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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4호 목차 › 객원컬럼

음악의 사회적 힘

764호 · 2014-10-17

베토벤(L.V. Beethoven)을 모델로 한 로맹 롤랑(Romain Rolland)의 소설 ‘장 크리스토프(Jean-Christophe)’를 TV드라마로 제작한 미니시리즈가 지난 1980년대 초 국내에서 방영된 적이 있다. 드라마 중에 나오던 한 독일어 교사가 학생들에게 “우리 독일은 괴테(Goethe)와 베토벤의 나라이다!”라고 자긍심에 찬 어조로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게르만의 문화적 일체감과 자부심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말이다.

문화는 단적으로 말하면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다. 개인의 이야기든, 사회적 사건, 국가 간 전쟁 등 다양한 인간사의 이야기들을 글이나 예술의 다양한 장르로 기록하여 다음세대에게 결과물로 남기는 것이 곧 문화이다. 한 사회의 문화역량은 사회적 갈등을 해소시키고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힘을 갖는다. 따라서 문화역량이 강한 민족일수록 많은 기록물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 기록의 여러 형태 중 음악이란 장르는 그 강한 감성으로 인하여 역사적 사건 자체를 많은 사람들로 오래 기억하게 하고 추억하게 만든다.

독일이 통일되기 1년 전 즈음인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역사적 사건이 TV를 통해 전 세계로 중계되었다. 70년 넘게 지구촌을 동서로 갈라놓았던 마르크스, 레닌의 공산주의 아성이 붕괴되는 역사적인 장면이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영국에서 TV로 지켜보던 한 사람이 있었다. 소련의 반체제 음악가이자 세계적인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Mstislav Rostropovich, 2007년 타계)는 독일 분열에 큰 역할을 담당했던 소련 사람으로서 일종의 채무의식에 괴로워하던 차에 이 놀라운 역사적 장면을 목격하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즉시 전세기를 내어 베를린(Berlin)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 무너진 장벽 앞에서 바흐(J.S.Bach)의 무반주 첼로모음곡을 연주했다. 노(老) 첼리스트의 애절한 연주는 통일의 기쁨은 물론 전쟁의 아픔과 고통을 첼로 현에 녹여내며 전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2001년 9월 11일, 뉴욕(New York)의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항공기 테러로 붕괴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전 세계가 경악한 사건이었지만, 누구보다 당시 3천여 명 희생자들의 유족들, 그리고 뉴욕 시민들이 당한 충격과 슬픔은 무엇으로도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였다. 그런데 9.11테러 한 달 후 열린 추모식에서 시크릿 가든(Secret Garden)의 “You raise me up(당신은 날 일으켜주시네)”이 울려 퍼졌다. 수많은 나라에서 리메이크된 이 곡은 좌절과 비탄에 빠져있는 영혼들의 깊은 상처를 어루만지며 사회적 치유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개인이나 사회의 역사적 사건을 다룬 음악이나 영화 등 예술가의 치열한 기록은 이처럼 사건 자체를 직면하는 사람들로 정신적인 성숙을 이끌어내는 힘이 있다. 문화역량이 강한 민족일수록 국가적 위기를 잘 극복해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Henry Han

henry882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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