니라 여러분의 행실로도 전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신 극히 아름다운 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으로 그와 함께 한 자로서의 삶을 산다면, 많은 자들이 당신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것이고 그 분을 찬양할 것입니다.

여러분,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엡2:4~5). 이것보다 큰 축복이 없습니다. 이것보다 더 큰 은혜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잠깐의 것 때문에 절망하지 말고 불평하지 맙시다. 범사에 감사합시다. 그 분 한 분이면 족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내가 있는 자리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하여 세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합시다. 또한 입을 열어 우리의 구원자 예수를 전합시다. 이것이 극히 아름다운 일을 우리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면 다냐?

예수면 다다!

예수를 소유했는가?

무엇이 더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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