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의 대역사를 향하여
현재 남북 관계는 롤러코스터를 타듯 냉온탕을 오가고 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불확실성에 무엇 하나 신뢰할만한 정보도 없고, 그저 이럴 때는 그들의 평화공세나 예측불허의 국지전 상황 등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흔들림 없이 원칙을 갖고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천절인 지난 10월 3일은 독일이 분단 45년 만에 통일을 이룬 날이다. 올해로 통일 24주년이라 한다. 참 부럽기도 하고, 분단 70년이 되어가는 우리는 언제나 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있지만, 우리는 지난해부터 부천, 잠실, 그리고 올해 서울시청광장의 평화통일 기도성회를 통해 국가와 민족의 평화, 그리고 남북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해왔다. 그리고 오는 11월 4일 대구실내체육관에서 진행될 ‘평화통일 대구성회’는 전국적인 도화선이 되리라 확신한다. 그래서 마침내는 김일성 광장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게 되리라 믿는다.
독일 통일은 서독에 의한 일방적인 흡수통일이 아니었다. 먼저 동독의 자유화 물결이 있었고, 그 후에 이루어진 합의통일이었다. 구소련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1986년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에 힘입어 먼저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간의 국경이 열렸고, 그 후 동독 라이프치히 시민들이 헝가리 국경을 통해 오스트리아를 거쳐 서독으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2년부터 라이프치히의 성 니콜라이 교회에서 시작된 월요 평화기도회가 1989년 10월에는 대규모 촛불시위로 확산되었다. 그러자 당시 동독의 호네커 정권은 이러한 자유화 물결의 확산을 차단하고자 군대를 동원하여 시위를 진압하려 했다. 유혈사태는 불을 보듯 뻔했다. 이 때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였던 쿠르트 마주어 교수가 라디오 연설을 통해 시민과 진압군 모두에게 비폭력 평화시위 보장을 간절히 호소하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진압에 나섰던 군경이 시민들의 평화시위를 보장한 것은 물론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고, 1990년 10월 3일, 독일이 완전 통일을 이루어지기까지 동독에는 자유선거를 통해 메지에르 총리의 민주정부가 들어섰고, 이후 서독의 콜 정부와 함께 역사적인 통일을 준비했다.
독일 통일의 대역사는 많은 노력의 산물이다. 1971년 서독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으로 동서독의 교류가 시작되었고, 이 사회당 진보정권의 정책은 콜 총리의 보수정권에도 일관되게 계승, 지속되었다. 동독을 제거해야할 적으로 간주했다면 이런 통일의 역사는 있을 수 없었다. 우리가 독일 통일에서 얻을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북한을 없애버려야 할 적으로만 대한다면, 이는 남북 모두의 재앙이 될 뿐이다. 제거의 대상이 아닌 관리의 대상으로, 곧 ‘북한을 어떻게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끌어낼지’에 골몰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이에 아주 시의적절하다 할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4)”
눈에는 눈, 이는 이로 갚을 적이 아니라 사랑으로 감쌀 관리 대상으로 대하라는 말씀이다. 시청 집회에서 목사님이 강조하신 것도 ‘강한 자가 먼저 손을 내밀고 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북한과의 교류와 협력이라는 원칙을 버린다면 평화통일은 요원한 꿈이 될 것이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약 달포 뒤인 1989년 12월 25일, 승전국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와 패전국 독일의 연합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동베를린 지역에 모여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 ‘환희의 송가’를 미국의 명지휘자 번스타인의 지휘로 합창했다. 20세기말 역사의 대전환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장면이었다.
이제 그 역사가 세계 마지막 분단지역인 이 한반도에도 이루어지기를 소망한다. 독일의 통일과정보다 더 아름답고 평화로운 가운데, 우리가 기도한대로 꿈꾸는 듯한 평화통일의 역사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한은택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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